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섹스>의 저자이자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관현악과 08) 동문

 
우리대학 내 반성폭력, 반성차별 모임 ‘월담’의 이름에는 두 가지 유래가 있다. 하나는 담을 넘는다. 모임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학교 너머로 퍼져 갔으면 한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달(月)에 비유하기도 하는 여성의 이야기라는 뜻. 은하선 동문(관현악과 08)은 월담의 창립멤버다. 스스로를 페미니스트이자 섹스칼럼니스트로 소개하며 책 <이기적 섹스>의 저자다. 여러 매체를 통해 계속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은 동문이 지난 3월 29일 월담에서 주최한 개강맞이 페미니즘 강연회에서 우리대학과 외부의 퀴어 그리고 페미니즘 역사에 대해 강연했다.
 
 
은하선, 글을 쓰다

은하선은 그의 필명이다. “처음 섹스 칼럼을 쓰기 시작했을 때 10대 시절 섹스경험담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에 부담감이 있었어요. 보통 10대 여성의 섹스는 잘 말하지 않잖아요. 조금 더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도 있어요.” 그렇게 필명으로 쓰게 된 그의 첫 번째 책은 <이기적 섹스>다. <이기적 섹스>는 지난 2015년 출판됐다. 이 책은 은 동문이 10대 때 경험했던 섹스와 여성의 섹스 관한 이야기, 성관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의 인터뷰 등을 담았다. <이기적 섹스>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지만, 정작 은 동문은 책이 이렇게 이슈가 될 줄 몰랐다고. “편집자님이 제안해서 쓰게 됐어요. 애초에 책을 쓸 계획이 없었죠. 괜히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많았어요. 근데 잘 됐죠.”
 ▲지난 3월 29일 교내 소모임 월담에서 주최한 페미니즘 강연을 하고 있는 은하선 동문(관현악과 08)(출처: 월담)

은 동문은 책을 쓰기 전부터 ‘이프’라는 여성주의 웹진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10대 섹슈얼리티가 묻혀지는 게 싫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10대의 섹스이야기에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평소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 만큼 책은 빨리 써졌다. 글을 완성해 가면서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스스로도 해방감을 느꼈다고. “혼자 쓴 책이기도 하고, 다른 책들 보다 당연히 더 애착이 가요.”
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편하지 않았으면 한다. “제 책은 불편하라고 쓴 거에요. 물론 제 글을 읽는 사람들이 글에 공감을 하며 연결성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틀에서 벗어나 약간의 두려움과 낯설음을 동반한 불편함을 느꼈으면 해요. 그리고 스스로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보며 틀을 깰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음악을 접다, 그리고 은하선토이즈

은 동문은 우리대학 재학 당시 한대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학교 신문 편집부장을 했다. 항상 글을 놓지 않았고 현재도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전공은 오보에다. 초등학교부터 오보에를 배워온 그에게 음악 역시 떼어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초등학생 때 연주회를 간 적이 있는데 한 소리만 계속 귓가에 맴돌았어요. 사람 목소리로 치면 울림이 많은 콧소리 같았는데 그게 너무 매력적으로 들렸죠. 알고 보니 오보에 연주 소리더라고요. 그 때부터 부모님께 하고 싶다고 졸랐습니다.”

은 동문은 대학 졸업 뒤 독일로 떠났다.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오보에를 그만 두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독일에 가고 학교 입학 전으로 해서 ‘이기적 섹스’를 냈어요. 학교 시험에 붙어서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었는데, 책이 너무 잘 된 거에요. 서울에서 인터뷰, 강의 요청이 계속 들어왔죠. 당시 애인도 한국에 있었고 마음이 편치않았는데 그 기회로 한국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게 2016년 5월이었어요.” 그는 오보에를 전공한 학생이었기에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편에는 아쉬운 마음이 여전하다. 하지만 역시 자신이 돌아올 때가 돼서 돌아온 거라 말한다. “독일에서 공부했어도 아쉬웠을 것 같아요. 돌아온 한국에서 2년 동안은 제가 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요. 이제는 오보에 연주를 하지 않아요. 그래도 여전히 그 소리를 사랑해요.”
▲기자의 질문을 듣고 있는 은하선 동문. 오보에를 전공한 은 동문은 석사학위를 따기 위해 독일 유학 길에 올랐지만 <이기적 섹스>출판 후 한국으로 돌아온다.

석사과정을 그만두고 강의와 인터뷰 외에 그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있다. 섹스 토이 사업, ‘은하선토이즈’다. “기억은 안 나는데 고등학생 때 과외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그때부터 여성들을 위한 섹스샵을 내고 싶어 했다고.” 유학을 갔던 독일에는 여성들을 위한 섹스샵이 많다. 하지만 독일도 편견은 존재한다. ‘왜 굳이 여성들을 위한 섹스샵이 필요한 것인가?’와 같은 선입견에 은 동문은 확고한 견해가 있다.

“여성 전용 섹스샵은 그들이 편하게 와서 구경하고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어요. 남성 파트너의 눈치를 보지 않고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공간으로 존재하는 거죠.”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독일에서 여성 섹스샵을 운영하는 이와의 인터뷰를 했다. 그 역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이었고 그게 계기가 돼 ‘은하선토이즈’를 차릴 수 있었다. 은 동문이 토이 파티를 직접 열어 섹스 토이, 자위 방법에 대해 설명하며 참석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말 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든 것도 이와 같은 신념에서 비롯됐다.
 
은하선(銀河船)의 행로

은 동문은 SNS, 방송 등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젠더, 섹스, 페미니즘과 같은 여러 이슈를 다루며 사람들 앞에 다가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강한 목소리엔 강한 반발도 존재한다. 최근 은 동문이 EBS ‘까칠남녀’에서 일방적으로 하차를 통보 받은 이유도 그 때문으로 추정하는 이가 많다. 마지막 방송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LGBT(여러 성정체성을 일컫는 말)관련 주제로 한 프로그램은 반동성애를 외치는 집단의 질타를 받았다. 이 후 cp의 단독 결정으로 하차를 했고 소식을 들은 출연자 3명이 보이콧을 하며 방송자체가 중단됐다. “방송이 끝까지 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 그래도 방송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고 앞으로도 그런 기회가 더 생기길 바라요.”
 ▲은하선 동문은 SNS, 방송 등 매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젠더, 섹스, 페미니즘과 같은 여러 이슈를 다루며 사람들 앞에 다가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더불어 그는 한국 사회가 LGBT IQA를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신과 다른 것을 받아드리는 방법은 굳이 나누지 않는 겁니다. 성별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 경계선을 오가는 것을 힘들어 하죠” 은 동문은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하고 교육받기를 원한다. 예방접종처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은 동문은 미투 운동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본인의 이야기를 SNS에 적었다. 그가 생각하는 미투 운동은 뭘까. “물론 누군가는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미투는 가해자에게 처벌을 주기 위해서만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해요.” ‘나도 겪었다’, 라고 말하면서 성폭력이 만연해 있는 현실을 세상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 동참하는 거죠.” 미투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피해자들에게 따라 붙는 꼬리표는 ‘무고’이다. “무고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해서 피해자 모두를 무고자로 몰 수 없습니다. 그건 피해자들의 입을 막는 거에요.” 무고의 가능성 하나로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묻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의 바램이다.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게 페미니즘의 뜻이다. 그럼에도 그 뜻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은 동문은 그런 페미니스트들에게 용기를 줬다. “본인이 외롭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그 사실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돼요. 힘들다면 쉬어갈 수 있어요. 자책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싸우고 변화하는 걸 즐겼으면 좋겠어요.”

은 동문은 요즘 자신의 두 번째 책 준비와 강의 활동, 은하선토이즈 등으로 일정이 차 있지만 인생의 목표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일이 모두 계획을 갖고 했던 게 아니에요. 경향신문에 ‘은하선의 섹스올로지’를 연재할 수 있었던 것도 요청이 왔었기 때문이고, <이기적 섹스>를 낼 수 있었던 것도 편집자님의 제안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음악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독일 유학의 길로 들어섰지만 멈췄고, 지금은 작가로서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앞으로 은 동문의 행보는 그 자신마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동안 그의 소신 있는 활동을 돌이켜 본다면 충분히 기대가 된다. 은하를 비행하는 것처럼(銀河船) 다채롭고 계속 나아갈 내일이.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강초현 기자        guschrkd@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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