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독서클럽, 연암에게 묻고 길 위에서 찾은 21세기 문명의 답
Ask a Book 한문독서, 열하일기 읽고 체험하며 고전을 100% 즐기다 연암에게 듣는 격동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지혜 “고전은 오래된 미래” 잃어버린 깊이와 사유를 되찾다
백남학술정보관이 주최한 ‘Ask a Book 한문독서’ 프로그램이 한 달간 달려온 여정을 마무리했다. Ask a Book 한문독서는 교수와 함께 원문을 읽는 특강과 고전 속 현장을 찾는 답사로 구성된다. 도서관과 지역사회를 잇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한양인뿐 아니라 지역 주민도 참여할 수 있다. 지역 주민에겐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들에겐 고전의 현대적 가치를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열하일기, 편견을 뛰어넘은 소통의 가치를 보여주다
올해 선정된 고전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다. 열하일기는 세계 최고의 여행기로 평가받는 작품으로 조선 최초로 중국 열하에 다녀온 연암의 견문을 담은 연행록이다. 연행록이란 조선 후기에 중국에 사신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다. 강의는 연암을 중심으로 조선의 실학자를 연구해 온 박수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가 진행했다. 박 교수는 열하일기를 “수많은 연행록 가운데 압도적인 문학 성취를 보여주는 고전이다”고 평가했다.
연암은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 국제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을 들려준다. 열하일기에는 인류가 공존하기 위한 보편적 윤리가 담겨 있다. 연암은 마부의 안위를 걱정하고 마두와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등 신분을 넘어선 인간애를 보여준다. 티베트 불교에 대해 예를 갖춰야 한다며 유학에만 매몰된 조선을 꼬집기도 한다. 연암의 존재론적 평등 의식, 문화 상대주의, 열린 마음과 생명 존중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소셜미디어와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울타리 안에 가둔다”며 “연암이 보여준 신분과 종교, 사상을 뛰어넘은 소통은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하고 소중한 가치다”고 설명했다.
강진하(국어국문학과 2) 씨는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연암의 면모에서 당대 사대부와는 다른 비범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강 씨는 “편견 없이 다양한 인물과 소통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며 “그런 태도가 글쓰기에 필요한 통찰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의주길 답사로 연암의 길을 따라 걷다
참여자들은 강의실에서 나와 실제 사신단이 연행했던 의주길을 답사했다. 답사에는 연행 전문가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신춘호 PD가 동행했다. 답사 경로는 당시 연행에 함께했던 노이점의 <수사록>을 참고해 구성했다. 답사단은 사신들의 동선을 따라 경기감영 옛터에서 시작해 홍제교로 향했다. 열하일기 특강에 참여한 학생과 지역 주민 25여 명이 참여했다.
이준혁(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2) 씨는 답사를 통해 여행을 기록하는 법을 배웠다. 이 씨는 “평소 여행을 좋아해 프로그램에 신청했다”며 “다큐멘터리로 재구성한 열하일기를 보고 공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다양한 방식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공을 살려 공간에 대한 전자 아카이빙을 시도해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고전은 오래된 미래다
박 교수는 “열하일기가 청년들에게 ‘즉사진취(卽事眞趣)‘와 ‘선변(善變)’ 정신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즉사진취는 과거에서 벗어나 눈앞 현실에서 참된 정신을 찾는 태도다. 당시 조선은 ‘숭명배청’에 입각해 멸망한 명을 섬기고 패권을 쥔 청을 오랑캐로 업신여겼다. 반면 연암은 청나라가 선진문명의 강대국임을 간파했다. 이에 연암은 청나라로부터 선진 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활의 도구를 유용하게 활용해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이용후생’의 정신을 내세웠다.
선변은 잘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연암은 옛것을 존중했지만 궁극적으로 변화를 지향했다. 연암은 과거에 갇히지 않고 현실을 직시해야만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21세기는 한 치 앞을 예단하기 어려운 시대다”며 “연암의 정신을 이어 시대 현실을 잘 살펴 미래 사회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연암을 기리는 문학관조차 없는 현실은 한문 고전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여준다. 박 교수는 “한문과 고전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 거리가 우리가 잃어버린 깊이와 사유의 자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전 독서는 과거의 지혜를 되새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며 “고전의 언어와 사유를 통해 오늘의 나와 우리의 삶을 비춰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