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 억울함을 달랜다

정부는 지난 05년 12월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전후에 일어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출범한 조직이다. 이후 진실화해위원회는 한국전쟁관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유해발굴조사지 200군데를 선정해 발굴을 계획하고 있다. 그 중 금년에 계획된 조사 중 하나가 전남 구례에서 60년 전 일어난 여순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발굴이다. 역사적인 발굴을 위해 본교 발굴단이 구례로 내려갔다.

안신원(국문대·문화인류) 교수를 중심으로 대학원생 5명과 학부생 4명으로 구성된 발굴단은 지난 6월 16일 구례에서의 현장설명회를 시작으로 18일 부터 한 달에 걸쳐 발굴을 진행했다. 이번 발굴은 최초의 정부주도 민간인 유해 발굴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동안 부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아무 죄 없이 학살된 이들의 진상규명에 대한 민간인들의 노력은 계속 돼왔지만, 국가차원에서 발 벗고 나선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관심이 집중됐다.

여순사건 발굴단은 장마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 구례 봉성산에 머무르며 발굴에 집중했다. 이런 고생 끝에 발굴단은 11개~13개의 유해개체와 실탄 20개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뒀다. 발굴 물로 확인된 칼빈 소총 탄두 19개와 M1 탄두 1개는 대부분의 유해개체 내에서 발견돼 여순사건이 집단 총살임을 확인하는 증거가 됐다. 또한 유해가 2열로 매장 되 있음을 밝혀내 여순사건이 집단학살 사건임을 고려했을 때 비교적 정연하게 매장 됐음을 확인냈다. 발견된 발굴 물은 6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상당히 부식되어 치아, 뼛조각, 실탄, 단추 등만이 남아있었다.

발굴단 책임자인 안 교수는 “그동안 민간인에 의한 유해발굴은 보편적이었지만, 이번 발굴은 전문가인 고고학자가 직접 나서 발굴에 참여했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전문가가 발굴함으로써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진상규명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발굴과정에 대해 “처음 추정했던 발굴지가 실제 유해매장지와 달라 난관을 겪었다. 포기하고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유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 추가 조사를 하게 됐다”고 전하며 “추가 조사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 유족들의 애타는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발굴에 참여한 김예린(국문대·문화인류 3) 양은 이번 발굴 소감으로 “발굴조사 전에는 여순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발굴에 참가하면서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뒷얘기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며, “이번 발굴을 통해 여순사건이 이슈화돼 사람들이 왜곡된 정보가 아닌 진실을 알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여순사건이란 여수 순천 반란사건의 줄임말이다. 이는 전라남도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소속 일부가 일으킨 무장봉기 사건을 뜻한다. 이 경비대에 속해있던 다수의 좌익세력이 후에 반란군으로 변해 반란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좌익 색출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속출했다. 그러던 중 1948년 11월 19일 새벽 좌익으로 의심받아 구례경찰서에 수감되어 있던 민간인 72명이 구례경찰서 앞 공터에서 집단 총살당한 후 구례 봉성산 서쪽에 집단 매장됐다. 이번 발굴은 이들의 유해 발굴을 통해 직접적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국가차원의 실태파악과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계획됐다.

안현주 학생기자 pigbabu@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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