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은 범죄 아닌 질병이다' 처벌을 넘어 재활로 가는 길
Dream-Seeker 한양 국제 프론티어 선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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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철저히 파괴하고 사회를 멍들게 하는 마약. 그 엄청난 영향력을 알기에 우리는 그동안 마약 확산 방지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이런 국가적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마약의 확산속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과거 특정 계층에서만 암용되던 마약은 중저가의 '필로폰' 밀수가 이루어지면서 마약사범 1만 명의 기록을 세웠다. 더욱 큰 문제는 이것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이다. 검찰은 우리 사회에는 밝혀진 인원의 20배에서 40배에 달하는 약물 중독자가 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마약정책은 일벌백계 차원에서만 진행되었다. 즉 냉혹한 처벌만이 사회적 선으로 받아 들여졌다. 2001년 마약 사범 구속자 중 단 2.8퍼센트만이 치료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은 어두운 우리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처벌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마약에 의존하지 않게 할 수 있는 치료와 재활이다. 마약사범 1만 명 시대,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기 위해 그리고 마약 수요 억제를 위해서 약물중독자에 대한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거주 치료공동체 '데이탑'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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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일정의 첫날 도착한 J.F.K. 공항에는 이미 '데이탑(Daytop)' 직원들이 우리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데이탑은 약물중독자들의 거주 치료 공동체를 운영하는 단체다. 안내 직원을 따라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뉴욕의 동쪽 외곽, 파락에웨이에 위치한 '엔트리앤리엔트리(Entry&Reentry)' 센터였다. 이곳은 치료를 받기 전 고객(데이탑에서는 약물 중독자들을 이렇게 부른다)이 자신에게 맞는 치료과정에 들어가기 전이나, 또는 이미 치료 과정을 모두 이수하였으나 아직 사회적으로 안정(직업이나 거주지 등)을 찾지 못하여 재발 위험성이 있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이었다. 즉, 이들의 치료는 단순히 약물의 해독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자립 기반이 어느 정도 이루어질 때까지 책임지는 형태인 것이다. 사회적 인격체로 거듭날 때까지 센터에서는 치료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미국에는 약물재판이라는 제도가 있다. 이는 약물 문제로 인하여 경찰에 구속이 된 경우, 범죄자에게 감옥으로 갈 것인지 데이탑과 같은 치료 기관으로 갈지를 결정하게 하는 제도이다. 데이탑의 고객들은 이런 약물 사범 80퍼센트와 자의 혹은 가족들에 의해 이곳에 온 20퍼센트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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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맨하탄에 위치한 데이탑 본부. 1962년 설립된 데이탑은 뉴욕에만 29개의 센터가 있었고, 그곳들은 모두 세계 곳곳에서 이 모델을 배우기 위한 행정 관계자들과 시민단체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레바논과 에콰도르에서 온 마약관련 담당자들이 있었다. 다음달에는 우리나라 보건복지부에서 견학을 온다는 담당자의 설명도 있었다. 담당자에 따르면, 미국 정부에서는 감옥을 운영하는 비용이 데이탑과 같은 치료 센터를 지원하는 비용보다 더 많이 드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약물재판과 같은 제도를 활용하고 있으며, 치료 효과를 볼 때도 단순한 처벌보다 재범률이 85퍼센트 이상 감소된다니 정부와 개인 모두에게 도움되는 일석이조라는 판단이 들었다.
약물 중독자의 사회화가 최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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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를 나와 데이탑의 대표적 치료센터인 메듀런으로 향했다. 메듀런은 실제 치료가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고객들과 함께 하루동안 동일한 일과를 체험했다. 이곳은 전형적인 '치료공동체' 모델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치료공동체'는 환자들이 모여 경험이나 자신들이 깨달은 교훈들을 서로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하루 일과 중 대부분을 회의를 하는 것으로 보내고 있는데, 사람들은 감옥행을 대신해 이곳으로 온 것인 만큼 규율이 엄격했다. 거주자들 외에도 사회사업가, 심리학자, 직업치료사, 상담가, 회복된 중독자 등 다양한 범주의 훈련된 전문가들이 팀을 이뤄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은 이들의 풍부한 사회적 토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거주자들은 과정에 따라 일반 노동자에서 상급 노동자에 이르는 단계별 명칭이 주어지며 각 단계에 맞는 일이 주어진다. 상급자는 하급자의 어려움을 도와주고 관리하는 반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이곳에 구전되는 '공짜 도시락은 없다(No Free Lunch)'라는 철학에서 엿볼 수 있듯이 센터는 단순히 치료를 위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과 업무들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고객들을 사회화시키는 공간이었다. 여러 가지 프로그램 중 가장 눈에 띤 것은 '인카운터(Encounter)' 프로그램이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불만을 일주일에 2번씩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상은 기관의 전 구성원(카운셀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등 포함)이다. 나이를 불문하고, 서로에게 서운했던 감정을 다양한 방식(심지어 욕을 사용해도 무방하다)으로 토로하는 방식인 이 프로그램은 '정직'이라는 그들의 철학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감정들을 밖으로 표출하여 해소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했다.
중독은 '범죄' 아닌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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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숙소까지 우리를 데리러 나온 분은 미국 최고의 의과대학 존스 홉킨스대의 정신과 교수 킹 박사였다. 학교에 도착하여 캠퍼스 내 건물들을 소개받은 우리는 약물 치료제인 메사돈의 관리 시설과 세계적으로도 드문 원숭이 약물 실험실, 임신한 중독자 전문 치료시설, 재활 프로그램 등을 둘러보았다. 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메사돈 유지치료, 구두요법, 단계적 치료모델 등에 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약물을 갈망하는 환자들에게 메사돈 요법을 사용함으로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의 사용을 줄이고, 범죄율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메사돈은 헤로인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지만 헤로인보다 훨씬 쉽게 해독되는 약물이다. 작용시간이 길어 중독자에게 일정량을 투입하고 정신적 치료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점차 약물의 용량을 줄여 가는 메사돈 요법은 우리나라 실정에도 상당히 유효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박사와의 인터뷰를 마쳤다.
다음으로 킹 박사가 소개해준 재활 프로그램은 기존의 프로그램과 획기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약물 음성인 환자에게 일거리를 주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을 때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한편 이를 통해 약물을 지속적으로 끊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었다. 이 연구는 우리에게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약물을 끊을 수 있는 동기 제공과 사회 적응을 위한 직업훈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비즈니스의 개념'을 도입한 재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약물 연구의 메카 NIDA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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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빡빡한 일정 속에서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보건원 산하의 NIDA(National Institute on Drug Abuse). 이 곳 역시 원장인 베리 박사의 친절함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방문한 휴스티스 박사 연구실에서는 대마계에 속하는 약물과 이에 길항제 약물로 작용하는 'SR141716'에 대해 배웠고, 또 머리카락 테스트의 원리와 마약억제제의 신체적 효과 등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이외에도 하루 종일 기관의 연구실들을 탐방하면서 다양한 연구원들로부터 각종 중독약물의 작용기전과 10대 니코틴 중독자의 그룹 상담치료 등에 관한 내용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다소 전문적인 내용이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약물중독 치료 연구를 위해 실로 막대한 자금과 인원을 들이는 미국의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에겐 언제쯤이나 이런 토양이 마련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한국식 전문연구기관 설립 시급해
탐방을 진행하며 아쉬웠던 점은 모든 것이 미국적이라는 것. 어쩌면 이것은 탐방 전부터 예견되었던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약물연구의 경우 미국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의 연구는 매우 활발했지만,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필로폰이나 MDMA와 같은 약물에 대한 연구는 미비했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맞는 전문연구기관 설립이 필요하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것이다. 덧붙여 의료인과 사회복지사 등이 힘을 합해 한국인의 정서에 적합한 중독자 거주치료공동체(TC)를 설립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할 수 있었던 탐방이었다. 마지막 탐방지를 위해 뉴욕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 팀은 '중독 없는 사회'가 되는 그 날까지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 적지 않음을 느꼈다. 한양 글로벌 프론티어, 이름 만큼이나 젊은 의학도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드는 탐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