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꾼다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43

2002-07-08     서용석 학생기자

 

   
 

 

 공동육아탈북 청소년 교육에 관심

 "지식은 운동을 구동하는 힘의 원천"

 

 흔히 문화인류학이라고 하면 인류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시공을 관통하는 인류의 문화적 발자취를 더듬는 학문을 생각한다. 그래서 박물관을 떠올리게 되고 영화 〈인디아나 존스〉처럼 태고의 보물을 스릴 넘치게 혹은 억척스럽게 쫓는 장면도 곧바로 연상된다. 국제문화대 문인과 정병호 교수는 이처럼 과거의 것을 현재에 비추는 것을 문화인류학의 전부인양 생각되는 일반적인 인식을 빗겨가 동시대를 연구하는 사회문화인류학자이다.

 

   
 

 "문화인류학은 고고학이나 종교, 민속학, 지역학 등 범위가 아주 넓습니다. 저는 공간적으로 동시대에 여러 사회를 비교하는 연구를 하죠. 특히 근대성으로 대표되는 현대 산업사회가 어떻게 다양한 인류사회를 나타나게 했는지의 문화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야학운동에서 공동육아까지

 

 정 교수는 '공동육아'에 관심이 많다. 공동육아란 취학 전 아동이나 초등학생들을 지역 공동체 속에서 여러 가족이 함께 기르고 가르치는 대안적이 교육방법을 말한다. 〈심청전〉에서 심학규가 동네 부녀자들의 도움으로 심청을 키워냈던 옛날의 공동체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스스로 대학시절 영등포 지역의 야학운동에서 학문적 뿌리를 찾는 그는 1978년 설립된 야간 해송 보육 학교의 기반을 다지면서 교육이 기회의 균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닌 계급과 차별을 재생산하는 것이라는 것을 체득하게 된다.

 

 "그 당시의 야학은 사회에 봉사를 한다기보다는 계급적인 격차를 해소하는 하나의 운동이었습니다. 교육을 통한 계급 격차 해소는 정치적인 문제만은 아닌 문화적 문제이고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그 내용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을 포함하는 문화가치관의 문제라고 판단했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화인류학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억눌린 자들의 대안적 교육통로를 만들기 위한 현실 참여 속에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지적 호기심을 같이 키워온 정 교수는 미국의 '헤드스타트(headstart)' 운동을 우연히 접하게 되면서 공동육아에 대한 크다란 원칙을 세우게 된다. 경주말이 출발할 때 말머리를 나란히 놓아야 하듯 가난한 집 아이들이 초등교육을 받을 때는 부유한 집 아이들과 비슷한 출발선상에 서야한다는 평범한 이치이다.

 

 공동체속에서 아이들의 미래 일군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취학 전 어린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조기 교육과 획일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놀이방과 유치원에 가두어 버린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고를 그대로 흡수하고 이미 만들어진 질서 체계 속에 자연스럽게 편입된다. 이렇듯 IQ로 대변되는 지식이나 인지능력 발달을 중시하는 기존의 유야 교육과는 달리 공동육아는 자연 친화적인 교육방법 등을 통해 나이에 걸맞는 건전한 인격의 발달을 1차적인 목표로 한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와 함께 주위 사람들과 강한 정서적 유대를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문화적인 영향은 취학 전 어린이 단계에서 훨씬 폭넓게 익히게 됩니다. 특히나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중요한 교육이 가정의 바깥에서 더 많이 이루어지게 됐지요. 어린이집의 경우 하루에 10시간 정도 아이들이 생활하면서 가정 이상의 폭넓은 사회문화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공동육아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 교수가 지향하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기를 모은 모 방송국의 사극에서 자식의 세자 책봉을 위해 밖으로는 갖은 모략과 살상을, 자식에게는 난해한 학문과 거창한 왕도를 주입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은 단지 시청률을 의식한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이는 궁궐 담벼락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지 백성들과는 거의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성급한 조기교육으로 자식을 건강한 인격체로 키우는 것이 아닌 대리경쟁의 대상물로 전락시키고 있는 현실이 지금은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가치관에 그대로 포섭돼 성장한 어린이는 그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식에게 똑같은 이기적인 경쟁을 강요하게 된다. 그 악순환의 고리는 어른들이 나서서 끊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공동육아를 일종의 사회운동이라고 말한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그 과정에서 함께 행복해 하는 공동체의 복원은 부모들이 먼저 연대의식을 형성하고 자기 동네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동육아를 계기로 어른들도 스스로 과잉 경쟁과 이기주의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전한 재사회화의 계기도 기대할 수 있는 효과이다.

 

 새롭게 만나게 된 소수자, 탈북 청소년

 

   
 

 "남북한 교류와 접촉이 활발해지고 분단의 벽이 낮아질수록 관념적인 영역에서 묻혀진 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모색하는 것은 민족적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남북한간의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연구를 하며 또다시 더불어 살아가는 법에 대한 문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지요. 이런 작업은 통일까지 가기 전에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란 또 다른 '우리'를 배격해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닌 잃어버린 이웃관계를 회복하고 함께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눠지는 계급뿐만 아니라 성(性)과 신체, 사상 그리고 인종문제까지 아우를 수 있는 개념이다. 특히나 해마다 탈북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모색하는 것도 사회적인 과제가 되고 있다. 이런 취지로 정 교수는 '늘푸른 학교'와 통일부 내에 '하나둘학교'라는 독립적인 대안 교육과정을 만들어 부모 없이 탈북한 청소년들의 남한 사회적응을 돕고 있다.

 

 운동의 구동력은 연구에서부터

 

   
 

 "갖가지 사회활동을 하다보니 연구가 활동에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흔히 연구 개발의 중요성을 기업에서만 이야기하지요. 그러나 운동에서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싸움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무작정 주어진 대로만 생활하는 관성의 도그마로 빠질 것이 아니라 늘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살아야 하지요."

 

 '무지는 운동에 피로를 주고 지식은 운동에 긍지를 준다'라는 말이 있다. 스무 통이 넘는 전화 연결이 좌절되고 여기저기 돌려서 연락이 돼 겨우 만날 수 있었던 정 교수는 늘 현장에 있으려 하며 끊임없는 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늘 '열심히 재미있게 살자'라고 강조한다는 정 교수는 재일교포, 백정출신 부락 문제 등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서로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따로 또 함께' 살 수 있는 똘레랑스가 남한 땅에도 꽃피고 있다는 사실이 지식보다 더한 긍지를 안겨준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정병호 교수 약력 및 경력

 정병호 교수는 79년 한국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 83년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인류학 석사를, 92년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 교수는 (사)공동육아연구원 원장과 미 버클리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문화통합교육원 원장, 통일부 내 하나원 '하나둘 학교' 교장, (사)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이사를 맡고 있다. 94년부터 국제문화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4편의 연구 논문과 12편의 저서 및 역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