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아(연극영화학·03)

“요즘 배우로서 느끼는 제 상태는 딱 봄이에요.” 배우 이청아(연극영화ㆍ03)가 오랜만에 대중 앞에 기지개를 켰다. 작년 여름 크랭크인에 들어간 <연평해전>은 다가오는 6월, 개봉을 앞두고 있고 최근에는 온라인 뷰티 프로그램 <뷰티쇼> MC를 맡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아하기 위해 노력한 그녀의 시간들이 올봄 하나 둘 피어나고 있다.

에디터 이명연 | 사진 김지훈 | 스타일리스트 장빛나

 

 

   
 

Q. 한양대학교 동문 매거진 <사랑한대>와의 만남은 처음이시죠?

 

반가워요. 처음에는 대학 잡지라고 해서 학생들이 만드는 잡지인 줄 알았어요. 동문이 읽는 잡지인 걸 알고 더욱 관심이 갔어요.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제게는 대학 시절이 인생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 시기거든요.

 

Q. 어떻게 연극영화학과를 지망하게 되었어요?

 

원래는 글을 쓰거나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요. 한 방향으로 미래를 정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좀 지켜보고 싶었어요. 내가 글을 쓰고 싶은지, 연기가 하고 싶은지, 미술이 하고 싶은지 직접 배우고 익히며 결정하고 싶었죠. 연극, 영화는 종합예술이잖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볼 수 있는 부분에 매력을 느꼈어요.

 

Q.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고2 때, 입시요강을 보니 성적 반영 기준이 저에게 유리하더라구요(웃음) 내신보다 수능성적이 잘 나오는 편이었거든요. 연극영화학과 커리큘럼도 굉장히 매력적이었고요. 1학년 때에는 연기, 연출, 극작, 촬영 등 분야에 상관없이 학습한 후 2학년 때 전공을 정할 수 있었어요. 사실 연극배우인 아버지는 제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저는 대학 진학이 배우가 되겠다는 의지라기보다 미래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득했죠.

 

Q. 배우 이청아 하면 영화 <늑대의 유혹>(2004)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대학 때 촬영한 작품인데, 그 당시에는 연기에 뜻이 확고하진 않았을 때였다고요?

 

맞아요. 당시 저는 대학 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게 즐거웠고 그것으로 인해 저를 끝없이 확장시켜 나가고 싶은 의지가 강했어요. 연기도 그런 에너지 중 하나였고요. <늑대의 유혹> 조연 오디션을 보러 갔을 때에도 강의가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달려갔어요. 왕십리역에서 허겁지겁 지하철을 갈아타고, 삼성역에서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갔던 게 지금도 기억나요. 그렇게 도착한 오디션 현장에서 제게 주어진 대본을 읽었는데 심사위원 뒤쪽으로 구석에 앉아 있던 어떤 아저씨가 “주연 오디션에서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분이 바로 김태균 감독님이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왜 저를 주연 오디션에서 보고 싶어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Q. 본인이 가진 특유의 어두운 이미지 때문 아닐까요?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이청아’ 하면 어둡고 우울한 무드가 느껴지는 배우예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이상한 놈>(2008)에서 ‘송이’ 같은 역할을 했음에도요.

 

대학 1학년 때 첫 독백 수업시간이었어요. 최형인 교수님이 제 독백을 보시더니 “넌 비극은 됐고, 앞으로 희극만 해와!” 라고 하셨어요. 사실 저는 비극적인 정서를 좋아하고 비극 연기가 더 편했거든요. 에너지가 밖으로 뻗어나가는 활달한 성격이 아니라서요. 에너지가 속에서 돌고 도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활달한 캐릭터를 연기하려면 감이 안 잡혔죠. 수업 들을 때, 교수님이 희극 연기 시킬까 봐 만날 강의실 뒤에 숨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인지 <늑대의 유혹>부터 계속 로맨틱 코미디만 들어오는 거예요. 너무 어렵고 괴로웠어요.

 

Q. 언제부터 활달한 역할이 편해졌나요?

 

황정민 선배님과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2009)를 찍으면서 연기가 재미있어졌어요. 선배님과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나 평생 연기할 거야’라는 생각도 해봤어요. 데뷔 후 꽤 긴 과정을 거쳐서 얻은 깨달음이라 그런지 현장에서도 학교에서도 훨씬 즐겁더라고요.

 

   
 

Q.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밝고 유쾌하네요.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를 찍으며 민지란 캐릭터를 만난 경험이 컸어요. 사실 민지는 실제로 제가 정말 싫어하는 캐릭터거든요. 대책 없이 일 벌이기 좋아하고, 수습은 안 되고, 수다스럽고, 눈치도 없고. 그런데 민지를 연기하면서 그런 성향의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아 민지는 단지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그런데 그 감정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오해를 사는구나.’ 민지를 연기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제가 싫어하는 사람의 한 부류가 사라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배우를 계속하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질 것 같아요.

 

Q. 동료 배우, 패션 디자이너 등 최근 의외의 친분으로 화제가 됐어요.

 

예전보다 사회성이 많이 좋아졌어요. 남자친구 덕분이 커요. 이기우씨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참 많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거든요. 저도 그런 점을 닮고 싶었나봐요. 곧 개봉을 앞둔 <연평해전> 작품이 기대되는데요. 2002년도에 제2연평해전이 일어났고, 그때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분들이 계세요. 당시 월드컵 4강 진출에 가려져 그 분들의 죽음이 많이 알려지지 못한 부분이 있어요. 제가 맡은 역할은 동료들이 탄 참수리 357호의 침몰을 바라볼수 밖에 없었던 358호의 정장, 여군 대위 역활이에요.

 

Q. 최근 실제로 본인에게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을 꼽는다면?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부모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 자식들이 정신을 차리게 되죠. 이제는 ‘엄마’라는 단어가 예전에 제가 알던 그것과 완전히 다른 단어가 됐어요. ‘엄마’라고 말할 때 예전에 느끼던 감정의 강도가 1에서 2였다면 이제는 9에서 10까지 세졌어요. 이성적으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배우로서 표현해야 할 감정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도 있겠죠. 삶의 고통이 배우에게는 밑거름이 되는 것 같아요.

 

Q. 다시 대학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순간으로 가고 싶나요?

 

입학식이요. 창피하다고 부모님을 못 오게 했는데 지금은 꼭 와달라고 할 거예요. 사진도 더 많이 남기고요. 희극도 최 교수님이 시켜주셨을 때 더 열심히 할 것 같아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과목을 하나 꼽는다면?

 

<그저 바라보다가> 촬영을 마치고 복학했을 때 ‘생활법률’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어요. 박창석 교수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어요. “법이라는 건 살아가면서 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도 어떤 법을 개입하느냐에 따라 유죄가 될 수도 있고 무죄가 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때부터 신문을 읽기 시작했죠. 제 내면이 아닌 저를 둘러싼 바깥세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Q. 대학교 캠퍼스에서 가장 좋아한 공간은 어디였나요?

인문대 옥상이요. 햇볕쬐고 친구들과 낮잠도 자고 그랬어요. 

 

봄은 하루에 사계절이 켜켜이 쌓인 계절이다. 아침에는 쌀쌀하고 낮에는 뜨겁고 이른 오후에는 선선하다 밤이 되면 다시 겨울이다. 이청아는 그런 봄과 닮았다. 행복, 슬픔, 사랑, 이별 저마다 다른 온도를 가진 단어들이 눈빛과 몸짓에 배어 있었다. 벅차오를 법한 이야기에도 그녀는 미묘하리만 큼 담담했다. 정호승 시인은 ‘꽃을 보려면 눈이 녹기를 기다리라’고 했다. 오늘 만난 배우 이청아는 눈이 녹기를 기다리고 있는 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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