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인의 작고교수 유품전

 

   

 

‘우리가 태어나던 해, 심지어 그 전에도 우리학과는 계속되고 있었다.’ 이 당연한 명제는 들을 때 보다 직접 눈으로 확인 할 때 위대함이 더욱 느껴진다. 그 위대한 역사의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바로 건축학과의 ‘11인의 작고교수 유품전’이다. 74년의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과거 그 시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을 인터넷한양이 함께했다.

 

작고교수의 노고를 기리고 지난 날을 돌아보다

 

   

8월 15일부터 우리대학 서울캠퍼스 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는 건축학과 11인의 작고교수 유품전이 열리고 있다. 우리대학 서울캠퍼스 건축학과와 건축공학과에 재직한 작고교수 11명의 유품을 중심으로 건축과 자체의 자료를 수집해 공개하고 있다. 故 김광문 교수, 故 김선호 교수, 故 김진일 교수, 故 박학재 교수, 故 선병택 교수, 故 오창희 교수, 故 이해성 교수, 故 전경배 교수, 故 정경 교수, 故 함성권 교수, 故 홍붕희 교수(가나다 순)가 그 주인공이다.

 

전시회 총 기획을 맡은 한동수 교수(공학대·건축)는 “70여 년의 건축학과 역사에서 우리나라 건축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오신 교수님들이 굉장히 많다”며 “이 가운데 선정된 열한 분은 우리대학 전임교원으로 부임하여 재직 기간이 10년 이상 되신 분들”이라고 선정 기준을 밝혔다. 또한 한 교수는 “더 많은 교강사분들을 포함시키고 싶었으나 장소의 협소함, 자료 수집의 어려움 등으로 제한을 두었다”고 덧붙였다.

 

건축학과는 ‘동아공과학원’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대학의 시작을 함께 한 만큼 풍부한 전통과 역사를 자랑한다. 이번 전시회는 건축학과의 역사를 회고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동문이 기증한 1939년의 교재, 동아공과학원 당시 건축학과의 건물과 관련된 모형, 사진과 같은 자료 등은 전시회의 성격을 잘 대변해준다. 전시회 현장에서 만난 신승훈 군(공학대·건축 2)은 “이번 전시회는 말로만 들었던 입학하기 전의 학교 모습과 수업자료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는 뜻 깊은 기회”라며 70년의 세월이 담긴 설계도구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 가는 과정, 그리고 조력자

 

준비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작고교수들의 별세시기가 오래되어 구할 수 있는 유품이 굉장히 제한적이었기 때문. 유족들과 일대일로 접촉해 협조를 구했다. 유족들의 원만한 협조덕분에 전시회는 무사히 개최될 수 있었다. 전시회 기획을 담당한 한동수 교수는 “특히 故 정경 교수의 경우 오래된 작고시기뿐 아니라 수집과정에 큰 역할을 해주실 사모님의 연세가 많아 기억하는 자료의 양이 굉장히 적었다”며 “다행히 아드님의 도움으로 해묵은 사진첩과 코트를 찾았을 뿐만 아니라 전시동의를 구할 수 있도록 사모님을 설득하는데 큰 역할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건축학과를 넘어 우리대학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이번 행사는 우리대학 서울캠퍼스 건축학부, 건축공학부, ERICA캠퍼스 건축학부가 주최하고 건축학부 동아시아건축역사연구실의 주관으로 개최됐다. 우리대학 박물관, 건축총동문회, (주)성의건설, 이가종합건축사사무소까지 역사를 재현시키기 위한 교내 외의 도움이 있었다.

 

건축교육역사의 증인들과 마주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건축사 연구자인 故 박학재 교수는 1947년 9월부터 1981년 11월까지 30여 년 간 우리대학 건축학과에 몸담으며 건축역사와 건축설계 교육을 수행했다. 국전초대작가이기도 했던 그는 필생의 역작인 ‘서양건축사정론’을 남겼다. 수채화 작품, CTN에서 촬영한 특집 비디오, 저서, 설계도면과 작품으로 만든 달력 등이 유품으로 남아 그의 열정적인 삶을 증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철근콘크리트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이며 대한건축학회의 회장을 역임한 건축학계의 엘리트 故 함성권 교수는 1952년 11월부터 1983년 2월까지 우리대학의 건축공학과 교편을 잡았다. 공학적 명성과 더불어 그림에도 남다른 취미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유품으로 남은 사진, 취미로 그린 스케치, 애용하던 목도리, 우리나라 철근 콘크리트에 관한 저서 등이 그의 열정적인 삶을 대변해주고 있다.

 

현대건축사 교육과 건축설계 분야에서 활동한 故 이해성 교수도 1949년 우리대학 건축과에 입학하며 한양의 인연을 만들었다. 1957년부터 1993년까지 교수로 재임하던 이 교수는 1993년부터 총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대표작으로는 남산도서관, 우리대학 박물관, 우리대학 병원 등이 있다. 총장 퇴임 이후에는 현대건축사의 저술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전시된 자격증, 집필원고와 저서, 필기장 등을 통해 이 교수의 생전 삶을 확인할 수 있다.

 

유품을 구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故 정경 교수. 정 교수는 1969년 3월부터 1974년 8월까지 우리대학에 재직했다. 일본에서도 인정받는 대표적인 건축구조 연구자였으나 일찍 타계했다. 동경 올림픽 시설 가운데 하나인 요요키 경기장의 구조설계를 담당한 동경대 츠보이 요시카츠 교수 연구실의 일원이었으며, 우리나라 초기 고층빌딩을 대표하는 삼일로빌딩의 구조계산을 수행했다. 전시된 유품은 코트, 앨범, 자신이 타이핑한 이력서와 역서 등이다.

 

우리나라 건축법규 분야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故 전경배 교수는 1967년 3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우리대학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전 교수는 농촌건축 연구의 권위자로 한국농촌건축학회가 탄생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농촌 취락구조 개선을 위한 학술연구를 수행한 경험이 있다. 전시된 유품은 위촉장, 학위논문, 보고서, 사진 등이다.

 

故 김광문 교수는 1968년 8월부터 1999년 2월까지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인 최초로 일본 동경대학에서 건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그 후 주로 병원건축의 설계와 연구에 이생을 헌신하며 병원건축학회(현 의료시설학회)를 창립했다. 전시된 유품은 저서, 역서를 비롯하여 박사학위증서, 병원건축관련 원고와 논문, 자신이 쓰던 설계도구, 젊은 시절의 사진 등이다.

 

위의 이야기를 비롯해 11인의 작고교수 유품전에서는 한양을 사랑한 교수들의 이야기와 삶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존경하는 교수님, 당신과 한국 건축을 기억합니다

 

   

열한 명의 작고교수 중 여섯 명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정진국 교수(공학대·건축)는 기획하고 준비한 이번 전시회가 더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 비록 사진과 유품이지만, 오랜만에 찾아 뵌 스승과 싶은 이야기를 인터넷한양에게 털어놨다. 아래는 정 교수와의 질의응답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관람객 기억에 어떻게 남고 싶은지.

 

1939년에 개교한 우리대학 건축학과는 전국 건축학과 중에 최초로 개교한 학과입니다. 우리나라만의 순수자본으로 건축학도를 양성하자는 이념으로 설립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흐름에 따라 새로운 유행을 따라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존중하고 기억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학생들이 과거를 살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작고교수 여섯 분에게 배웠다고 들었다. 어떤 분들이셨는지 궁금하다.

 

박학재 교수님은 굉장히 낭만적인 분이셨습니다. 평소엔 굉장히 엄하고 딱딱하셨는데, 시험을 보고 나면 시험지에 본인의 감상을 써주던 분이셨습니다. 시를 써주시거나 그림을 그려주시곤 하셨습니다. 그 중 가장 좋은 단계는 ‘쾌조’였어요. ‘작성이 잘됨, 좋은 구성’을 뜻하는 쾌조가 시험지에 쓰여있는 것을 보면 웃음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반면 굉장히 무섭고 단호한 면도 있으셨습니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곤 하셨죠. 동기 중에 설계를 못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이 돌대가리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으셨어요.

 

유쾌하고 즐거운 함성광 교수님도 기억에 남습니다. 구조를 전공하셨는데, 구조는 건물을 튼튼하게 만들 수 있도록 콘크리트와 철근을 수식으로 계산해 두께를 계산하는 일을 뜻합니다. 이 분야에서 저명하셨는데 수업시간마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계산자(구조 계산시 필요한 도구)를 흔들며 “내가 이 조그만 도구로 얼마를 벌었어”라고 장난치시곤 했습니다. 또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건물이 지어지면 지표면이 가려지는 것을 보고 땅의 점유를 줄여 더 환경을 생각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비록 인력과 여력이 부족해 후배들의 몫으로 남겨두셨지만, 이는 함 교수의 성품을 확실하게 보여줬던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작고교수의 가르침이 정 교수에게 미친 영향이 있다면.

 

당시 건축학과 학생들은 ‘공간’이라는 건축학과 동아리에 가입하거나 교수님을 돕는 학부 연구생 활동을 하곤 했습니다. 좋은 기회에 이해성 교수님의 연구생활동을 하게 됐는데 당시 교수님께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교수님께서 현대 건축사를 가르치셔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어요. 교수님은 유럽 유학을 권해주셨죠. 그 땐 유럽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았어요. 하지만 교수님의 영향으로 결정한 길인 만큼 조언대로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결과는 대만족이었죠. 그곳에서 근대 건축의 아버지인 ‘르 코르뷔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습니다. 기호학을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대학 현대 건축사에 대해 강의를 하는데 교수님 영향으로 선택한 분야를 똑같은 장소에 강의를 하고 있어 더욱 의미 있죠.

 

이번 전시회를 기점으로 우리대학 건축학과의 발전 방향은?

 

학생, 교수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최고를 꿈꾸고 있습니다. 해외시장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이런 흐름에 맞춰 국제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대학은 해외대학과 함께하는 워크숍이나 컨퍼런스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단기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교류도 활발하고요. 해외 교류 제도를 통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더욱 경쟁력 있는, ‘한양’만의 가치를 가진 학과로 발돋움 할 수 있을 겁니다.

 

 


홍윤지 학생기자 yj09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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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중 사진기자 kimhjh@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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