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서울대 연구팀, 세계 최초로 결정핵 생성 순간 관찰에 성공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誌에 논문 게재 향후 반도체·디스플레이 소부장 분야 원천기술 확보에 활용 가능
하늘에서 내린 눈과 바다로부터 얻은 소금에는 공통점이 있다. 아주 작은 입자로부터 시작되어 큰 덩어리를 이룬다는 점이다. 가령 대기 중의 수증기는 얼며 ‘눈핵’이라는 아주 작은 입자를 만들고 이후 주변 수증기들이 달라붙으며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결정이 커진다.
원자가 모여 물질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핵 생성(nucleation)’이라는 과정이 필수적이지만, 그 과정이 매우 미세한 영역에서 빠른 속도로 일어나 원자의 크기는 수 옹스트롬(Å․백억 분의 1m) 수준으로 작고, 대략적으로 적어도 100분의 1초보다 빠른 속도 범위에서 핵 생성 과정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핵 생성의 메커니즘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처럼 1800년 후반부터 지속된 핵 생성에 관한 난제가 마침내 해결됐다고, 과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가 29일 밝혔다.
한양대 ERICA캠퍼스 기계공학과 이원철 교수, 홍석준 교수, 전성호 박사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박정원 교수(IBS 나노입자 연구단 연구위원), 미국 로렌스 버클리국립연구소(LBNL)가 주도한 국제공동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핵 생성(나노 결정의 탄생 순간)을 원자수준에서 직접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공동 연구팀은 핵 생성 과정을 관찰하고자 원자 한 개의 두께만큼 얇은 그래핀 막 위에 전자빔을 받으면 금(金) 원자를 방출하는 나노 물질을 합성했다. 이렇게 합성된 시편을 미국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가 보유한 세계 최고 성능의 전자현미경을 이용, 세계 최초로 관찰에 성공했다. 즉, 연구팀은 금 원자들이 모여 나노 결정을 생성하는 순간을 초고속(1000분의 1초 수준)·초고해상도(개별 원자가 식별되는 수준)의 영상으로 촬영했다.
관찰된 결과에 따르면, 핵 생성 과정은 금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뭉친 덩어리 구조’와 ‘원자가 정렬된 결정 구조’의 두 상태를 가역적으로 반복하며 진행됐다. 이는 결정 구조의 핵이 먼저 형성된 후, 그 구조를 유지하며 커질 것이라는 전통적인 이론과 배치되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핵심 결과를 ‘Reversible disorder-order transitions in atomic crystal nucleation’이라는 논문 제목으로 표현했다.
또 연구팀은 해당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열역학 이론을 제시했다. 약 수십 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 초기 핵 생성 단계에서는 ‘무질서한 구조’와 ‘결정 구조’를 반복하는데 필요한 에너지가 작아 두 구조가 반복되는 반면, 200여개 이상의 원자가 뭉치게 될 경우 결정 구조의 에너지 상태가 무질서한 구조에 비해 더 안정적으로 변화해 결정핵 생성 과정이 완료된다는 이론이다.
이번 연구의 의미에 대해 박정원 교수는 “과학적 관점에서 결정핵 생성(crystal nucleation)의 새로운 기작을 발견하고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해 고체 물질이 형성되는 과정의 근본 원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원철 교수는 “공학적 관점에서 박막 증착 공정의 극 초기 상태를 실험적으로 재현하고 관찰해 향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부품·장비 (소부장) 분야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데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양대 ERICA캠퍼스의 구성원이 주저자로서 CNS(Cell, Nature, Science)급 저널에 최초로 논문을 출판했다는 점과 더불어 국내 대학 연구자의 아이디어를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외 연구기관과 협업해 현실화한 ‘성공적인 협력연구 모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한국연구재단의 4단계 두뇌한국21(BK21) 사업과 기초과학연구원(IBS) 등 정부 지원과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등 민간 지원을 통해 연구가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