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뗏목' 타고 시하호를 건너다, 유 솔(공학대 건축4) 씨

철새들의 낙원이 된 시화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우리대학 ERICA캠퍼스 옆에 위치한 안산호수공원의 물줄기는 시화호에서 흘러나온다.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 시화호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흉악범의 시체 유기 장소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주변 공장의 하수 및 생활하수가 유입되어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숭어 떼가 튀어 오르고, 철새들이 모이는 곳, 시화호. 유 솔(공학대 건축4) 씨가 ‘페트병 뗏목’을 탄 것은 그저 깨끗한 시화호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시화호를 횡단하다

 

시화호는 지난 1994년, 6년 반에 걸친 공사 끝에 시화방조제를 완공하면서 조성된 인공호수다. 처음 개발 목적은 담수호(淡水湖)로 만들어 인근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인구증가, 하수처리장 등의 환경기초시설 설치 지연으로 수질오염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시화호 오염으로 인해 물고기 폐사와 농작물 피해 등이 발생하자, 정부는 지속적으로 수질 개선을 위한 정책을 수립 및 실현해 현재 시화의 수질은 외해(外海)와 비슷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그러나 시화호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유 씨는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페트병 뗏목’을 타기로 결심했다. 처음 아이디어를 낸 것은 함께 뗏목에 오른 유 씨의 절친한 친구 안치광 씨였다. “친구가 시화호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요. 집 주변 산책로를 걷거나 운동할 때 시화호를 보면 물고기가 튀어 오르고, 철새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도 오염된 호수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까웠던 거죠. 그래서 우리가 직접 시화호에 들어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시화호가 살아났다는 것을 널리 알리자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시화호는 조력발전소와 연결돼 있으며 주위에 공장 단지가 들어서 있어, 안전상의 문제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바다로 연결돼 있어 방조제로 갈수록 수심이 점점 더 깊어져 위험하다. 유 씨 일행은 이러한 시화호를 횡단하기 위해 안산 시청 페이스북에 ‘시화호를 횡단하고 싶다’는 글을 올려 문의했다. 안산 시청은 학생들의 좋은 취지에 흔쾌히 허락함은 물론 유 씨 일행의 횡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페트병 뗏목’, 치유호

 

이들은 안산호수공원 옆에 위치한 한 아파트 단지에서 시작해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까지 20km가 넘는 거리를 페트병으로 만든 뗏목을 타고 이동했다. 뗏목의 이름은 ‘치유호’, 시민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본인들의 이름(‘안치광’과 ‘유 솔’)의 이름을 따기도 했지만, 시화호의 상황에도 적합한 이름이었다. 시의 협조로 페트병을 모은 이들은 ‘시화호 지킴이’로 일컬어지는 환경운동가 최종인 씨의 도움을 받아 ‘치유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페트병의 부력을 계산해 수수깡으로 배 모형을 만들었어요. 최종인 선생님의 조언을 받고 좀 더 균형 있는 배로 발전할 수 있었죠.”

 

시화호 근처 선착장에서 하루에 2~3시간 가량, 약 한 달 간 배를 만들었다. 노를 젓는 방식도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시켜갔다. 두 사람이 양쪽에서 노를 젓기에는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고, 20km의 거리를 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 사람이 양 쪽 노를 다 젓되 교대로 젓는 방식을 택했다. 배가 완성된 후에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물 때에 맞춰 밤에 연습을 하다 사정을 알지 못하는 시민들에게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물 때가 맞지 않으면 아무리 노를 저어도 앞으로 나가지 않았어요. ‘이거 너무 무모한 일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하지만 때가 될 때까지 뗏목을 타고 표류하며 기다리고 또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저희의 취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왜 하느냐’ 반문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믿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지난 2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경까지 무려 8시간에 걸친 긴 항해에 성공했다. 식사는 준비해 간 김밥으로 때웠고, 긴장이 돼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고. 평소 철인 3종경기를 즐기는 유 씨의 친구와, 수영안전요원 경력을 가진 유 씨였지만 20km의 여정이 고된 것은 마찬가지였다. 노를 젓는 손이 물에 불어 물집이 잡히고 허리가 결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시화호 횡단 성공은 물론 특이한 경험까지 덤으로 얻게 됐다. “시화호를 횡단 할 땐 튀어 오르는 숭어들을 보았고, 바다로 나갔을 땐 돌고래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어요. 서해에도 돌고래가 산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죠.(웃음)”

 

   

 

세상 경험이 많은 건축가

 

고작 ‘페트병 뗏목’ 하나에 몸을 싣고 시화호를 횡단한 유 씨는 물에 빠지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수상안전요원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난 여름에는 모 워터파크에서 안전 요원으로 일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건축학도인 유 씨가 수상안전요원 자격증을 취득한 이유는 ‘경험’을 쌓고 싶어서다. “학과 수업 중에 제가 생각하는 컨셉대로 건물을 설계하는 과목이 있었어요. 그 때 교수님께서 ‘네가 만든 건물 형식은 재미가 없다, 살면서 재미있었던 일이 무엇이 있었느냐’고 물었어요. 딱히 재미있었던 일이 없더라고요. 그 후로 제가 갇혀있는 틀을 깨기 위해서는 조금 더 색다른 경험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유 씨가 건축학도로써 경험을 중시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다양한 건축주의 다양한 요구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그 바탕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또 수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고 친숙하게 방문할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유 씨 일행이 만든 ‘치유호’는 갈대습지공원에 보관되어 있으며, 추후 시에서는 이를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활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환경오염과 자연 생태계에 대한 관심, 건축학도로서의 지식, 수상안전요원으로서의 경험 등이 모여 ‘시화호 횡단’이라는 걸출한 경험이 탄생했다. 이러한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만들고 훗날, 유 씨가 설계한 건축물 곳곳에 담길 것이다.

 

   

 

 


박종관 기자 pjkk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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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유미 기자 lovelym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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