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립합창단, ‘ALL That 조혜영’ 타이틀로 연주회 열어
미국 애틀란타 합창 작곡 심포지엄 작품상 등 다수 수상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부를 수 있는 한국어 합창곡을 쓸 것”

평촌아트홀에서 지난 5월 19일에 열린 안양시립합창단의 정기연주회 테마는 ‘All That 조혜영’이었다. 합창 작곡가 조혜영(작곡과 88) 씨의 음악 세계를 조명하고 업적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의 곡들로만 연주회가 채워졌다. 조 씨가 만든 총 15곡의 합창곡이 평촌아트홀에 울려 퍼졌고 합창 작곡가로서의 그의 독보적인 입지가 증명된 순간이었다. 

 

▲ 조혜영(작곡과 88) 씨는 ‘못잊어’, ‘바람은 남풍’ 등 한국의 서정시에 곡을 붙여 많은 합창곡을 만들었다. ⓒ 조혜영 동문
▲ 조혜영(작곡과 88) 씨는 ‘못잊어’, ‘바람은 남풍’ 등 한국의 서정시에 곡을 붙여 많은 합창곡을 만들었다. ⓒ 조혜영 동문

조 씨는 한양대 작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2009년 국립합창단의 위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합창 작곡의 길로 들어섰다. 2012년에는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합창 작곡 심포지엄에 참가해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14년 세계합창심포지엄(WSCM) 개막연주회에서는 그의 곡 'Te Deum'이 대규모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연주됐다. 이후 안산시립합창단과 국립합창단을 거쳐 현재 인천시립합창단의 상임 작곡가로 재직 중이다.

조 씨가 작곡한 ‘못잊어’, ‘바람은 남풍’, ‘금잔디’, ‘가시리’, ‘무언으로 오는 봄’ 등 한국의 서정시로 만든 합창곡들은 여러 합창단에서 꾸준히 연주되고 있다. 또한 그는 ‘그리운 금강산’, ‘목련화’, ‘가고파’ 등의 가곡, ‘옹헤야’, ‘노들강변’, ‘강강술래’와 같은 전통민요 등 여러 장르에 현대적인 옷을 입혀 합창 레퍼토리를 확장해 가고 있다. 최고의 합창 작곡가로 자리매김한 조 씨를 만나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해 들었다.


안양시립합창단은 ‘All that 조혜영’이라는 제목의 정기연주회를 열어 '합창 작곡가 조혜영'에 대한 존경과 경의를 표했습니다. 소감은요. 

안양시립합창단의 이충한 상임지휘자로부터 조혜영의 합창곡으로만 연주회를 열고 싶다는 연락을 받고 조금 놀랐습니다. 작곡가 개인의 작품발표회도 아닌 시립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한 작곡가의 곡으로만 채워지는 일은 흔하지 않으니까요. 저에게도 의미가 있지만 다른 합창 작곡가들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제안을 수락했습니다. 이번 연주회를 통해 그동안의 작품생활을 뒤돌아보게 됐고, 앞으로 어떤 작품을 써야할 지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 안양시립합창단은 ‘All That 조혜영’이라는 제목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조 씨의 합창곡 세계를 조명했다. ⓒ 조혜영 동문
▲ 안양시립합창단은 ‘All That 조혜영’이라는 제목의 정기연주회를 통해 조 씨의 합창곡 세계를 조명했다. ⓒ 조혜영 동문

지난 인천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 창작곡 ‘애가(哀歌, Lamentation)’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어떤 곡인가요. 

‘애가’는 ‘아기를 서해바다에 수장시킨 엄마의 노래’ 라는 부제가 달린 곡으로, 故박영근 작곡과 명예교수의 ‘6인의 연주자를 위한 애가’의 가사를 바탕으로 작곡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많은 사람이 배를 타고 서해안을 따라 월남했어요. 소리 없이 노를 저어 남하할 때 아기의 울음소리는 해안경비대의 표적이 됐고, 배에 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아기를 밤바다에 수장시켰다는 슬픈 이야기가 곡에 담겨 있습니다. 박 교수님은 그 월남한 아기 중 하나가 본인이었다고 말씀하셨죠. 박 교수님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까지도 가르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셨고, 제자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신 훌륭한 분이셨기에, 저는 <애가>를 故박영근 교수님께 헌정했습니다. 저에게는 의미가 깊은 곡이죠.

어떤 계기로 합창 작곡을 시작하게 됐나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유학 갈 형편이 되지 않아 작곡 공부를 오래하지 못했어요. 대신 한양대 음악대학에서 시창청음 교재를 만들다가 강의를 맡게 됐고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강의를 하게 됐죠. 그런데 강의가 아닌 음악이 하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합창곡을 쓰자는 결심을 한 후 무작정 성가 합창곡을 썼습니다. 그 곡이 알려지며 2009년 국립합창단에서 곡을 위촉 받았고 합창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합창 작곡의 매력과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저는 가장 아름다운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악기처럼 안정적이지 않아서 부르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으면 결과가 좋지 않아요. 인성(voice)을 다루는 일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창 작곡은 아주 매력적입니다.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것도 의미 있지만 현대음악은 소수의 관객만 들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고, 여러 번 다시 연주되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많은 관객 앞에서 여러번 연주되는 곡을 쓴다는 것이 합창 작곡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김소월과 정호승, 박재삼 등 한국 시인들의 시를 주제로 많은 곡을 썼습니다. 합창 작곡의 원칙이나 철학은 무엇인가요.

‘시’는 합창 작곡가에게 매우 중요한 원천입니다. 대중가요는 곡을 먼저 만들고 가사를 입히지만 클래식에서는 가사, 즉 시를 먼저 고르고 그 시를 음악화 하는 작업을 하죠. 유명한 합창 작곡가들은 자신만의 시 라이브러리(수집품)를 갖고 있을 정도로, 쓰고 싶은 음악에 맞는 시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내용도 좋아야 되고, 기승전결의 구조도 만들 수 있어야 되죠. 그래서 시 자체에 음악적 리듬이 있는 김소월 시인의 시가 오래 전부터 많이 선택된 것입니다. 김소월 시인의 시는 민요조의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전통적인 음악에도 잘 어울리지요.

 

▲ 조 씨는 독일 가곡이나 이태리 아리아처럼 전세계인이 부를 수 있는 한국어로 된 합창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조혜영 동문
▲ 조 씨는 독일 가곡이나 이태리 아리아처럼 전세계인이 부를 수 있는 한국어로 된 합창곡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 조혜영 동문

특별히 애착 가는 곡은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못잊어'가 가장 애착이 갑니다. 합창 작곡 초기에는, 욕심이 많아서 곡을 어렵게 썼습니다. 그러다 한 합창단의 리허설에서 제 곡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봤는데 많이 힘들어하더군요. 제 곡을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관객에게 감동을 주려면 연주하는 사람을 먼저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었죠. 그 각성을 한 후 처음 쓴 곡이 '못잊어'입니다. 작곡에 대한 가장 큰 철학은 ‘감동을 주는 음악을 쓰자. 감동을 주는 음악을 쓰려면 연주자를 먼저 감동시켜야 한다’입니다.

한양대 수업이 합창 작곡가가 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어릴 때부터 합창을 좋아해서 합창단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합창동아리 'GLEE'에 들어갔어요. 그 곳에서 귀한 합창 악보들을 접했고 반주와 지휘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4학년 때는 한 번도 놓친 적 없는 과수석을 놓칠 정도로 합창동아리 활동에 집중했죠. 합창계의 거장이신 나영수 성악과 명예교수로부터 배웠던 2년 간의 합창수업도 큰 도움이 됐어요. 민요를 부르는 방법, 가사를 잘 전달하는 방법 등 합창의 기본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죠. 나 교수님이 지휘했던 대학연합합창단의 예술의 전당 음악회는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합창에 몰입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한국의 전통적인 색이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연주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어법의 합창곡을 쓰는 것이 목표입니다. 무엇보다 전 세계인이 우리의 언어로 부르는 곡을 작곡하고 싶어요. 몇 년 전만 해도 라틴어나 non-verbal(가사가 없는)의 합창곡을 써야 해외에서 연주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한국어로 연주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이 옵니다. 우리의 언어로 불려질 때 우리의 음악이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해요. 독일 가곡, 프랑스 가곡, 이태리 아리아 모두 그 언어로 부를 때 아름다운 것처럼, 우리의 합창음악이 한국어로 더 많이 아름답게 불리어질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음악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합창 작곡을 하고 싶다면 좋은 합창단원이 돼 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선택했다면 ‘계속,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도 늦게 시작했지만 계속 하다 보니 ‘All that 조혜영’이라는 벅찬 이름의 음악회도 열게 됐습니다. 계속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가길 응원하겠습니다. 

키워드

'한양위키' 키워드 보기 #합창 #조혜영 #작곡과 #박영근 #나영수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