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대비 10배 이상 빠르고 정확한 암 유전체 분석 기술 개발
바이오 빅데이터 분야 활동 인정받아 과기부 장관 표창 받기도
"한양대 내 디지털 바이오산업 인프라 만드는 게 목표"

남진우 생명과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손장일(생명과학 박사), 최민학(생명과학 박사과정), 이도헌(생명과학 석박통합과정) 씨로 구성된 연구팀과 함께 초고속, 고정밀의 암 유전체 분석 기술인 '에칭(ETCHING 이하 에칭)'을 개발했다. 에칭은 융합 유전자 분석을 기존 대비 10배 이상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는 기술로, 신속 진단과 표적 치료가 필요한 암 환자와 희귀 질환 환자 등에 정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세계적 기술 개발에 성공한 남 교수를 만나 에칭 개발 과정과 기대 효과 등에 대해 들었다.

 

▲ 남진우 생명과학과 교수는 초고속 고정밀 암 유전체 분석 기술인 ‘에칭’을 개발했다. ⓒ 남진우 교수
▲ 남진우 생명과학과 교수는 초고속 고정밀 암 유전체 분석 기술인 ‘에칭’을 개발했다. ⓒ 남진우 교수

‘에칭(ETCHING)’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동판 위에 밀랍 등을 바르고 그 표면을 긁어 만드는 판화이기도 하고, 불필요한 부분을 부식 등으로 제거하는 반도체 공정이기도 하다. 남 교수는 작명 이유에 대해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이 기술이 ‘에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인간의 DNA는 약 30억 개의 염기서열(유전 형질을 구성하는 염기의 순서)로 이뤄져 있고, 그 염기서열에 특정한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암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암 치료를 위해서는 어떤 돌연변이가 어느 유전자에 있는지 알아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암 환자의 DNA를 해독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프로그램들이 계속 개발돼 왔지만, 데이터 분석 소요 시간이 길고 정확도는 낮았다. 암 환자의 데이터 전체를 분석하면 약 1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대용량의 데이터가 나오기에 발생한 문제였다.

에칭은 이런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됐다. 사전적 의미의 ‘에칭’처럼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 필요한 정보만을 추렸다. 100퍼센트의 데이터에서 0.5퍼센트 미만의 데이터만을 이용해 변이 정보를 찾아낸 것이다. 적은 양의 데이터만으로 변이를 찾아내기에 시간도 줄었고 분석의 정확도도 높아졌다.

 

▲ '에칭'은 100퍼센트의 데이터 중 0.5퍼센트 미만의 데이터 만으로 변이 정보를 찾는다. ⓒ 남진우 교수
▲ '에칭'은 100퍼센트의 데이터 중 0.5퍼센트 미만의 데이터 만으로 변이 정보를 찾는다. ⓒ 남진우 교수

에칭은 암 유전체 데이터에서 특이 서열만 고속 추출해 기존 소프트웨어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구조변이(암세포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복합적 유전체 변이)를 찾아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희귀 질환에 나타나는 원인 분자와 그 치료 방법까지 찾아낸다.

남 교수는 에칭의 장점으로 “실제 임상에 적용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암 진단은 물론 암 동반진단까지 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동반진단’은 암을 진단하는 동시에 어떤 표적 치료가 필요한지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껏 국내에는 이 기술이 없었기에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해외 기술을 사용해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6년 전부터 정부 차원에서 지원이 이뤄졌고, 그 결과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암 진단 기술 중 하나인 에칭이 탄생했다.

암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만큼 남 교수는 에칭의 상용화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바이오인포메틱스(컴퓨터를 통해 방대한 정보를 해석하고 생물학적 의미를 밝히는 학문) 전문 기업인 ‘지니너스’와의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니너스의 암 진단 생산라인에 에칭 기술이 들어가 있으며, 5개 주요 병원에도 에칭을 제공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 남 교수는 바이오 빅데이터 관련 국가사업 전략을 세운 공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남진우 교수
▲ 남 교수는 바이오 빅데이터 관련 국가사업 전략을 세운 공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 남진우 교수

남 교수의 유전체 구조변이 연구는 국내 토종 동물들의 유전체 지도 분석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오골계나 제주도 말 등 토종 가축들의 유전체 지도를 구축하는 사업을 맡게 됐고, 그 과정에서 구조변이 분석기술을 획득했다. 이를 토대로 인간의 암 유전체 구조변이까지 연구하게 된 것이다. 남 교수는 에칭 외에 다른 파생 기술도 활발히 개발 중이다. 3년 전부터는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아 원폭 피해자들의 유전체 돌연변이와 희귀질환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남 교수는 지난해 12월 ‘2022 바이오 미래포럼’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의뢰를 받아 바이오 빅데이터 관련 국가사업들에 대해 중장기 전략을 세웠고, 그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성과들은 남 교수가 운영 중인 연구실 ‘BIG LAB(이하 빅랩)’이 토대가 됐다. 빅랩은 ‘Bioinformatics(바이오인포메틱스)와 Genomics(유전체학)’의 약자다. 남 교수와 빅랩의 연구원들은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통해 바이오 데이터를 분석하고 새로운 유전자 정보를 찾아낸다. 80퍼센트가 컴퓨터를 통한 분석이라면 나머지 20퍼센트는 실험을 통한 검증이다. 이런 분석과 실험을 통해 유전체 변이 및 희귀 질환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빅랩의 주요 활동이다.

 

▲ 남 교수와 그의 연구실 ‘BIG LAB’의 연구원들은 바이오인포메틱스와 유전체학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 남진우 교수
▲ 남 교수와 그의 연구실 ‘BIG LAB’의 연구원들은 바이오인포메틱스와 유전체학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 남진우 교수

빅랩 외에도 남 교수는 ‘한양생명과학기술원’에서 ‘바이오 빅데이터 연구센터’를 운영 중이다. 센터 내에는 GPU(그래픽처리장치)가 장착된 데이터 분석 장비들이 구비돼 있다. GPU는 인공지능의 핵심이자 대규모 데이터 처리에 꼭 필요한 장치다. 남 교수는 이 센터에 대해 “한양대의 연구자들이 이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이 센터를 주축으로 ‘디지털 바이오 연구소’도 설립할 계획이다.

디지털 바이오산업은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지원 중인 산업이다. 남 교수 역시 관심이 많은 분야다. 클라우드 컴퓨팅(인터넷상의 서버를 통해 정보처리를 하는 기술)을 비롯해 각종 빅데이터 관련 설비를 도입, 디지털 바이오 인프라를 한양대 내에 갖추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는 “탄탄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교수들은 물론 대학원생, 학부생까지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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