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고 있는 사회 두고 볼 수 없다

지난 5월 세월호 침몰사고 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대자보가 재등장했다. 

 

작년 12월경 전국으로 확산했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이번에는 세월호를 둘러싼 정부의 대처를 향해 '가만히 있으라' 대자보로 표현하는 방식이 이어진 것이다. 

 

한양대학교에는 5월경 13학번 철학과 정선우 학생이 인문대 게시판에 <"가만히 있으라." "아니,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으로 A4 용지 2장의 대자보를 붙였다.

 

5월 22일 자 경향신문은 「"대학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대자보 저항」이라는 기사에 다른 대학가 학생들과 함께 정선우 학생의 대자보를 소개하며 "침몰하고 있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가만히 순종하라는 요구에 따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고 실었다. 

 

   
▲ 철학과 13학번 정선우 학생이 작성한 세월호 대자보

 

(아래는 철학과 정선우 학생의 대자보 전문이다.)

"가만히 있으라." "아니,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어언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슬퍼하고 아파하고 분노하고 눈물지었습니다. 제 주변의 많은 지인들도 같이 가슴 아파했습니다.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생존자 구조는커녕 사고 수습조차 제대로 못 하는 참사의 전 과정을 보면서 너무나도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이 참사가 단지 불행한 사고에 지나지 않습니까? 단지 아파하고 끝낼 일입니까? 저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참욕스러운 자본과 무능한 정부가 만나 초래한 대참사라고 생각합니다. 남이 18년동안 쓰던 배를 다시 쓰고, 법에서 정해진 안전 규제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버젓이 생존자가 선박 안에서 구해달라고 소리 치고 있는데도 죽음에 이르게끔 놔둔 이 참사가 단지 불행한 사고에 지나지 않습니까?

 

 우리는 요 몇 년 간 수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수많은 시민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 삼성의 무노조 전략에 맞서 노조 설립을 추진하는 노동자들,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 철도 및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노동자 및 시민들, 장애인 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장애인들, 한-미 FTA 반대 농민들, 학과 통폐합 반대 대학생들, 반값 등록금 공양 이행을 촉구하는 대학생들, 이들 모두가 외치는 것은 너무나도 소박한 외침이었습니다. 돈보다, 이윤보다, 효율성보다 사람이, 생명이, 존엄이 먼저인 사회. 그것을 위해 가혹한 탄압과 폭압과 억압을 견디며 가냘픈 목소리로 외쳐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한국 사회는 침몰하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자본과 무능한 정부가 만나 생명보다는 돈이 추구되는 한국 사회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너무나도 억울하고 어이없는 죽음이었습니다. 그들의 처참한 죽음이 단지 슬퍼하고 끝낼 일입니까?

 

 혹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데 넌덜머리가 난다고 말입니다. 대통령이 사고 낸 것도 아닌데 왜 정부 욕을 하냐고 말합니다. 전 반문하겠습니다. 이번 참사가 단지 세월호에만 국한된 문제입니까? 세월호를 버리고 떠난 선장과 일부 선원만의 문제입니까? 이 참사가 일어난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러한 참사가 일어난 뒤 과정은 어떠했습니까? 정치가 공공의 올바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과정이라고 할 때, 이번 참사야 말로 정치적 고민의 대상이 아닙니까?

 

 이번 차사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합니다. 끝까지 밝혀내야 합니다. 진상을 조사하는데 성역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일이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도 언론을 통제하려 하고, 색깔론을 들이대던 집권 세력의 만행이 떠오릅니다. 너무나도 슬프고 분하고 억울해 KBS로 청와대로 가려는 유족들을 방패로 막던 경찰들이 떠오릅니다. 대통령이 무릎 꿇는 것이 아니라 유족들이 제발 우리 자식들을 살려 달라고 무릎 꿇어야 했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조용히 순종하라고 합니다. 자신들의 말만 들으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내 일이 아니라고, 내 가족의 일이 아니라고, 내 친구의 일이 아니라고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공감합시다. 그리고 그 공감의 눈물을 조금 덜어 행동합시다. 그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인, 생명이 먼저인, 시민의 안전이 먼저인 사회를 향해 나아갑시다. 돈으로 사람의 생명이 재단되지 않는 사회를 향해 나아갑시다. 그 시작은 행동하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희생된 수많은 안타까운 생명들과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유족들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입니다. 침몰하고 있는 우리 사회, 이대로 두고만 보실 것입니까?

 

 

철학 13 정선우

 

경향신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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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5222156065&code=9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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