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총장 한인석 동문(화학.77)

"모두 다른 우리가 만나서 하나의 큰 흐름을"

 

'최초'라는 기록은 신선하다. 최초라는 단어 속에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개척해낸 도전의 상징이 담겨있고, 선례가 없는 길을 혼자 더듬어 걸어갔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3년 반 만에 석사와 박사 학위를 모두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 미국 50개 주의 최고봉을 등정한 최초의 아시아인, 미국 유타 대학교(University of Utah)의 첫 분교인 아시아캠퍼스의 첫 총장까지. 수많은 미지의 길을 앞장서서 걸어나간 한인석 동문(화학.77)을 만나봤다.

 

고유한 개성들이 모여서 만드는 세상의 흐름

 

   


"파란색 아닌데요." 한인석 동문(화학.77)은 어릴 적 '하늘이 파랗다'는 선생님의 말에 그렇게 답했다. "하늘이 구름 낀 날은 하얗고, 석양이 질 땐 빨갛고, 밤엔 까만데 어떻게 하늘이 파래요." 선생님은 수업을 방해하지 말라며 한 동문을 혼냈다.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엉뚱한 사고를 많이 했던 한 동문은 남들과 다른 시각, 그리고 남들이 어렵다고 하는 일에 눈을 반짝였다. "엉뚱하단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남들이 못한다고 말하는 일은 꼭 하고 싶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새로운 것이나 어려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이 넘쳤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 올라온 후에도 그의 도전 정신은 그대로 이어졌다. 공부 빼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는 한 동문은 2000원을 들고 시작한 무전여행의 경험이 인생의 가치관을 세우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다녀왔어요. 중간중간 남의 밭에 가서 일을 하고 산에서 오미자도 따면서 밥도 얻어 먹고 잠도 잤어요. 통행 금지가 있던 시대라 숲에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무덤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나와는 다른 수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그런 경험과 생각을 통해, 다른 것이 있을 뿐 의미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세상의 큰 흐름을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끈기가 만들어낸 최초의 기록들

 

   

공부 빼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다는 한 동문은 대학 졸업 후 '제대로' 공부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미국으로 건너간 한 동문은 그곳에서 독특한 '최초'의 기록을 세운다. 그가 진학한 워싱턴 주립 대학교의 생화학박사 학위를 3년 반 만에 취득한 것이 그 중 하나. "석사와 박사를 위한 학업을 통합한 과정을 밟았습니다. 두 개의 학위를 따기 위해 학교에 필수적으로 다녀야 하는 기간이 3년 반이지만 보통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선 6년 반이 걸려요." 현지의 학생들도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는 일을 어떻게 3년 반 만에 해낸 것일까. "대학원에서 매주 실험 결과를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현지 학생들은 한 주의 보고를 건너 뛰고 실험 진행을 하지 않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3년 동안 실험 진행을 빼먹지 않고 끝까지 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친구들이 매주 일을 해내는 게 신기하다면서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불렀어요."

 

그렇지만 한 동문 역시 졸업논문을 위해 기획한 실험을 하던 중 벽에 부딪혔다. 세포간 소통을 위해 필요한 물질이 무엇인가에 관한 실험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 교수와 주변 친구들이 다른 실험을 하라는 조언을 했지만 한 동문은 포기하지 않았다. "앞 길을 막고 있는 벽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벽을 건너기 위해 벽을 부숴버리는 방법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어요.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벽 아래로 굴을 뚫어서 길을 가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한 동문은 다양한 물질을 세포에 직접 주입해 실험하는 일반적인 방식 대신 이미 친숙한 물질과의 대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 "다들 우리가 모르는 물질이 세포간 소통을 위한 물질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알려진 항체나 호르몬이 아닐까 싶어서 실험해보게 됐습니다." 한 동문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실험이었다. "다른 생각이 갑자기 탄생하는 건 아니에요. 끈기 있게 생각을 해봐야만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논문을 위한 실험을 준비할 때의 끈기는 산악인으로서의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 동문은 미국 50개 주의 최고봉을 모두 등정한 최초의 아시아인이기도 하다. 보통 사람은 한 개도 등정하기 힘든 7대륙의 최고봉 중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Kilimanjaro, 해발 5892미터), 북미의 맥킨리(McKinley, 해발 6194미터) 남미의 아콩카과(Aconcagua, 해발 6,962미터), 유럽의 엘브루스(Elbrus, 해발 5642미터)를 등정하기도 했다. "산을 등정하는 것 역시 철저한 준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고산 지대에 올랐을 때 적응을 어떻게 할지, 그리고 평소에 체력관리를 어떤 식으로 할지 준비 해야 하죠."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 되라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생활하는 중에도 그는 늘 대학 시절 때부터 중요한 삶의 가치관으로 삼았던 '다른 것이 있을 뿐, 가치 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2001년 벤처 기업가에서 유타 대학교의 교수로 변신한 한 동문은 그의 가치관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자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학생들이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게 만드는 교육을 펼치고 싶었습니다. 유타 대학교를 우리나라에 유치한다면 이 생각을 국내에 더 많이 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한 동문은 2008년 유타 대학교 아시아캠퍼스 진출을 계획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했다. 유타 대학교가 세계화 추세에 따라 분교를 세울 계획을 세우면서, 한 동문은 동북아의 중심지인 송도로의 분교 유치를 위해 힘썼다. 베이징, 도쿄, 상하이 등의 대도시들과 근접해 있다는 매력을 대학에 알린 한 동문은 2008년부터 6년 동안 송도에 유타 대학교의 아시아 캠퍼스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뤄진 것만은 아니었다. 문제를 일으킨 것은 학교 내부의 사정이 아니라 유타 대학교가 위치한 미국 유타 주(州)의 법이었다. "유타 대학교가 유타 주의 주립대학교인만큼 유타 주 밖의 다른 곳에서 대학의 이름으로 은행 계좌를 열 수 없도록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송도에 유타 대학교의 이름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죠. 오랜 설득 끝에 유타 주가 법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6년간 유타 대학교 아시아 담당 디렉터에서 사업 총괄담당관으로, 준비위 공동위원장으로 활동한 한 동문은 2013년 아시아 캠퍼스의 총장 자리에 오르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작년 9월, 유타 대학교의 아시아캠퍼스는 인천 송도에서 개교식을 열었다. 유타 대학교의 첫 분교가 우리나라에 자리잡게 된 것.

 

한 동문은 유타 대학교가 '멜팅 팟(Melting pot)'이 아닌 '샐러드 보울(Salad bowl)'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큰 꿈을 가진 학생들이 서로 어우러지길 바란다는 것. '다른 이들이 모여 큰 흐름을 만든다'는 그의 평소 철학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두 같아질 필요는 없죠. 자신의 색을 유지하면서, 각자의 가치를 인정하는 삶을 살길 바랍니다."

 

   

 

  

최정아 기자 shaoran00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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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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