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수 교수, 바이올린으로 인생을 연주하다

안면 마비 극복하고 최고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2021-10-01     김도엽 기자

김응수 관현악과 교수가 지난 24일 신규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을 가졌다. 김 교수는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는 중에도 국내외 다수의 공연을 통해 음악가로서의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연주자로서는 치명적 위기였던 안면 마비를 극복하고 국내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그의 음악 인생을 들어봤다.

 

▲ 김응수 관현악과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 그라츠(Graz) 국립음대와 독일의 하노버 국립음대를 모두 수석으로 졸업하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줬다. © 김응수 교수

김 교수는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음악을 접하게 됐다. 그는 “당시 들었던 음악의 선율에 나도 이런 곡들을 연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음악인의 길로 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높은 음역의 소리를 좋아했다는 그는 “과거 첫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서 본 바이올린 연주자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바이올린 독주곡과 협주곡을 따로 찾아 들을 정도로 바이올린에 매료됐다”고 밝혔다.

해외 음악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김 교수는 유수의 콩쿠르 대회에서 입상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에게 2004년과 2006년 연달아 안면 마비라는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경제적 여건상 자신만의 악기를 구매할 수 없었던 그는 중요한 공연이 있을 때마다 바이올린을 대여해서 사용했다. 이 점은 그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겼고, 안면 마비로 이어지게 됐다. 그는 “음악가로서 소리에 대한 열망을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점이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다”며 당시 겪었던 감정을 털어냈다. 

김 교수가 안면 마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음악에 대한 마음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결코 바이올린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다짐이 안면 마비를 딛고 연주를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다.

 

▲ 지난 2016년 함께한대 주최 자선기금 음악회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김응수 교수의 모습. 김 교수는 한양의 구성원으로서 많은 행사에 참여해왔다.

김 교수는 지난 2012년부터 한양대 음악대학 교수로 재임하며 미래의 음악 인재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교육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 중에 하나”라는 그는 제자들로 구성된 앙상블 ‘카메라타 솔(Camerata SOL)’과 여러 차례 협연하기도 했다(클릭 시 관련 기사로 이동).

음악대학 구성원들과 김 교수는 백남음악관에서 오는 11월 18일 다시 한번 한양인을 위한 음악회를 진행할 계획이다. 그는 “코로나 19로 지친 마음을 음악을 통해 치유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음악회를 기획했다”며 공연에 대한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

 

▲ 김 교수가 지난 24일 개최한 공연 포스터의 모습. 그는 지난 2017년 앨범 ‘동경(EHNSUCHT)’ 발매를 시작으로 바이올린 앨범 발매에도 힘쓰고 있다. © 예술의전당

교수이기 전 한 명의 음악가이기도 한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지난 24일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개최했다. 그가 지난 7일 발매한 음반의 표제인 ‘Das Leben’은 독일어로 ‘삶’을 의미하는데, 그가 살아온 삶에서 추억이 서린 여러 곡을 바이올린으로 녹음한 음반이다. 특히 그는 "이번에 발매한 앨범의 곡 상당수는 지난해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다"고 소개했다. 

음악은 평생 동행하는 또 다른 자화상이자 살아가는 동안 추구해야 할 가치의 명분이라는 김 교수. 끝으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에게 위안과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한양의 제자들을 향해서도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 말고 꿈을 향해 정진하기 바란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