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비밀을 밝히고 질병의 인과 찾는 데 제 연구가 작은 밑거름 되길”

한양대 생체공학과 임창환 교수가 카메라 없이 눈의 움직임으로 글자를 쓰는 안구마우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더욱 정교하고 편리하며 비용이 저렴해 사지마비 환자의 의사소통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이다. 뇌질환의 비밀을 풀어내는 여러 의미 있는 연구들에 힘써 온 임창환 교수를 만났다. (글. 김문영 / 사진. 안홍범)

 

카메라 없는 안구마우스

 

   
▲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연구에 매진 중인 생체공학과 임창환 교수.

온몸의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이나 사지 마비 환자들에게 눈은 최후의 보루다. 몸을 움직이지 못해 눈으로 의사소통하는 이들을 위해 임창환 교수가 또 하나의 희소식을 전했다. 눈의 움직임을 추적해 글자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안구마우스다. 이 연구는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 신경시스템 및 재활공학’ 학술지 온라인판에 공개돼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2008년 개봉한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는 뇌졸중으로 온몸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고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영화 <내 사랑 내 곁에>는 루게릭병을 앓는 주인공이 힘겹게 눈을 깜빡이며 마지막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으로 보는 이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카메라로 눈동자의 움직임을 촬영해 글자를 입력하는 기술은 이미 개발돼 있었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임창환 교수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안구마우스는 눈 주위에 전극을 붙여 전기신호를 얻는 방식으로,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환자의 시야를 방해하지 않고 조명의 영향에서도 자유롭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인식률이 떨어졌던 이전 방식에서 한 단계 진보한 기술이다.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는 안구마우스는 세계적으로 꾸준히 연구가 진행됐지만 특기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눈동자가 상하좌우로 단순하게 움직일 때만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임창환 교수는 눈동자가 대각선으로 움직이거나 빠르게 연속 움직일 때 발생하는 간섭신호를 제거해 인식의 정확도를 높였다. 눈동자로 A라는 글자를 그리면 그대로 A라고 인식한다. 칸이나 줄을 바꾸고 글자를 지우는 기능 등은 눈동자로 특정 패턴을 그리면 작동한다. 한 글자를 입력하는 데 약 5~10초가 걸린다.

 

정신적 타자기와 뇌-컴퓨터 접속의 혁신

 

안구마우스조차 사용할 수 없는 환자와는 어떻게 의사소통할 수 있을까? 사용자의 뇌파를 측정하고 분석해 의도를 읽는 기술은 임창환 교수의 대표적 연구 주제다. 임 교수는 지난 2012년 정신적 타자기를 개발해 사지 마비 환자의 의사소통을 위한 또 한 번의 혁신을 이뤘다. 사용자에게 주파수 자극을 주어 뇌의 의도를 읽어내는 방식인데 눈동자를 움직이기 힘든 환자가 자판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글자를 입력할 수 있게 해 준다.

 

임창환 교수는 LED와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이전의 정신적 타자기보다 빠르고 정확한 성능을 얻었다. 자판에는 알파벳 30개가 배열돼 있고 이 문자들은 서로 다른 주파수로 깜빡인다. 머리에 전극을 붙이고 자판을 보면 사용자가 집중해서 바라보는 문자를 읽어 들인다. 이전 시스템은 모니터 자체에서 발생하는 주파수가 간섭을 일으켜 정확도를 떨어뜨리는 단점이 있었는데 LED를 사용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또한 주파수 간 간섭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알고리즘을 개발해 정확도를 높였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분당 12타, 정확도 90%에 이르는 놀라운 성능을 선보였다.

 

인류의 미래를 바꿀 뇌공학

 

   
▲ 임 교수는 지난 2012년 정신적 타자기를 개발해 사지 마비 환자의 의사소통을 위한 혁신을 이뤘다.

 

뇌질환은 어떤 원인으로 발생하는가, 인간의 뇌는 어떤 기제로 작동하는가, 뇌와 컴퓨터(기계)는 어떻게 연결되고 소통할 수 있는가. 임창환 교수의 연구는 인간 뇌의 비밀을 밝히고 뇌를 닮은 기계를 완성하는 뇌공학의 주요 분야에 두루 걸쳐 있다. 특히 앞서 소개한 정신적 타자기를 비롯해 뇌와 컴퓨터의 접속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들을 축적해 왔다. 뇌-컴퓨터 접속은 뇌의 신호를 컴퓨터 등 외부기기로 전달하거나 외부기기로부터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저희 연구실은 주로 뇌-신경계 질환을 앓는 환자를 대상으로 뇌공학 기술을 연구합니다. 공학으로 뇌-신경계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고 나아가 원인 규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뇌는 인간의 장기 중 유일하게 작동 원리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기관이에요. 뇌에 대해 알려진 것은 10%가 채 안 된다고 합니다. 공학으로 도전해야 할 것이 무궁무진한 영역입니다.”

 

뇌질환 환자를 위한 연구뿐만 아니라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기술들도 임 교수의 연구 주제다. 뇌파를 측정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제품 정보를 알아내는 뉴로 마케팅, 웨어러블 장비를 활용해 뇌파를 측정하고 교육 및 엔터테인먼트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기술 등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임 교수는 2015년 일반 독자에게 뇌공학의 중요성을 알리고 주요 연구 성과와 흐름을 소개하기 위해 <뇌를 바꾼 공학, 공학을 바꾼 뇌>를 출간했다. 이 책은 왜 선진국이 뇌공학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는지, 뇌공학이 뇌질환을 정복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연구자의 신념과 열정

 

 

   
▲ 임 교수는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 학부와 대학원 강의, 논문과 도서 집필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저 우직하게 시간을 투자’하며 목표를 성취하고 있다.

 

뇌와 공학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펴내면서 수시로 강의 요청이 들어온다. 바쁜 와중에도 임 교수는 고교생을 만나는 자리에는 꼭 시간을 내서 찾아가려 애쓴다. 인간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이래 인간을 닮은 기계를 만드는 이야기에 눈을 빛내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 학부와 대학원 강의, 논문과 도서 집필 등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목표를 성취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임창환 교수는 “그저 우직하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출간한 책은 1년 동안 매일 밤 카페로 출근하면서 꾸준히 글을 쓴 결과물이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책 쓰는 시간으로 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일정을 지키고자 했다. 그렇게 기계와도 같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 주위를 보면 연구로 성공한 분들에게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연구에 미쳐 있다고 할까요. 밥 먹을 때나 지하철을 탈 때나 연구 주제에 골몰해 있어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그러한 태도나 습관을 요구할 수는 없어요. 저는 박사과정일 때 그런 열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게 못하지만(웃음) 대신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투자하려고 해요.”

 

조금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기술

 

최근 임창환 교수의 주요 관심사는 외부에서 뇌를 자극하고 조절하는 기술이다. 전류나 빛으로 자극을 보내 뇌 기능에 변화를 일으키는 연구인데 새로운 뇌질환 치료 수단으로 큰 의미가 있다. 임 교수는 치매, 뇌졸중 등 퇴행성 뇌질환을 극복하는 것이 인류의 당면 과제라고 말한다. 특히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인 사회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아직까지 수많은 뇌질환에 대해 과학적 진단 방법조차 정립돼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문진이나 설문 같은 진단 방식이 아니라 뇌의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는 객관적 지표를 개발해야 하고 객관적 진단을 토대로 치료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 뇌의 비밀을 밝히고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데 제 연구가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 뇌공학 연구는 이론을 넘어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실용적 기술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임 교수는 한양대학교병원 김승현 교수팀 등과 협업해 환자 대상 연구를 꾸준히 해 오고 있으며, 우리 뇌공학 역시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를 설득해 연구와 실험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환자와 가족의 높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어제의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연구가 뇌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절실하게 쓰일 수 있다는 믿음이 연구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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