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 77주년 백남석학상의 주인공을 만나다
평생을 발굴과 연구에 힘쓴 고고학자 배기동 교수(문화인류학과)
| 한양대 77주년 개교기념식이 지난 5월 13일 백남음악관에서 열렸다. 행사에서는 한양의 발전에 일조한 이들을 위해 다양한 시상이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고(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백남석학상’은 단연 돋보였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백남석학상은 일생을 교육 사업에 전념한 김연준 박사의 정신을 잇는다는 점에서 한양의 ‘학술적 가치’를 대표하는 상이다. 수상의 영예는 배기동 교수(문화인류학과)에게 돌아갔다. 이번 수상을 통해 배 교수는 고고학자로서의 우수한 성과를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됐다. 자카르타 출장에서 막 돌아온 배 교수를 만났다. |
백남의 정신을 아로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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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기동 교수(문화인류학과)는 지난 5월 13일 백 남음악관에서 열린 77주년 개교기념식에서 '백남석 학상'을 수상했다. | ||
백남석학상의 주인공이 된 배 교수는 어려서부터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 물건에 붙은 상표란 상표는 다 떼어서 집에 가져왔다. 더 많은 수집품에 대한 욕구가 자연스레 여행으로 이어졌고, 여행지를 다닐 때면 그 지역의 문화에 대해 사색에 빠지기 일쑤였다. “일찍부터 다양한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죠. 새로운 영역에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고고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배 교수는 당시 국내 유일의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로 진학했다. 졸업 후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전곡리 발굴현장 책임자를 비롯한 여러 현장 경험을 토대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번 수상에 대해 배 교수는 “더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겸손한 수상 소감과 달리, 배 교수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고고학계 최고 권위자다.
배 교수는 ‘학술 연구’와 ‘사회 활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단 평가를 받는다. 이번 수상에도 그런 부분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선사시대 유적지나 유물 등 형태가 있는 ‘물질 문화’를 다뤘습니다. 역사 유적 발굴과 같은 고고학적 자료에, DNA 정보를 중심으로 한 유전학 검증 방법을 도입하는 융합연구를 진행했죠.” 연구 주제에 대한 배 교수의 설명. 지금까지 써낸 논문만 해도 50여편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배 교수는 일찍이 박물관 분야에 종사하며 우리 문화의 사회적 전파에 앞장섰다. “박물관은 일종의 ‘문화봉사’ 기관이에요. 시민들에게 우리 유산과 유적을 알리는 일을 했죠.” 현재는 한양대 문화재연구소장과 국제박물관협의회 한국위원회 의장 등을 역임하고 있는 그다.
고고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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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고고학계에 새로운 지평을 연 배기동 교수 와 지난 5월 27일 국제문화대학 4층 연구실에서 만 나 고고학자로서의 인생에 대해 들었다. | ||
배 교수의 경력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연천 전곡리 유물을 발굴한 것이다. 1978년 전곡리에서는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전기 구석기의 대표적인 석기로 고(古)인류 진화 과정에 중요한 단서가 됨)가 발견됐다. 이 사실은 고고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때 배 교수는 발굴현장 책임자(field master)의 역할을 수행했다. 고고학자로서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역사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전곡리임에도, 역사시대 고분이나 건물 터처럼 화려한 유적이 없어 일반인들이 그 중요성을 알기는 다소 어려웠다. “유적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황량한 벌판을 보고 발걸음을 돌려 돌아가기 일쑤였어요.”
이에 배 교수는 구석기 유적지를 토대로 하나의 축제를 기획했다. ‘전곡리안의 귀환’이란 주제로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구석기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학습형 축제를 만든 것. 이것이 올해로 24회를 맞는 ‘연천 구석기 축제’다. 그의 노력을 통해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는 연 평균 100만 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찾는 유적지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재를 발굴하고 이를 대중화하는 데 앞장섰던 배 교수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최근에는 전곡리 유적지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고 있다. “세계적인 유산으로 만들어야죠. 과학적으로 좀 더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세계를 이해시키는 일이 남았어요.”
고고학자로서 책임 다한다
어느덧 배 교수의 고고학 인생은 종착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고고학자로서 할 일은 다했다고 봐요. 유적을 발굴해내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죠.” 그러나 당분간 배 교수의 시간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옛 당나라와 신라를 이어주는 항구였던 당성 지역(화성)과 국내에 보유 중인 외국 문화재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고고학 지식 전수에 대한 한국형 모델도 구상하고 있어 머릿속이 바쁘다. 인내와 끈기의 상징과도 같은 고고학 분야에 인생을 건 배기동 교수. 그가 택한 길에 ‘멈춤’이란 표지판은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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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곡선사박물관에 전시된 주먹도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배기동 교수의 모습. 배 교수가 발굴한 유적지와 유물이 존재하는 한 고고학에 대한 그의 열정도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출처: 조선뉴스프레스) | ||
글/ 김상연 기자 ksy1442@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