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사람들] 안산캠퍼스 차량계

희망을 싣고 아침을 달린다

2005-01-01     박우준 학생기자

지난 4일 7시, 집을 나서는데 입김을 부니 몰려드는 찬 공기로 폐 속까지 쓰라렸다. 안산의 새벽공기는 서울의 그것과 비할 바가 못 될 정도로 차가웠다. 7시 40분에 첫 출근을 하는 셔틀버스 기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은 첫 발부터 그렇게 어려웠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직 스쿨버스 다닐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정처 없이 걷는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쿨버스 기사를 출근길부터 따라다니며 취재하겠다고 나서는 길 아닌가. 다행히 셔틀버스 기사들을 이번 기획의 첫 출발로 삼자는 회의석상의 제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생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와주는 ‘아침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주제에 스쿨버스 기사 분들은 적격이었다.

 

안산의 아침을 여는 사람들 - 안산캠퍼스 차량계

 

   
 

셔틀콕(안산 셔틀버스 정류장) 옆에 있는 차랑계 사무실을 두드려 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는데 박종공 씨가 나타나 맞아준다. 그는 그 날의 시동 걸기 당번이었다. 요즘처럼 새벽기온이 낮은 날은 출발 20분 전에 시동을 먼저 걸어둬야 한단다. 7시 50분에 첫 출발을 하는 버스들의 잠을 깨워주는 역할인 셈. 50분쯤 버스들이 출발하면 8시 정각에는 한대앞 역에서 첫 차 출발을 할 수 있다. 시동을 다 건 박 씨와 함께 주차장 뒤편에 있는 사무실로 이동했다. 이 두 평 남짓의 조립식 건물 안에서 기사들은 쉬는 시간에 몸을 녹인다. 아침 등교 시간이 지나고 여유가 생기면 다들 이리로 모여 장기, 바둑을 둔다는 설명이었다.

 

몇 일전에 연락을 미리 해두었지만, 다시 한 번 더 기획의도를 설명하고 첫 차를 타고 함께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다들 “안 박사 오늘 인터뷰네”하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오늘 첫차인 한대앞역 8시차는 안명석 씨의 버스였기 때문이다. 올해로 4년차가 되는 안 씨는 이곳 기사들 중에서도 비교적 근무경력이 긴 베테랑에 속한다. 그는 버스가 출발하자 “첫 차에 학생들은 별로 없다”고 운을 땟다. 학생들은 시간이 더 지나고 첫 수업시간 즈음이 되야 북적거리기 시작한다는 설명이다. 버스가 역에 도착하자 실제로 학생들은 5~6명밖에 없고, 대신 아주머니들 20분이 버스에 올라탔다. 대부분이 학교에서 청소나 식당일 하는 분들이었다. 아침을 여는 사람의 첫 업무 또 다른 아침을 여는 사람들을 모셔다 주는 일인 셈이다.

 

안 씨는 첫 손님들을 내려주자마자 쉴 틈 없이 다시 출발했다. 아침 등교시간인 오전 11시까지는 풀타임이라고 해서 쉬는 시간 없이 모든 기사들이 역과 학교를 왕복한다. 현재 학교가 보유하고 있는 버스는 총 26대. 이 중 분당, 수원 등 인근도시를 돌며 학생들을 실어 나르는 장거리 통학버스가 9대, 서울과 안산을 왕복하는 교직원용 버스가 6대다. 나머지 11대가 역과 학교를 왕복하고 있다. 이 11대 버스가 11시까지는 쳇바퀴 돌듯 왕복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그나마 이것도 방학인 최근의 운행상황이고, 학기 중에는 또 다르다. 학기 중에는 장거리, 단거리 구분 없이 26대가 모두 역에 투입된다. 대다수 학생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등교하기 때문에 11대 가지고는 턱도 없기 때문이다. 안 기사는 “학기 중에는 역 정류장에 스쿨버스 여러 대가 일렬로 죽 늘어서기도 한다. 한양대학교 로고가 크게 박힌 버스가 일렬로 서서 학생들을 등교시키면 홍보효과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학생들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오후가 되자 한가해진 기사들이 사무실로 속속 들어왔다. 들어온 기사들에게 학생들이 야속할 때가 없느냐고 슬쩍 떠보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들어온 지 이제 한 달 됐다는 기사 한 분은 “인터넷이 무섭다 무섭다 하는데, 요즘 학생들 인터넷에 글 올리는 것 보면 충분히 알겠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기사 분들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게시판은 꾸준히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반응이 제각각인지라 모르면 곤란한 경우도 많이 생기기 때문이란다. “한 번은 학생들이 강의 시간에 늦었다고 사정해서 신호를 몇 번 무시하고 달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뒤편에 앉은 학생들의 항의가 인터넷에 올라와 그 기사에게 행정처분이 내려진 적도 있었다”고. 가끔은 정류장 아닌 곳에서 내려주기도 하는 등 학생들의 편의를 몇 번 봐주면, 또 다른 학생들의 항의에 곤란한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일절 예외는 없다”고 한다.

 

스쿨버스 기사들은 대개 다른 곳에서 버스 운전을 하다가 온 분들이 많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사들은 이 곳 일이 다른 운전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있다고 했다. 상업용 버스는 하루 종일 업무량이 같지만, 스쿨버스는 등하교 시간에만 일이 급작스레 몰리고, 그 외 시간은 기사들이 개인적으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휴가는 없다. 방학 기간 중 주말을 이용해 한 달에 4일 정도 쉬는 날이 있을 뿐 학기 중에 놀 수 있는 날은 없다. 아침에 함께 했던 안명석 씨는 “일 년에 기사들이 모두 다 모여서 놀 수 있는 날은 크리스마스와 설 날 딱 이틀이다”라고 말했다.

 

학교 스쿨버스는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 안산캠퍼스 개교와 함께 생겨난 스쿨버스는 처음에는 총 48대로 출발했다. 당시에는 지하철이 개통되지 않았을 때라 단거리 버스들은 수인산업도로 입구까지 다녔다. 그러나 지하철이 놓이고 기숙사 완공에 이어 학교 앞에 하숙집을 운영하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스쿨버스는 절반수준으로 줄었다. 학교 내에 추가로 기숙사가 생겨나면 버스는 더 줄어들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전영길 (총무관리처·총무관리계) 계장은 “아직 시내버스가 학교까지 들어올 수 없어 오히려 증편해야 할 형편”이라고 설명했다.

 

오후 6시가 되자 하루 일과를 마친 기사들은 하나 둘 퇴근을 시작했다. 소주 한잔을 외치며 삼삼오오 몰려서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퇴근 전에 기사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버스를 청소하는 일이다. 하루 동안 학생들이 버스에 버려놓은 쓰레기들은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하나를 채울 정도다. 바닥에 떨어뜨린 담뱃재는 일일이 쓸어 담아야 하는 것들 중 하나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하루는 쓰레기와 함께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의 작은 실천이 좀 더 좋은 저녁을 만들 수 있는 셈이다. 아침을 여는 사람들의 좀 더 좋은 저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