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철학을 말한다-인문과학대학 역사철학부 이현목 교수
인간의 자유를 향한 끝없는 집념
탈현대주의가 팽배한 21세기, 기술의 포로가 된 인간은 '사유'를 멈췄다. 이른바 '플러그앤플레이'의 시대가 아닌가. 인간은 기계의 플러그를 꼽으면 그만일 뿐, 사유마저 기계에 떠넘긴 인간의 나태함은 곧잘 '효율성'을 이유로 면죄부를 받는다. 철학이 소멸한 시대. 많은 이들은 철학의 부활을 위해 철학이 도도한 관념적 자존심을 버리고 현실 속으로 편입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동시대적 시스템 속에 철학이 포섭되어 다른 학문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고, 이를 통해 범분과적인 기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인문과학대학 역사철학부 이현복 교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문제는 철학이 다른 학문과 관계를 맺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나치게 관계를 맺으려 한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암흑에서 암흑으로'
![]() | ||
"지금의 문제는 철학이 다른 학문에 기생해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종속적인 관계를 지향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봅니다. 스스로를 주변 학문으로 전락시킨 것이지요. 21세기의 화두가 된, 인간성 상실의 문제나 환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철학은 기생학문이 아니라 철학만의 학문이 되야 합니다. 철학이 과학에 종속되어 이론적 배경이나 만들어주고 현실사회의 쓰임을 억지로 찾으려다 보니 철학의 본령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철학으로 돌아가 옛 사람들이 얘기했던 철학의 본류를 회복해 놓는 것이 현대에 철학이 기여할 수 있는 철학다움입니다."
현실사회로의 포섭을 포기하고 철학의 학문적 자존심 회복을 주창하는 이 교수의 전공은 근대 독일 철학이다. 굳이 주제별로 분류하자면 형이상학, 인식론에 대한 탐구가 그의 주된 학문적 관심이 된다. 이성에 대한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근대 계몽의 기획을 주도했던 독일 철학이 그러하듯 이 교수가 디지털 시대에 있어서 철학의 소임을 다시 인간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철학이 외톨이가 되어 한없이 외로워질지라도 결코 기술에 포섭되지 않고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집념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진정한 계몽의 역사가 있었습니까? 저는 단연코 아직 없었다고 봅니다. 서구와 같이 우리가 차가운 이성을 바탕으로 계몽의 시대를 거쳤다면 지금은 매우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유의 풍토가 조성되어 있었겠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 그런 역사적 경험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른바 암흑에서 암흑으로 뛰어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는 겁니다. 가치관의 혼란과 인간성 상실 등 정보 문명이 야기한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매우 당연한 귀결입니다. 지금이라도 철학은 이 같은 문제들에 성실히 답해야 합니다."
그가 스피노자에 심취한 까닭은
![]() | ||
이 교수는 현재 17세기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 Baruch de) 연구에 푹 빠져있다. 스피노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격언을 남긴, 매우 낙관적이고도 자족적인 철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이 교수가 스피노자에 심취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속된 말로 그의 철학적 '내공'에 흠뻑 매료되었다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표면적으로, 외연적으로 철학을 한 것이 아니라 내면적으로, 실천적으로 철학을 한 사람입니다. 이론으로 듣고 공중에 떠도는 언어의 집합이 아니라 평생의 삶을 통해 철학을 구현해 낸 사람이죠. 1960년대와 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 이른바 ‘스피노자 르네상스’라 부르는 엄청난 연구의 붐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유럽사회가 인간의 자유에 대해 새롭게 각인하는 시기였지요.”
데카르트 철학을 바탕으로 희대의 저작 '윤리학(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을 집필했던 스피노자는 자신의 조상인 유대의 교리를 인정하지 않아 파문을 당하고, 각지를 전전하며 극도로 고립된 삶을 영위했던 철학자다. 그는 평생토록 결혼을 하지 않았고, 부와 명성 따위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렌즈를 갈아 생활을 영위하는 빈곤한 삶이었지만 167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교수직을 제안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오직 인간의 자유에 대한 스스로의 탐구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스피노자를 공부하고 있고, 집중적으로는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피노자에 매달려 왔습니다.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어렵고 난해한 철학자이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이 있어요. 스피노자는 '자유로운 인간은 어떻게 가능한가'하는 주제에 대해 매우 분석적이고, 심도 있는 사유를 보여준 철학자입니다. 인간 해방의 단계를, 계몽의 단계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시기에 사람들이 스피노자를 찾았다는 것은 잉여는 반드시 결핍을(정신적) 가져온다는 사실을 잘 증명하는 것이지요."
100명의 취업보다 1명의 철학적 거장 필요해
지난 수 십년간 철학에만 전념해 온 이 교수가 스피노자를 '어렵다'고 고백하듯이 모든 학생들은 모든 철학자가 하나 같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이 같은 학문적 난해함은 현실사회의 전망과는 별도로 학생들이 철학을 기피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는데 누구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이 교수 역시 '철학이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쉽게 검증되지 않는 난해한 학문'이라는데 이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학문 이전에 학문의 '환경'에 관한 것이다.
"유학 시절에 학부의 세미나 수업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갓 들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그야말로 초급 세미나였지요. 어느 날 한 학생이 발제를 하는데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히랍어와 라틴어의 원전까지 뒤져가며 작성한, 논리적인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학생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거의 완벽한 수준이었던 겁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 외에 교수나 다른 학생들 누구도 전혀 놀라지 않고 있더라는 사실입니다."
![]() | ||
이 교수는 오랜 세월 서구사회가 지녀온 사유와 대화의 문화에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부모의 위계에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대화하는 가정내의 소통 문화. 그리고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닌 상호간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학습하는 제도교육에 이르기까지 서구가 지켜온 '토론의 전통'이 바로 그들의 철학적 역량을 말해준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 교수는 국내 대학의 커리큘럼 속에서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세미나 수업'의 빈곤을 지적한다. 교수가 생경한 구호와 개념을 일방적으로 나열하고 설파하는 방식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치열한 사유의 과정을 거쳐 타인과 부딪히고 설득해 나가는 훈련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많고 적음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학과의 인기가 높고 낮음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중요한 것은 그들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참된 철학도를 양성하자면 실로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그가 4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할 때, 철학적 통찰력과 비판의식을 제대로 갖게 해주어야 합니다. 철학 강좌는 지금보다도 훨씬 힘든 수업이 되어야 합니다. 철학이란 것이 원래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성공이란 백 명의 취업이 아니라 한 명의 철학적 거장의 탄생입니다."
학력 및 약력 | ||||||
| ||||||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