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에서 잃어버린 음악의 원류 찾는 음악대학 관현악과 강해근 교수

"바흐 들으며 카라얀을 떠올리는 우울한 현실"

2003-05-08     김자영 취재팀장

 '메트로놈'이란 작고도 앙증맞은 기구가 있다. 시계추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약 15센티미터의 흔들이 아래쪽 끝에 추가 달려 있고, 진동 주기는 위쪽에 있는 추를 오르내려 조정하며 태엽장치로 흔들이를 진동시킨다. 흔들이는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고, 벨을 울려 박자를 알린다. 베토벤이 귀가 멀자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멜젤(Melzel Metronom)이 베토벤을 위해 발명했다는 기구다.

 

 주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이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메트로놈은 '흥에 겨워' 악보의 박자를 쉬 놓치고 마는 초보 연주자들에게 '재현'의 기준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기구다. 이러한 메트로놈처럼 현대음악의 낭만성에 빠져 있는 대중들에게 '오선의 룰'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나선 음악가가 있다. 음악연구소 소장으로 최근 '정격연주회'를 주최하며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음악대학 관현악과 강해근 교수. 그는 '달콤하기만 한 요즘 연주에 질렸다면, 옛 음악이 들려주는 예스러움의 소박함에 귀를 기울여 보라' 말한다.

 

 바흐는 바흐답게, 당대의 '정신'을 연주하라

 

   
 

 "아직 우리나라에서 정격연주의 역사는 극히 짧다고 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정격 연주회는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우리 국내 청중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연주회를 위해 내한한 국외 연주자들의 반응이 더욱 좋았습니다. 내가 기획한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없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정격연주란 작곡 당대의 악기와 연주방식으로 해체·복원하는 연주방식이다. 외국에서 정격연주의 역사는 이미 1세기를 넘어다보고 있고, 음반 쪽에서도 이미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당대의 정신을 복원된 연주를 통해 엿보겠다는 것이다. 후기낭만주의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의 음악을 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은 동시대의 음악을 포기하고, 오래된 고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이를 두고 20세기 '음악사의 비극'이라 말한다. 과거의 시대정신이 숨쉬는 고전을 오늘의 낭만으로 재현하려다 보니, 본래의 빛을 바래기 시작했다는 것. 이른바 '바흐는 바흐답게 연주하라'는 강 교수의 주문은 정격연주의 근본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우리는 '옛날' 음악만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지요. 그런데 '옛 음악'을 들을 때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는 옛 음악을 주관적 해석을 통해 현대에 다시 들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연주 방식에 있어서 주류를 차지합니다. 둘째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당대의 모든 상황을 당시의 시각으로 보고 복원해 내는 입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격연주이지요."

 

 '음악회'는 없고 '이벤트'만 있다.

 

 한세대 유영재 교수는 작금의 국내 음악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극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음악회는 존재하지 않고 이벤트만이 있을 뿐이다. 고전음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음악과 상반된 개념으로 쓰이면서도 고전음악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중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이다' 한 교수의 지적과 같이 지금도 대중적 취향을 좇기에 급급한 국내 음악계에 있어 정격연주에 대한 관심과 역사는 그다지 오랜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격연주를 주창하는 음악가들은 정작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정격연주에는 단순히 음악적 기술이 아닌 '지식'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 정격연주를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느낌이 있습니다. 정격연주에 대한 관심이 이미 범사회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자연발생적인 애호가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 정격연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해외 유수의 음악교육기관들은 정격연주를 이미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국내의 상황은 아직 그렇지 못하죠. 정격연주에는 먼저 '지식의 문제'가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대의 룰과 관행, 상황 등 단순히 음악적인 지식이 아니라, 시대를 오르내리는 음악사적 식견이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격연주가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에야 부활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 교수는 정격연주에 대한 관심이 늦게 시작된 데에는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현대음악이 사람들의 기대를 과연 충족시켜 주는지를 먼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대다수의 연주가들은 옛 음악만을 연주하면서도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치 못했고 그만큼 청중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강 교수는 최근 정격연주에 대한 국내외의 높은 관심을 두고 음악사에 있어 가히 100년만의 성과라 얘기하기도 한다.

 

 기술에 앞서 '음악적 소양'이 중요해

 

   
 

 바흐의 마테수난곡을 가장 좋아한다는 강 교수는 첼리스트다. 모두가 얘기하듯이 첼로는 바이올린 등 다른 현악기에 비해 인성(人聲)에 매우 가까운 음역을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서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또한 강 교수는 첼로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으로 중후한 음색을 꼽는다. 대학시절 첼로를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연주자로서의 삶보다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강 교수. 그래서 현대 유명 연주가들을 양성하는 미국이 아니라, 고전의 고향인 독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음악을 공부했다는 그는 훌륭한 연주가의 조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론 악기를 다루는 기술적 부분입니다. 이른바 '탄탄한 기본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술은 오선상의 메시지를 재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기술을 통해 정작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연주자 내부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교양과 음악적 소양, 품성 등이 결국 훌륭한 연주의 바탕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청중들도 이젠 음악을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들으며 카라얀의 인상적인 지휘를 떠올리지 말고, 소리의 이면에 있는 바흐를 찾아보세요."

 

 학력 및 약력

   
 
 강해근 교수는 1947년 전라북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일찍부터 개화된 내력이 있어 어릴 적부터 집 다락에 있던 오래된 악기들을 꺼내 놀았던 기억으로 자신의 유년시절을 소개한다. 이후 학교에 있던 풍금을 쳐 본 기억이 유년시절 악기와 가진 인연의 전부라고. 전주에서 인문계 고교에 진학한 후 음악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됐다는 소박한 고백도 숨기지 않는다. 1973년 서울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독일 뮌헨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R. Strauss음악원을 거쳐 현재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음악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