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승 교수(인문대 사학)

광복 70년, 기억하라 그들을

 

“어이 3000불, 우리 잊으면 안돼.” 개봉 25일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에 두 번이나 등장하는 이 대사는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제각기 방법은 달라도, 독립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쓴 수 많은 사람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잘 기억하고 있는가? 광복 70주년 그리고 분단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누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비록 픽션이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 <암살>을 박찬승 교수(인문대 사학)와 함께 살펴봤다.

 

사실보다 더 사실 같은

 

<암살>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실존 인물들에 대한 구체적 묘사를 통해 몰입도를 높였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이며, 이외에도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분), 살인청부업자 하와이피스톨(하정우 분), 약산 김원봉(조승우 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분) 등이 등장한다. 조국의 독립, 돈, 명예 등 제각기 다른 목표를 지닌 이들은 복잡하게 얽혀 영화를 구성한다.

 

   

 

1933년, 일본은 조선을 넘어 본격적인 대륙 진출을 시도한다. 대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은 만주와 중국에서 숨죽이며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경성에는 흥과 사치가 넘쳐 흐른다. 미쓰코시 백화점은 사람들로 붐비고, 친일파는 호화로운 삶을 영위한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 군의 수뇌부와 친일파를 향한 암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암살 목표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 암살 작전을 수행할 사람은 한국 독립군 최고의 저격수 안옥윤과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속사포, 그리고 폭탄 전문가 황덕삼이다. 백범 김구에게 선발돼, 약산 김원봉에게 보내진 이들은 암살에 필요한 자금과 물품을 지급받고 조선행 배에 오른다.

 

암살을 위해 조선으로 잠입한 암살단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한편, 이들 암살단을 직접 모집했던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 일본군에 독립군을 고발해 돈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 김구의 의심을 산 염석진은 동료들을 죽이고, 조선에 들어와 일본 경찰로 변모한다. 살인청부업자 하와이피스톨은 염석진을 통해 거액의 돈을 약속 받고 암살단을 죽이기 위해 조선으로 향하지만, 오히려 이들 암살단의 암살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카와구치 마모루와 강인국을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변절자 염석진으로 인해 고초를 겪는다.

 

<암살>에 담긴 허구와 진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님에도 <암살>은 그보다 더 큰 감동을 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박 교수 또한 “굉장히 잘 제작된 영화”라며 <암살>에 대해 후한 평가를 내렸다. “<명량> 등의 영화보다 오히려 아쉬운 점이 적었어요. 아예 픽션이다 보니 사실관계가 어긋날 일이 없었고, 특히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친일파 강인국이나 염석진 등의 인물은 당시에 실재했던 인물들을 합쳐놓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난 후 다소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약산 김원봉, 백범 김구 등의 실존인물은 영화에서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보다 가상의 인물인 강인국과 염석진에 포커스를 맞춘다. “강인국을 보면서 실제 친일파 인물 중 문명기라는 사람이 떠오르더군요. 강인국과 마찬가지로 금광 사업을 하기도 했고, 나중에 비행기 사업도 했죠. 특히 영화 중간에 강인국이 금으로 만든 명함을 건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명함에 대한 이야기도 문명기에 대한 실제 역사적 사실입니다. 부담스럽지 않게 자연스럽게 뇌물을 주는 방법이었던 거죠.”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묘사는 어땠을까? 박 교수는 전반적으로 훌륭했지만, 이야기 진행을 위해 연도가 다르게 설정된 부분은 있다고 밝혔다. “1933년에 김원봉과 김구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워요. 김원봉의 경우 그 즈음까지는 사회주의적인 활동을 주로 했고, 김구와는 노선이 많이 달랐습니다. 나중에 1940년대가 되면 김원봉과 김구가 손을 잡게 되지만, 40년대로 영화의 배경을 설정하려면 중일전쟁 같은 부분을 표현해야 해서 힘들었을 겁니다.” 박 교수는 연도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묘사나 고증이 아주 좋았다고 평했다. ”1930년대 초반의 경성에는 다소 흥청망청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1931년에 만주국이 세워지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돈이 많이 흘러 들어오던 시기였죠. 그런 분위기를 잘 표현했습니다. 또한 그 시대의 댄스홀이나, 미쓰코시 백화점, 또 그 옆의 경성우체국 벽돌 담까지. 정말 고증은 집요하게 잘 해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의 <날개>에도 등장하는 미쓰코시 백화점은 광복 후 명동 신세계 백화점으로 탈바꿈했다.

 

박 교수는 등장인물 중 염석진에게 가장 눈길이 간다고 했다. “최동훈 감독이 염석진이란 캐릭터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이승만 정권을 뒷받침한 가장 핵심적인 세력이 바로 친일 경찰이었기 때문이죠. 영화 후반부에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염석진이 변명하는 모습은 그 뻔뻔함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실제 친일파 인물들도 영화와 비슷하게 풀려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물론 영화상에서는 결국 친일파 염석진의 처단이 이뤄지나, 현실에서는 무력화 됐던 친일 청산문제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친일 청산문제는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광복 70년, 기억하라 그들을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결국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들을 기억하라.” 누구를 기억해야 한다는 걸까. 독립에 몸을 바친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도 있지만, 반대로 친일파들의 파렴치한 행적을 오래오래 기억하자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을 많이 만나 봤어요. 참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친일파의 후손들은 축적된 부를 기반으로 기득권을 쥐고 살아남았지만,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거죠.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면 일본 헌병대에서 집을 다 불태워 버렸고, 돈이 없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까요.” 결국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현재로 이어진 과거의 유산 그 자체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그 후손들에 대한 예우가 왜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역설했다. “조선시대 역사를 살펴보면 신기한 부분이 있어요. 임진왜란 때 전국적으로 의병활동이 이뤄졌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조선 정부는 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큰 포상을 내렸습니다. 예를 들어 평민은 양반으로 승격해주는 등, 파격적인 포상을 했죠. 그 후, 300년 뒤 구한말에 다시 의병활동이 일어났어요. 정말 놀라운 점은 구한말의 의병들 중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했던 분들의 후손들이 굉장히 많았다는 겁니다.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사명감이 있었던 거죠. 결국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설 수 있으려면 그만큼 내 가정, 내 후손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거죠. 설사 내가 희생이 된다 해도 내 자식들만큼은 나라에서 지켜주겠다는 보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영화 <암살>을 통해서도, 우리가 다시 한 번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우진 기자 wjdnwls@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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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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