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PER] 불명확한 난제의 시대 융합에서 답을 찾다
Theme Story 2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술경영학과 김지은 교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융합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전 세계는 분야의 경계를 없애고, 다방면의 지식을 융합하며,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리 역시 융합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생태계에서 배우는 융합!
전 세계적으로 꿀벌의 집단 실종은 큰 화제이자 걱정거리다. 국내에서도 올해 들어서만 100억 마리가량의 꿀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라진 꿀벌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식물은 ‘수분(Pollination)’을 통해 생식한다. 같은 종류의 식물에서 암술과 수술의 꽃가루가 옮겨지는 과정은 자가수분(Self-Pollination), 서로 다른 그루나 다른 꽃 사이의 수분은 타가수분(Cross- Pollination)이라고 한다. 타가수분은 여러 가지 식물의 유전자를 섞어 대립 유전자의 다양성을 증가시키므로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꿀벌은 전 세계 100대 작물의 70종 이상의 타가수분을 책임지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다.
식물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꿀벌과 타가수분이 필요하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리 플레밍 교수는 <완벽한 타가수분>(Perfecting Cross-Pollination)에서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익숙한 분야에서 벗어나,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른 분야와의 타가수분이 필수적이다”라고 강조했다. 하나의 문제를 예로 들어 보자. 범죄자의 행위를 예상해 볼 수 있을까? 이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화학, 생물학, 유전공학, 물리학, 공학 등 여러 과학기술을 활용한 증거 확보 방법과 심리학적 범죄자 이해 및 사회학적 인간 행동과의 연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혁신 타가수분(Innovation Cross-Pollination) 과정은 결과적으로 법과학(Forensic Science)이라는 융합학문을 탄생시켰다.
■난제와 21세기 교육·연구 재조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지구 온난화는 실재하는 것일까? 인공지능은 진정한 미래가 될 수 있을까?
위 질문들은 ‘U.S. 뉴스 & 월드 리포트’ 대학 랭킹에서 7년 연속 가장 혁신적인 대학으로 선정된 애리조나주립대학교 신입생들에게 주어지는 문제다. 현대사회에서 풀어야 하는 문제는 복잡하고, 재현 불가능하며, 그 범위가 넓어 단일 학문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디자인과 도시정책 연구학자인 리텔과 웨버는 이를 ‘불명확한 난제(Wicked Problem)’로 정의했다. 불명확한 난제는 문제의 불완전성과 복잡한 상호의존성으로 인해 문제의 한 측면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다른 문제를 드러내거나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는 모순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고 경고한다.
학제 간 융합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란 이처럼 문제가 너무 광범위하거나 복잡하여 하나의 학문이나 방법으로 적절하게 다뤄지지 않는 질문에 답하거나 해결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21세기 사회, 산업, 교육 변화 움직임과 함께 주목받고 있다.
■좁은 범위의 융합 vs. 넓은 범위의 융합
학제 간 교육의 선구자 윌리엄 뉴웰 교수는 「학제 간 복잡성 이론」(Interdisciplinary Complexity Theory)을 통해 융합연구의 범위를 좁은 범위의 융합(Narrow Interdisciplinarity)과 넓은 범위의 융합(Wide interdisciplinarity)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융합을 요구하는 문제는 다층적인 특징을 가지며, 복잡도(Complexity)에 따라 학제 간 포괄적인 이해를 위해 학문 간의 통합(Integration)과 공통 기반(Common Ground) 형성이 필요하다. 통합은 두 개 이상의 학문이 모여 콘셉트, 가정, 방법, 이론을 서로 수정해가는 과정을 통해 동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공통 기반은 상충하는 콘셉트, 가정, 방법, 이론을 통해 이뤄진다. 또 학제 간 인식론적 거리(Epistemological Distance)는 학문 분야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물리학과 화학은 학문의 인식론적 관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데 반해 미술사와 수학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다.
좁은 범위의 융합은 넓은 범위의 융합에 비해 발생 빈도가 높고, 융합 효과가 단기적으로 클 수 있다. 예를 들어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는 기계공학(Mechanics)과 전자공학(Electronics)의 합성어로 고기능 제어를 위한 통합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한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및 로봇 시스템이 메커트로닉스를 기초로 개발되었으며 제어공학, 정보공학, 전력공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포함하는 기술 중심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다. 기술 중심 융합의 경우, 대부분 좁은 범위의 융합으로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틈새 분야를 발견하고 2~3개의 관련 학문의 결합으로 융합이 시작된다.
반면, 넓은 범위의 융합은 학문 간 인식론적 거리가 멀며, 복잡도가 높은 사회 및 인류 공통의 문제를 다룬다. MIT 빅데이터 저널리즘, 하버드대학교 의료사회학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융합형 인재상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과학사회 문제 대부분은 불명확한 난제(Wicked Problem)다. 따라서 넓은 범위의 융합을 위해서는 새로운 인재상이 요구된다. 하워드 가드너의 <미래 마인드>에서 주창하는 미래 사회에 필요한 마인드 중, 융합형 인재가 갖추어야 핵심 마인드는 다음과 같다.
• 통합 마인드 : 다양한 학문에서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종합할 수 있는 마인드
• 창조 마인드 : 새로운 문제를 발굴하고 창의적 발상을 할 수 있는 마인드
• 존중 마인드 : 협업 과정에서 조화와 배려를 실천하는 마인드
• 윤리 마인드 : 인류와 기술의 공동 가치를 실천하는 윤리 마인드
핵심 마인드 네 가지와 반대로, 융합을 저해하는 심리학적 요인으로는 ‘전문가의 독재’라고도 이야기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을 들 수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연구자가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모으거나,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과 신념에 상충하는 경우 정보를 무시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확증 편향은 특정 학문이나 기술에 통달한 전문성(Disciplinary Bias)에서 기인할 수 있으며, 개인 성향(Personality Bias)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융합 과정에서 이러한 편향을 줄이고 초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대학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혁신 타가수분(Innovation Cross-Pollination)에서 찾을 수 있다.
■혁신 타가수분을 위한 대학의 변화
필자는 「광범위한 학제 간 커리큘럼의 배경 지도 작성」(Mapping the landscape of a wide interdisciplinary curriculum) 논문에서 한양대학교 교과과정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문적 연결성과 대학 내 융합 가능 학과에 대해 분석한 바 있다. 연구 결과, 50%가량의 교과목이 여전히 타학과 교류 없이 사일로(Silo) 방식으로 운영되며, 평균적으로 동일 키워드의 교과목이 3~4개 학과에서 개설돼 있었다. 인접 학과 클러스터는 총 6개로 대부분 전통적인 인문과학-사회과학-공학-자연과학 등의 학제 구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좁은 범위의 융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넓은 범위의 융합은 어떻게 해야 이뤄질 수 있을까? 마이애미대학 제임스 켈리 교수는 넓은 범위의 융합을 위해서는 도전적인 문제와 함께 상충하는 가정과 방법을 가진 학문 간 연결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즉, 클러스터 내(Intra-cluster)의 좁은 융합이 아닌, 클러스터 간(Inter-cluster) 연결이 시급하다.
한양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전공기초 수업은 경제, 경영, 디자인, 산업공학, 수학, 컴퓨터공학, 지식재산권, 실내건축디자인 등 12명의 다른 전공 교수진이 함께하는 팀 티칭으로 운영된다. 기술경영이 요구되는 난제(예: 왜 기술 중심의 혁신이 더 이상 성공하기 어려운가? 테크노폴리(Technopoly) 시대에 필요한 기업가정신은?)를 중심으로 매주 이질적인 가정과 이론, 방법론을 도입해 문제를 재정의하고 해결하는 융합형 교과목이다. 이러한 과정은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완벽한 혁신 타가수분(Perfecting Innovation Cross-Pollination)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향후 넓은 범위의 융합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과학적 접근법인 축소지향적, 경쟁적, 결과 기반 마인드에서 탈피해야 한다. 나아가 학문 간 상이한 속성을 존중하고 창의적 아이디어 발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문제 중심의 학제 개편, 유연한 교과 운영, 융합교육 평가 체계 도입 등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혁신 타가수분이 자리 잡도록, 대학의 혁신적 의사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HYPER'의 2022년 여름호(통권 262호)에 게재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