[사랑한대 매거진 2020년 겨울호] 'K-양극재' 개발한 선양국 교수(에너지공학과) 인터뷰 다뤄

국내 기술의 배터리 양극재로 미래 전기차 시장 이끈다

선양국 교수(에너지공학과) 선양국 에너지공학과 교수팀이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K-양극재’를 개발해냈다. 1회 충전으로 600~700km를 주행할 수 있고, 20년간 사용해도 90% 이상 성능이 유지되는 차세대 배터리 양극재다. 배터리 용량은 늘리면서 비용과 무게는 줄인 이 기술로 전기차 시장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전망이다.

▲한양대학교 선양국 교수(에너지공학과)  ⓒ사랑한대
▲한양대학교 선양국 교수(에너지공학과) ⓒ사랑한대

주행거리는 늘리고 가격은 낮추고

배터리는 스마트폰과 같은 포터블 디바이스, 전기차, ESS(Energy Storage System, 에너지 저장 시스템) 등에 쓰인다. 이 중 전기차 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 전기차 시장은 연 30%씩 증가하는 추세다. 2025년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규모는 300조 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2025년 약 170조 원으로 예상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보다 훨씬 큰 규모다. 배터리가 차세대 유망산업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배터리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액의 네 가지 소재로 구성된다. 이 중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책임지는 소재가 양극재다. 선양국 교수는 지난 20년간 농도구배(Concentration Gradient) 양극재를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개발 완료했다. CS(Core-Shell), CSG(Core-Shell Concentration Gradient), FCG(Full Concentration Gradient), TSFCG(Advanced Full Concentration Gradient with Two Slope)가 그것이다. 이번에 개발에 성공한 양극재는 기존의 농도구배 방식을 이용하지 않고, 양극재의 미세구조와 결정구조를 변화시켜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됐다. 일명 ‘NCX 양극재’라 불린다. 1회 충전으로 600∼700km를 주행할 수 있고, 20년간 사용해도 90% 이상의 성능을 유지하는 차세대 배터리 양극재다. 선양국 교수팀은 이 기술을 지난 9월 22일(한국 시각) 에너지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Nature Energy)>에 발표했다.

20년 사용해도 끄떡없는 배터리

양극재 내부에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이 들어 있는데,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는 양극재 내부의 니켈 함량에 비례한다. 이런 이유로 최근 배터리 업계는 니켈 함량을 높여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향상시키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충전 시 니켈 함량이 높아지면서 양극재 입자 내부에 미세균열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20∼30%의 용량을 충전할 때 발생하는 미세균열은 배터리 수명을 단축시키고 안정성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이런 문제로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는 원래 용량의 70∼80%까지만 충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나머지 용량은 버려지는 셈이다.

▲배터리 4대 요소 ⓒ사랑한대
▲배터리 4대 요소 ⓒ사랑한대

선양국 교수팀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극재의 미세구조와 결정 구조를 변화시켰다. 이를 통해 에너지 밀도는 높게 유지하면서 수명은 더욱 안정적인 ‘NCX 양극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 양극재는 100% 충전을 해도 미세균열이 생기지 않는다. 버려지는 에너지가 없어 1회 충전만으로 600∼700km의 주행이 가능하다. 2,000회 충·방전에도 초기 대비 90%의 안정적인 용량을 유지한다. 전기차 배터리를 2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전해질에 액체 대신 고체 물질을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에도 사용할 수 있어 유리하다.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상용화 전이지만, 화재와 폭발 위험이 없고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기에 앞다퉈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농도구배 기술을 넘어 새로운 기술 개발로

양극재는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와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책임지는 소재인 만큼 전기차 가격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값비싼 원재료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다 효율적인 양극재의 등장은 주행거리 및 사용 기간의 증대와 함께 전기차의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다. 1세대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1회 충전 기준 200km 미만이었고, 2세대는 320~500km였다. 3세대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500~700km에 이른다. 이번에 개발한 NCX 양극재가 3세대 전기차 시장을 견인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현재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한국이 세계 최고다. 반면 이를 구성하는 원천 소재 점유율은 채 10%가 되지 않는다. 이번에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NCX 양극재, 일명 ‘K-양극재’는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선양국 교수는 “이제 연구 단계를 넘어 고성능 K-양극재의 개발과 기술 이전 및 상용화로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번 성과는 선양국 교수가 지난 20년간 기초연구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연구해온 결실이다. 그는 늘 기존 기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연구를 시도하고 고민했다. 앞서 개발한 농도구배 양극재도 그랬다. 일반적인 양극재는 안쪽과 바깥쪽의 농도가 같다. 하지만 그가 만든 농도구배 양극재는 안쪽과 바깥쪽의 니켈 농도가 다르다. 일반적인 경우, 니켈의 농도가 높으면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길어지는 대신 수명이 짧고 화재 위험이 있다. 하지만 안쪽에 니켈 함량을 많이 배치하고, 바깥쪽 니켈 함량을 낮게 배치하면 배터리의 수명이 길어지고 화재 위험도 없어진다. 이것이 바로 농도 구배 양극재의 특징이다. 이 기술은 현재 국내 소재회사인 에코프로 BM, LG화학, 포스코케미칼 등에 기술 이전했고, 기아자동차 니로EV와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의 아크폭스, 현대자동차의 유럽 수출용 코나EV 등에 적용됐다.

▲한양대학교 선양국 교수(에너지공학과)  ⓒ사랑한대
▲한양대학교 선양국 교수(에너지공학과) ⓒ사랑한대

긴 호흡으로 깊이 있게 연구해야

선양국 교수는 얼마 전 화학 분야와 재료과학 분야에서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로 선정됐다. 이로써 논문의 피인용 횟수가 많은 상위 1%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s)에 5년 연속 선정되는 쾌거를 거뒀다.


매번 새로운 연구에 도전해 꾸준히 좋은 성과를 내는 선양국 교수. 하지만 이처럼 세계적인 연구 결과가 하루아침에 이뤄질 리 없다. 오랫동안 연구해온 농도구배 기술을 넘어 또다시 새로운 양극재 개발에 성공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새로운 것을 떠올리는 창의력과 포기하지 않는 강한 의지, 숨은 노력이 어우러져야 가능한 것이다. 선양국 교수는 “의지를 가지고 오랫동안 긴 호흡으로 한 우물을 깊게 파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좋은 연구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지난 2000년 한양대에 부임하면서부터 계속 이 연구에 매달려 왔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연구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자기 자신만의 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남이 안해본 길을 가야 해요. 한 분야를 오랫동안 깊이 있게 연구해야 비로소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선양국 교수의 연구 열정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퇴근 후에도 책상을 떠나는 법이 없다. 자신의 공간에서 새로운 논문을 읽고 공부를 이어간다. 언제나 변함없이 말이다. 더 좋은 소재를 만들기 위한 그의 열정이 오늘도 밤늦도록 불을 밝힌다. 

오인숙 | 사진 손초원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사랑한대'의 2020년 겨울호 (통권 제256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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