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로 문학 분야에서 노르웨이 왕실 공로 수훈
11년간 노르웨이어를 새롭게 공부하며 펴낸 입센 희곡 번역집
“연극과 예술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

김미혜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요한 입센(Ibsen)'(이하 입센)의 희곡 전집을 한국어로 번역한 공을 인정받아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받았다. 문학 분야에서 한국인이 노르웨이 왕실 공로를 수훈한 것을 김 교수가 처음이다. 그는 희곡 번역을 위해 60대에 노르웨이어를 새롭게 공부하며 11년 동안 번역에 매진했다. 연극의 대가로도 알려진 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김미혜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3일 입센의 희곡 전집을 번역한 공로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받았다. ⓒ 김미혜 교수
▲ 김미혜 연극영화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3일 입센의 희곡 전집을 번역한 공로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받았다. ⓒ 김미혜 교수

 

연극을 좋아해 연극학 박사 학위까지

김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좋아했다. 놀러 갈 때면 극장을 빠지지 않고 갈 정도로 연극을 좋아해 배우를 꿈꿨으나, 집안의 반대로 그러지 못했다. 김 교수는 "연극을 좋아했지만, 공부도 잘하고 좋아하는 학생이었다"며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공부를 더 하고자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고 답했다.

유학 생활에도 연극에 대한 관심은 놓지 않았던 김 교수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University of Vienna)에 연극학을 배우러 떠났다. 그는 "어렸을 때 연극을 좋아해 연극을 이론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시 연극학 커리큘럼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빈 대학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후 독일어를 새롭게 배우며  7년 반 만에 연극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98년부터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김 교수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시에 해외의 연극학 도서들을 번역했다. 당시 김 교수가 번역한 연극 교재는 지금까지도 연극영화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다.

 

15년 동안 이어온 '입센' 연구

희곡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극작가 입센은 현대 연극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한국에서는 비교적 낮은 인지도를 지녔다. 김 교수는 "2006년에 열린 입센 서거 100주년 기념 국제 콘퍼런스에 한국 대표로 참여했지만, 입센의 연구 및 공연 현황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며 "노르웨이의 입센 연구센터도 방문했지만, 한국어 자료가 전무해 부끄러웠다"고 답했다. 이에 자극받은 김 교수는 2007년부터 입센 연구를 시작했다.

 

▲ 김 교수는 11년간 입센의 희곡 전집을 번역했다. 입센의 희곡 23편을 번역해 총 10권 분량으로 펴냈다. ⓒ 교보문고
▲ 김 교수는 11년간 입센의 희곡 전집을 번역했다. 입센의 희곡 23편을 번역해 총 10권 분량으로 펴냈다. ⓒ 교보문고

독일어에 능통했던 김 교수는 영어와 독일어 자료를 읽으며 공부했다. 그는 "2010년에 입센 평전을 출간하며 영어와 독일어로 된 희곡을 읽었지만, 두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며 "노르웨이어로 된 원본을 직접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노르웨이어를 몰랐던 김 교수는 원본을 읽는 동시에 노르웨이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0년부터 2022년까지 약 11년간 번역 활동을 이어갔지만, 가끔 회의감도 느꼈다. 김 교수는 "번역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 힘든 순간이 많았다"며 "그럴 때마다 주변인들의 격려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1년의 노력이 빛을 발하다

김 교수는 지난해 5월 희곡 전집을 출간하고, 지난 3일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을 받았다. 수상소감에 대해 김 교수는 "처음 수상 연락을 받자마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며 "노르웨이어라는 특수한 언어로 된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했기에 더욱 의미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김 교수가 지난 3일 수훈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 그는 연구 및 번역 활동을 통해 국내 입센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 김미혜 교수
▲ 김 교수가 지난 3일 수훈한 노르웨이 왕실 공로 훈장. 그는 연구 및 번역 활동을 통해 국내 입센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 김미혜 교수

입센의 희곡을 번역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희곡 <브란>을 꼽았다. 김 교수는 "삶의 원칙을 중요시하는 주인공 '브란'은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간상이다"며 "작품이 길고 운문으로 돼 있어 번역이 어려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다"고 답했다.

 

"연극은 총체적인 예술 활동"

희곡과 연극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다. 희곡만으로는 연극이 탄생할 수 없고, 연극 없이는 희곡 작품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김 교수는 "희곡이야말로 무대를 생각하며 읽는다는 점에서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장르다"며 "한국의 무대 메커니즘과 배우들의 호흡, 능력을 생각하며 한국 정서에 맞게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작품으로 요한 볼프강 폰 괴테(Goethe)의 희곡 <파우스트>를 꼽았다. 김 교수는 "1999년 예술의 전당에서 <파우스트> 공연 대본을 만들었는데 작품의 깊이를 느꼈다"며 "한국 대중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수작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교수는 연극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연극은 예술 전체에 대한 안목이 중요하다"며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김 교수는 "어렸을 때 가졌던 작가의 꿈을 아직 놓지 않았다"며 "희곡, 소설, 시 등이 다양하게 들어간 김미혜 작품집을 편찬하는 것이 꿈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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