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의 인문학' 저자 임병희 동문(국문 91)

나무에서 찾은 인간의 삶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 사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여 지식을 넓히라는 뜻이다. 임병희 동문(국문 91)은 가구 제작을 위해 나무를 만질 때면 언제나 이 구절을 생각한다. 매 순간 나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임 동문은 결국 나무에도 세상의 이치가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나무를 베고, 맞추고, 갈고, 닦으며 하나의 가구로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임 동문은 나무에서 인간의 삶을 발견했고, 인문학을 깨달았다. '목수의 인문학'의 저자 임 동문을 만나봤다.

 

하고 싶은 일, 자유로운 삶

 

어릴 적 임 동문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시가 좋았고, 시 쓰는 일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임 동문은 스스로를 '시적 상상력이 부족했던 학생'이라고 회상했다. 시가 좋았지만, 재능은 부족했다. 그래서 임 동문은 시인이라는 꿈을 접었다. 그럼에도 인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인류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모든 선택에 엄청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창한 계획과 목표가 있어서 국문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일들을 했을 뿐이에요." 그렇게 임 동문은 중국 유학까지 다녀왔다. 새로운 언어와 신화학까지 공부하고 나서야, 임 동문은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나이와 취업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곤 했지만, 임 동문은 그런 것들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한 번 사는 삶이기에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 해보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긴 학업 끝에 임 동문은 목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전공을 살리는 업은 아니었지만,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에 목수라는 길을 선택할 때도 망설임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어요. 그렇게 공부하고 왜 목수가 되었느냐고, 딱히 큰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렇게 임 동문은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목공소로 향했고, 비교적 늦은 나이에 다시 한 번 배움을 시작했다. "노력해서 어떤 결과물을 탄생시키는 그 과정이 좋았어요. 공부는 눈에 보이는 결과는 없잖아요." 목공은 책으로 배우고, 글로 익히던 지금까지의 학습과는 전혀 달랐다. 모든 과정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 했다. 나무의 재질부터 톱의 모양을 익히기까지 임 동문은 매 순간 몸으로 부딪혔다. 다치고 베이는 일이 일상이었다. 기계에 손이 베어 손가락을 잃을 뻔한 경험도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임 동문은 매일 목공을 연마했고, 결국 자신만의 가구를 완성시켰다. 박사 학위를 딴 인문학도는 그렇게 목수가 됐다.

 

나무에는 사람이 있다

 

   

나무의 나이테는 춘재(春材)와 추재(秋材)로 구분된다. 봄에 자라는 나무는 풍부한 양분과 따스한 햇살을 가득 받아 빠르게 자라는 반면, 가을에 자라는 나무는 적은 햇살과 추운 날씨를 견뎌낸 탓에 느리게 자란다. 그러나 빠르게 자란 부분은 무른 반면, 더디게 자란 부분은 단단하다. 힘겨운 시간을 견뎌낸 탓에 더욱 강하고 단단한 나무로 성장하는 이 당연한 이치를 사람들은 너무도 쉽게 잊곤 한다. 나무를 다루면서 임 동문은 짧은 시간 내에 성공을 바랐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다. 책으로 배웠던 인문학을, 나무에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국문학과 인류학, 신화학에 이르기까지 제가 배우고 공부했던 진리와 이치들이 모두 나무에 있었습니다.” 임 동문은 나무를 만지며 얻은 인문학적 통찰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 기록들은 하나의 책으로 탄생했다. 도면을 그리고, 반듯하게 톱질을 하고, 조립을 하고, 사포질로 마무리하는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사람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임 동문의 생각을 고스란히 책에 담아냈다.

 

남들처럼 취업을 하고, 안정적인 직장에서 꾸준히 일하는 삶이 아니었기에 임 동문에게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약 7년의 중국 유학 시절에도 임 동문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유학 자금을 충당해야 했다. 풍요나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떤 이들은 ‘그 정도 학벌이면 안정적인 직장을 갖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한결같다. “취업을 위해 학업을 한 게 아니니까요. 공부한다고 다 교수가 될 필요는 없죠.” 학업은 임 동문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도전일 뿐이다. 순수하게 인문학이 좋았고, 공부가 재미있었다. 그래서 임 동문은 인문학을 구직을 위한 발판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대신 글 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건 저의 본성인 것 같아요, 시인이 되진 못했지만요.” 임 동문은 목수이자 작가이자, 인문학자로서 사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해보고 후회하는 삶이 낫다

 

부와 명예를 쫓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임 동문은 살아왔다. 안정적이거나 평탄하지는 않았지만, 불행하지도 않았다. 스스로가 원해서 했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을 돌아보면, 저는 강의실보다는 선후배들과 모인 술자리나 잔디에 누워 나누던 대화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습니다. 함께 책을 돌려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곧 문학 수업이었어요." 임 동문은 그렇게 삶의 모든 순간에서 배움을 얻었다. 모임과 대화가 곧 국문학이었고, 인류학이었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 역시 전공과 수업에 얽매인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끝으로 임 동문은 후배들이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 나갔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다. “물론 제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비해 힘든 사회가 된 것은 확실하지만 후배들이 대학, 전공, 직장이라는 틀에 갇혀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생미정’이에요. 누구나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일로 자신의 인생을 멋지게 채워나가는 사람들이 됐으면 합니다.”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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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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