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나노공학과 박희준 교수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가 동시에 이뤄지는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은 기존 컴퓨터의 연산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PIM(processing-in-memory) 인공지능 반도체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에서 시냅스 소자의 신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박희준 교수를 통해 반도체 기술의 진화와 비전에 대해 알아본다.

글. 박영임 / 사진. 이현구

■차세대 반도체 ‘뉴로모픽’

지난해 오픈AI가 챗GPT를 공개한 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화제의 중심이 됐다. 그렇지 않아도 범지구적 키워드가 된 AI에 대한 관심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 것이다. AI 기술이 우리 실생활에 적용되려면 반드시 반도체의 발전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대량의 이미지, 음성 같은 비정형 데이터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AI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동안 반도체 기술은 트랜지스터와 같은 반도체 소자의 미세화를 통해 메모리와 프로세서의 성능을 높여왔다. 하지만 메모리와 프로세서가 구분돼 있어 저장된 데이터를 불러와 연산한 뒤 다시 저장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현재의 폰 노이만 구조로는 대량의 데이터 처리 시 병목현상이 발생해 컴퓨터 성능이 저하되고 에너지 소모가 커진다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의 경우, 한 판의 대국에 CPU 1200여 개, GPU 170여 개, 그리고 메모리 100만 개가 가동돼야 합니다. 복잡한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많은 전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것이죠.”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근 박희준 교수는 성균관대, 가천대의 공동연구팀과 함께 AI 반도체의 일종인 뉴로모픽(Neuromorphic) 컴퓨팅 시스템의 시냅스 소자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은 뉴런(신경세포)과 이를 연결하는 시냅스로 구성된 인간의 신경망을 모사해 병렬적으로 연산을 수행하는 새로운 개념의 컴퓨팅 기술을 가리킨다.

“인간의 뇌는 1천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의 시냅스로 이뤄져 있어 20W의 전력만으로도 복잡한 연산을 손쉽게 할 수 있습니다. 이에 영감을 받은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은 메모리와 프로세서 간 데이터 전송 없이 인공신경망 내에서 데이터 저장과 연산을 동시에 수행해 대량의 비정형 데이터의 처리 시간 및 전력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유기나노공학과 박희준 교수는 "인간의 뇌 신경망을 모사한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은 기존 연산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PIM 인공지능 반도체로서 기술 주도권 확보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 유기나노공학과 박희준 교수는 "인간의 뇌 신경망을 모사한 ‘뉴로모픽 컴퓨팅 시스템’은 기존 연산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세대 PIM 인공지능 반도체로서 기술 주도권 확보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시냅스 소자의 신뢰도 및 내구성 증대

렇다면 컴퓨터는 뉴런과 뉴런이 그물처럼 연결된 인간의 뇌를 어떻게 모방할 수 있을까. 뉴로모픽 컴퓨팅을 구현할 수 있는 기본 구조 중의 하나로서 멀티레벨 저항 메모리로 구성된 크로스바 어레이(crossbar array)가 가장 널리 활용되고 있는데, 메모리가 격자로 얽혀 있어 서로 교차하는 지점이 인간의 시냅스 기능을 수행한다. 폰 노이만 구조의 메모리는 0과 1만의 디지털 신호로 통용되지만, 차세대 메모리로 연구되는 저항 메모리는 아날로그 신호, 즉 0부터 1 사이의 모든 신호를 활용한다. 시냅스 강도의 미세한 차이에 반응하는 인간의 뇌처럼 말이다.

“특정 신호가 입력됐을 때 강도를 정밀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뢰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뉴로모픽 컴퓨팅에서 가장 핵심적인 연구 주제이죠. 시냅스 소자의 역할을 하는 멀티 레벨 저항 메모리는 위아래 전극에서 미디엄에 불균일한 금속 필라멘트를 형성하는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필라멘트가 형성됐다, 안 됐다 하면서 저항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문제는 필라멘트가 불규칙적으로 생성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박희준 교수는 미디엄에 나노미터 수준의 균일한 3차원 이온 전달 통로를 구현했다. 미디엄에는 비정형 원자들이 무질서하게 배열돼 있어 결정구조 사이로 규칙적인 이동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온 공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기판의 손상을 야기할 수 있다. 고온공정은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므로 박희준 교수는 순간적으로 매우 높은 에너지를 가하는 레이저 공정에 착안했다.

“이를 통해 금속 필라멘트의 형성과 파열 거동이 최적화돼 시냅스 소자의 성능과 신뢰도, 내구성을 극대화했습니다. 또한 레이저 공정은 상온에서도 적용할 수 있어 현재 반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CMOS 공정과 호환이 가능할 뿐 아니라, 플렉서블 기판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플렉서블 일렉트로닉스의 기반 기술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박희준 교수는 위 연구뿐 아니라 감각뉴런을 모방해 센서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면서 바로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인-센서 컴퓨팅 시스템에 대한 연구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뇌의 신호체계를 모방하는 뉴로모픽 기술을 시각이나 촉각, 청각 등 다른 감각의 구현에도 응용한 것이다. 예를 들면 망막의 역할을 하는 광신호 기반 시냅스를 구현해 복잡한 색상 이미지를 90% 이상의 높은 정확도로 인식하는 인공시각 시스템을 제안했다. 이 연구 결과는 조만간 세계 최고의 국제학술지에 수록될 예정이다. 또한 인체의 움직임을 감지해 어떤 동작인지 구분하고 인식할 수 있는 인-센서 컴퓨팅 시스템도 개발했는데, 이는 메타버스 기술에 적용할 수 있다.

▲ 박희준 교수는 ‘전자 소재 및 소자 연구실’을 이끌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은 연구실 장비 모습.
▲ 박희준 교수는 ‘전자 소재 및 소자 연구실’을 이끌며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사진은 연구실 장비 모습.

■AI 반도체 기술의 세계 패권 확보해야

차세대 AI 반도체로 주목받는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에 대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IBM은 2014년 26억 5600만 개의 시냅스를 가진 뉴로모픽 칩인 ‘트루노스(TrueNorth)’를 개발했고, 퀄컴은 2013년 뇌와 같이 학습하는 연산처리장치 ‘제로스(Zeroth)’를 공개했다. 인텔도 2017년, 2021년 뉴로모픽 칩 ‘로이히(Loihi)’와 ‘로이히2’를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정부 주관으로 민간과 함께 2030년까지 국내에 세계 최대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K-반도체 벨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K-반도체의 핵심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또는 인공지능형 반도체인데, 2020년부터 10년간 1조 5천억 원을 투입하는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과 PIM 인공지능반도체 핵심기술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 박희준 교수 연구실은 PIM 인공지능반도체 핵심기술개발 사업에 주관 연구기관 중 하나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미지센서 분야에서 진행 중인 삼성전자와의 기술 협업을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로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정부 및 산업계와의 지속적인 협업을 통해 뉴로모픽 컴퓨팅 기술에서도 국내 기업이 세계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약 500조 원에 달하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약 60%를 시스템 반도체가 점하고 있습니다. 약 60% 이상을 차지해 세계 1등을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 분야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점유율은 3% 수준이라 많은 노력이 요구됩니다. 국내 기업들도 인공지능에 특화된 반도체를 개발한다고 하지만, 아직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정도는 아닙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과 산학협력을 추진하고 대한민국이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성장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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