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 치료의 '희망'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김철근 교수

"생명의 존엄 지키려 죽어가는 생명을 방치하자구요?"

2003-05-01     박용일 학생기자

 올해 초,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는 인간복제회사 클로네이드사의 인간복제 성공 발표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 사건은 인간복제가 가능한가라는 과학적 논의에서부터 윤리적 타당성과 같은 본질적인 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결국 이 사건은 클로네이드사가 인간복제에 대해 실질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과학과 윤리 사이에 내재한 잠재적 갈등들을 범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인간복제를 둘러싸고 과학자들과 윤리론자들 사이에 전개됐던 논쟁의 중심은 바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것이었다.

 

 생명윤리 VS 과학발전, 그 접점을 찾아라

 

 '줄기세포'란 신체 내에 있는 모든 조직을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뼈, 뇌, 근육, 피부 등 모든 신체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만능세포다. 수정란 분열 초기의 만능 줄기세포는 수정란이 2개로 분열되어 탄생한 일란성 쌍생아처럼 세포 하나 하나가 곧 한 명의 태아가 될 수도 있어 이를 연구용으로 사용할 경우 엄청난 윤리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서울캠퍼스 자연과학대학 김철근(생명공학전공) 교수의 생각은 분명하다. 생명 윤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류 번영을 위한 연구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인 제가 윤리 문제에 대해 깊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세포하나 하나가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체세포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어떤 세포든지 하나만 가지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결국 현재의 논의처럼 인간이 어디서부터인가라는 식으로 논의가 된다면 그 어떤 연구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연구의 원천적인 제한보다는 엄격한 통제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거죠. 혹자는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생명들을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에서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들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2001년 대한 줄기세포연구회를 창립하고 보건복지부에 줄기세포주 은행을 제안했다. 은행을 통해 과학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만 인간배아세포를 제한적으로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 사업은 이해 관계에 놓인 각계 단체들과 기존 줄기세포주를 보유한 연구소들의 반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 윤리와 과학 발전, 이 두 가치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배아줄기세포, 난치병 치료 위한 새로운 '희망'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인류에게 극복해야할 질병이 많이 있다. 그 중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이 신경계통 질병에 대해서는 신이 과학의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치료법에 대한 연구는 갈길이 멀기만 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이러한 신경계통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신경들은 한번 손상을 받으면 재생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뇌신경이나 척수신경과 같은 경우, 한번 손상을 받으면 복구가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다양한 실험 결과, 배아줄기세포를 자극해 신경계통으로 분화시켜 넣어주었더니 기존 신경세포들과 연결이 돼서 작동이 됐다는 겁니다. 즉 배아줄기세포를 계속 보관할 수 있고 원하는 쪽으로 분화시킬 수 있다면, 이러한 질병들은 완치될 수 있습니다. 이 분야의 특성상 한 두 해에 되지는 않겠지만, 10년 정도 후에는 가시적인 치료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의 말대로 신경계통 난치병 치료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늦어졌던 이유는 추출과 보관상의 어려움 때문. 쥐의 배아줄기세포는 1981년경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인간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1998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주자들에게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또다른 기회. 김 교수는 국내 불임관련 의학기술이 증명하듯 줄기세포 연구도 세계 수준에 비해 크게 뒤 처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생명공학 붐이 2기입니다. 1980년대가 1기였죠. 당시에는 주로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했었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보통 10년에서 20년 정도 연구를 해야 하는 분야에 5년 정도 투자했다가 성과가 없어 사업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기업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투자와 인력 양성을 해 나가야 합니다. 비록 자본의 규모가 작아 문제가 있지만 적극적인 노력과 외국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한다면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전망이 매우 밝습니다"

 

 생명공학시대 '100분의 1'을 잡아라

 

 흔히 생명공학은 일반 과학 분야 중에서도 연구가 극히 까다로운 분야로 간주되곤 한다. 이는 학문상의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 가시적인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 쉽지 않은 분야의 선택, 그 가운데에서도 생물의 기본 단위인 세포에 대해 연구하는 김철근 교수는 자신이 생명공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촌놈이었기 때문'이라 크게 웃으며 답한다.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십니다. 저 역시 유년을 시골에서 살면서 자연과 생물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렸을 적, 개구리가 궁금하면 근처에 버려져 있는 유리병을 깨서 해부해 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물, 그 중에서도 생물의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물을 때면 의례히 과학자, 생물학자로 썼습니다. 저는 생명공학을 하면서 공부해서 취업을 하겠다, 또는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 밥이야 굶겠느냐라는 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지금은 정보화시대라고 하지만 미래는 생명공학시대가 될 것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물론 생명공학이라는 분야가 장기적인 훈련을 받은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지만 미래를 뒤바꿀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을 하는 저 역시 이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연구에 필요한 자본 규모가 크고 연구분야에서 성공할 확률이 적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100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99개의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단 하나의 프로젝트만이 성공한다고 해도 99개를 만회하고도 남습니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학문이죠. 생명공학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줄기세포연구, '한양네트워크'를 꿈꾼다

 

   
 

 "저는 임상의사도 아니고, 의학자도 아닙니다. 저는 생명과학자이기 때문에 왜 줄기세포가 전능성을 가지고 분화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지 분화를 억제하고 촉진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다른 훌륭한 의학자나 임상학자분 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생명공학자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는 그는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본교의 인프라를 국내 최고 수준이라 평가한다. 의과대학에서는 줄기세포 관련 임상관련 학자들이 많고, 공대 역시 세포자극과 같은 공학적 연구인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한양 네트워크'에서 생명공학의 미래를 보았다면 이는 단지 막연한 희망일까?

 

 "본교는 의대에 세포치료 및 조직치료 연구단이 있고 저희 생명공학 쪽에서는 이 분야와 관련해 BK21 연구단 사업을 3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통합 네트워크를 이뤄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 연계성이 깊은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국내에 차병원이 연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만큼 우수한 공학인력까지 있는 곳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연구를 제외한다면, 이 훌륭한 인프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구를 조직해 보고 싶습니다."

 

 학력 및 약력

   
 
 김철근 교수는 1981년 본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서울대학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워싱톤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1990년 코넬대 의과대학원에서 분자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미국 후레드허친슨암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수를 하며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국내외에 약 5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종양 억제 유전자의 프라이머쌍을 포함하는 암 진단용 벡터' 등 5건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작년까지 '기간세포와 초기 발생분화' BK21 사업단을 주도했고 현재 한국분자생물학회 학술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