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의 뇌를 통한 신경계의 작동 원리 탐구
공학, AI 등 다양한 연구 분야 적용 기대
사람의 뇌는 지구상 모든 컴퓨터보다 큰 용량을 갖고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김안모 전기·생체공학부 교수는 이러한 뇌의 신비를 밝히기 위해 초파리의 행동과 비행 제어시스템을 통해 인간 신경계의 반응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김 교수가 처음부터 뇌공학 연구자의 길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로봇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그는 전기공학과 개발자의 꿈을 그리며 유학을 떠났다. 그러던 중 그의 지도교수와 의대 뇌과학과 간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뇌공학을 처음 접하게 됐다.
김 교수는 지도교수로부터 “뇌를 통해 공학의 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실험실을 방문한 그는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에 대해 흥미를 느꼈고, 그 길로 신경과학 연구원으로서 뇌 관련 연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김 교수는 “전기공학과 동기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진출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고민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원 졸업후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좋아하는 일을 후회 없이 하자는 마음으로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교수로 부임한다.
초파리는 유전학자였던 토마스 헌트 모건(Morgan)에 의해 지난 1900년대 초부터 과학 연구에 활발히 이용되기 시작했다. 뇌과학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간 뇌와 유사한 형태를 띠고, DNA가 가장 상세히 알려진 동물이 초파리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초파리의 유전자를 조작해 뇌가 어떤 행동이나 생각의 변화를 유발하는지, 유전자와 행동, 뇌 기능과의 연관 관계를 밝힐 수 있다”며 초파리 연구의 중요성을 말했다. 초파리의 뇌가 인간보다 100만 배 작아서 연구 속도와 난이도가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김 교수는 지난 10월에 발표한 논문 ‘Suppression of motion vision during course-changing, but not course-stabilizing, navigational turns’에서 뇌가 불필요한 영상 움직임을 차단하는 원리를 규명했다. 사람의 눈동자는 초당 2~3번씩 움직인다. 눈동자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눈에는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우리 뇌는 이러한 흐릿한 영상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눈에서 뇌로 신호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뇌가 흐릿한 영상을 자동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이다 .
김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비행하는 초파리의 뇌에서도 흔들림 영상을 자동으로 차단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초파리가 비행 중 장애물이나 냄새 등에 의해 스스로 회전하는 경우 흔들림 신호를 차단하지만, 바람에 흔들려서 회전하는 경우 차단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이는 초파리가 바람에 밀릴 때마다 비행경로를 원래 방향으로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신호를 차단하지 않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로봇의 움직임, 드론과 같은 자율비행체의 성능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김 교수는 “로봇의 외부 시각 자극 처리 과정 개선, 드론 비행 시 주행성능 개선 알고리즘 구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연구성과에 관해 설명했다.
이외에도 김 교수는 많은 연구를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는 초파리의 예민한 후각을 이용한 후각 센서, 탄소나노튜브와 결합한 새로운 종류의 생체 전자 코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초파리가 특정 냄새에 반응하도록 하는 과정”이라며 “초파리의 후각 탐지 능력을 이용해 실제 현장에서 위험 물질 등을 탐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궁극적으로 인공지능의 다감각 처리 시스템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간은 여러 가지 감각을 이용해 사물을 인식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인공지능 수준에서는 여러 감각을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초파리를 통해 뇌의 시각 정보에 대한 비밀을 밝힌 것처럼, 다른 감각들과 관련한 연구 또한 계속할 예정”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끝으로 김 교수는 “많은 연구과제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묵묵히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해줘 고맙다”며 신경정보시스템연구실 구성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