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59

 "과학철학은 기술의 부작용을 해결할 종합적인 학문"

 과학과 철학의 유쾌한 만남 꿈꾸는


철학과 이상욱 교수

 

 가까운 미래. 빈센트는 제거되지 않은 열성인자를 보유하고 있고 결코 엘리트가 될 수 없는 아이로 분류된다. 신생아로부터 채취한 혈액으로 아이의 미래가 출생 보고서로 제출되고 곧바로 열성과 우성인자로 나누어져 계급이 갈리게 된 것이다. 유전학적으로 우성 인자를 보유한 사람은 사회의 주요 부문을 장악하는 반면 열성 인자를 보유한 사람은 하층민의 삶을 살아간다. 우주비행사가 꿈인 빈센트는 우성 인자를 갖추기 위해 DNA 중계인을 통해 우성 인자를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와 똑같은 키를 갖추기 위해 다리를 늘이는 등 고통스런 수술을 거쳐 마침내 우성 인자를 가진 자만이 가능한 우주항공회사 가타카의 비행기 조종사가 된다.

 

   
 

 지난 1997년 유전자 복제에 대한 논의를 한창 증폭시킨 영화 가타카(Gattaca)의 주요 내용이다. 비록 SF 스릴러물에 불과한 내용이지만,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을 비롯한 과학 발전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돼야 하고 또 그 규제는 어디까지 행해져야하는가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시발점을 제공해 주었다. 환경 오염과 핵무기에 의한 후유증으로 과학기술의 효용성과 그 윤리성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닥칠 문제인 유전자 복제나 조작 문제 등 인류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과학기술의 발전만큼이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상욱(인문대·철학과) 교수는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철학하기'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주장하는 과학철학자다.

 

 과학과 철학의 유쾌한 만남

 

 "과학철학은 한 마디로 과학에 대한 철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철학은 궁극적으로 철학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지요. 어떻게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앞뒤가 맞게 말하며 글을 써야하는가, 가능한 반론은 무엇인가 등 철학적인 부분을 과학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탐구하는 것입니다. 과학이 이론과 적용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보여지는 세계상을 형상화시키고 과학으로 인해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사회학이나 역사학 등의 여러 가지 분석틀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풀어보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과학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과학철학은 이처럼 과학 자체에 대한 탐구뿐 아니라 그것이 야기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다양한 쟁점과 담론의 대안을 모색해 주는 매개의 역할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비대하게 커져버린 상황에서 그것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논하기 앞서 두 가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바로 과학과 기술의 관계를 먼저 고찰하고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버린다는 단순한 논리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과학기술이 무조건 좋거나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는 핵잠수함에 쓰이는 원자로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외관이 아닌 구성 성분을 꼼꼼하게 분석해서 장려와 통제에 대해 세밀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무조건적인 허용과 규제는 피해야 합니다. 그러한 판단의 틀을 제공해 주는 것이 과학철학적 고찰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지닌 과학철학자들은 과학기술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을 이어주는 소중한 가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일례로 유전자로 대표되는 바이오테크놀러지의 문제는 사회문화적 함의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다양한 견해를 모아서 풀어야 한다. 이때 상대방의 관심분야가 다르고 지식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과학자들에게는 윤리와 종교적 문제를 잘 풀어서 이야기해 주고, 인문사회학자들에게는 전문적인 내용들을 이해시켜주는 것이 과학철학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과학은 자연세계를 잘 이해하기 위한 것이고 기술은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류에게 유용한 것을 제공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문제는 과학인지 기술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도체를 예로 들어보면 전자공학적인 기술뿐 아니라 물리학의 이론도 곧바로 적용되지요. 과학과 기술을 구분 짓는 것은 일정 부분 타당하지만 어느 정도 연관돼 있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학철학이 '종합적이고 생산적인 학문'임을 힘주어 말하는 이 교수는 원래 학부와 석사과정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물리학도였다. 이 교수는 대학에 들어오기 전 세계에 대한 다양한 수준의 이론화에 관심을 가져 그것에 가장 근접했다고 판단되는 물리학을 선택하게 된다. 그 와중에 사회나 경제, 철학, 심리학 등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각 학문마다 세계를 이해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는 메타적 접근에 흥미를 가진다. 석사과정도 물리학을 전공한 이 교수는 전문화된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하는 물리학보다 활동적이고 종합적인 성격이 강한 철학에 강한 매력을 느꼈었노라 고백한다. 학문을 하면서 즐기기에는 철학만큼 좋은 학문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학문적 궤적이 있었기에 이 교수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 역시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직업을 구분하는 것을 지양해 달라는 것이다. 특정한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이 다를 뿐, 궁극적으로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한다는 점에서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부연한다. 때문에 자신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과 종합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갔으면 하는 것이 이 교수의 바람이다. 이런 바람은 그가 본교 최초로 개설한 '과학기술과 현대사회', '현대 과학기술의 쟁점'이라는 교양과목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즐겁게 학문하며 재미있게 강의한다

 

   
 

 "제 수업에는 이공계열과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이 모두 들어옵니다. 실제로 과학기술 분야에 활동할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일에 대해 한 번쯤 반성하고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에게는 과학기술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들을 바로잡아 줍니다. 지식은 배우면 되지만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공계열과 인문사회계열이 생산적인 협동 연구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올해 3월에 본교에 부임한 이 교수는 부임하자마자 '과학철학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여태껏 개설됐던 과목을 통합, 관리하며 교과서를 만들고 강사진을 꾸릴 준비를 하고 있다. 스스로 "유능한 학자는 못될 것 같다"라며 겸손해하는 이 교수가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그냥 재미있어서'이다. 학문을 즐겁게 하면서 학생들이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강의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학과 철학의 유쾌한 만남, 그 조화로운 화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 교수가 만끽하는 '겸손한 즐거움'이 아닐까싶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상욱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런던대학(LSE)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대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철학 연구소(CPNSS) 선임연구원, Measurements in Physics and Economics Discussion Paper Series 편집간사, 런던대 철학과 객원 조교수를 지내고 올해 3월 본교에 부임했다. 논문으로는 국내 7편, 국외 10편이 있으며 저서로 '과학적 창조성을 찾아서'(창작과 비평사: 근간),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한양대 출판부: 근간)'과 번역서로 '양자물리학: 허상인가 실재인가?'(들녁: 근간) 등이 있다. 한국과학철학회, 한국과학사학회, 미국과학철학회, 영국과학철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1996년과 1997년에 'ORS Award'와 'Lakatos Scholarship'을, 올해에는 'The Robert McKenzie Prize'를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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