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필요한 시대,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즐거운 상상력의 끝판왕
입소문 흥행의 주역, 영화 '육사오'의 박규태 감독(신문방송학과·91)을 만나다

▲ 영화 '육사오'의 박규태 감독.
▲ 영화 '육사오'의 박규태 감독.

2022년 코믹영화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육사오'의 감독 박규태 감독을 만났다. 한양대학교 ERICA 신문방송학과 출신인 박규태 감독은 올해 10월 4일 채널H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영상 인터뷰 초청에 흔쾌히 수락했다. 한양대 동문으로서, 그리고 영화감독으로서 시간을 내준 박규태 감독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1. 모교 재학 시절에는 영화 동아리 ‘소나기’에서 활동하면서 단편영화를 제작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동아리 선택뿐만 아니라 신문방송학과라는 전공도 영화감독이 되신 것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요. 언제부터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영화와 가까워진 계기는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하고부터였죠. 이 학과가 영화, 미디어 매체와 꽤 연관이 있거든요. 영화동아리(소나기)도 들어가게 되면서 8미리, 16미리 필름영화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영화 제작에도 연이 생기게 되었죠.

감독이 되는 계기가 됐던 건 전역을 하고, 학교를 다니다 휴학을 하고나서였어요. 영화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무작정 충무로로 갔어요. 그곳에서 영화 제작을 했는데, 상암의 영화사가 저를 좋게 봐줬어요. "남은 대학 2년 등록금을 지원해줄테니 이곳(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어달라." 그렇게 말했죠. 당시 처음 시나리오를 썼던 게 "베이비세일(1997)"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투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당시 대학교 3학년) 이제 그렇게 (감독으로서) 데뷔를 했고, 영화감독이 되는 계기가 됐던거죠.

​2. 이번에 개봉한 영화 ‘육사오’ 너무 즐겁게 잘 봤습니다. 작품에 대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천우(영화 '육사오' 말년병장 역 고경표 배우)가 우연히 57억 로또를 하나 줍게 됩니다. 그런데 그게 북으로 날아가면서 용호(영화 '육사오' 북한군 역 이이경 배우)가 줍게 돼요. 그걸 남과 북의 군인들이 당첨금 배분을 놓고 싸우는 코믹 접선극입니다.

▲ 채널H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모습.
▲ 채널H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인터뷰 모습.

3. 1등 당첨 복권이 바람에 날려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손에 들어간다는 참신한 설정을 어떻게 정하게 되었나요?

영화 컨셉을 한줄로 정리한 것을 로그라인이라고 해요. 이 로그라인을 만들 때는 방식이 있는데, 'If, What 공식'이 있어요. "만약, 이렇다면?"이란 틀에 이야기를 넣는거죠. "누구나 꿈꾸는 로또가 만약, 북으로 날아간다면?" 라는 생각으로 영화의 컨셉을 설정하게 되었어요. 주변 지인들에게도 반응이 썩 괜찮아서, 이 설정으로 영화(육사오)를 만들게 되었죠.

​4. 영화에서 고경표, 이이경 등 충무로 젊은 피들의 신선한 케미스트리가 돋보였는데요. 북한 정치지도원 최승일 역의 이순원님, 선전대 리연희 역의 박세완님 등 ‘숨은 원석’을 발견했다는 평이 자자합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배우들을 캐스팅하셨나요? 배우마다 캐스팅 포인트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군사분계선에 위치한 남북한 군인들이 대체로 젊잖아요. 그래서 젊은 배우들 위주로 캐스팅하려 노력했어요. 추가로 이제 코믹연기가 되는 배우를 우선했죠. 진지하게 하면 되는 정극연기와 달리, 코믹연기는 웃겨야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연기라는게 티가 나거든요. 그래서 코믹연기가 (영화에 몰입하게 할 수 있는) 어울리는 배우들을 캐스팅했어요.

덧붙이자면 요즘 북한군에 대한 이미지가 못살고, 마르고, 까만 그런 고정적인 관념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깨고 싶어서 북한연기가 되고 신세대 여성같은 당찬 캐릭터를 원했어요. 그런 이미지로 제격인 박세완 배우('육사오' 리연희 역)를 캐스팅했어요.

▲ 박규태 감독의 영화 포스터.
▲ 박규태 감독의 영화 포스터.

5. 이번 영화 뿐만 아니라, 날아라허동구(2007) 감독, 달마야 놀자(2001) 각본 등 독특한 컨셉의 영화로 많은 관심을 끌었어요. 이런 재밌는 설정을 하는 감독님만의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작품 설정을 할 때 고려하는 기준이 몇 가지가 있어요. "새로운가?", "갈등의 충돌이 있는가?", "역발상이 가능한 이야기인가?"정도가 있죠. 이런 기준들은 예상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가 있어요. 그런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거죠. 그 움직임의 중심이 되는 게 인물간의 갈등이에요.

갈등이라는 게, 칡과 등나무가 반대로 감기지만 그게 얽혀서 만난다는 뜻이잖아요. 이처럼 스토리를 짤 때에도 연관없어 보이는 두 인물이 충돌해서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6. OSEN과의 인터뷰에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소설을 언급하시며 유머의 가치에 대해 말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살아오시면서 정립한 본인만의 “유머란 무엇이다”라는 정의가 있을까요?

코미디 유머를 저급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장미의 이름(움베르트 에코)'에서는 유머가 남을 즐겁게 하는 굉장히 가치있는 것이다라고 언급을 하죠. 그 문구가 매우 감명깊었는데, 그걸 토대로 "유머란 삶의 윤활유다."라는 말로 정의하고 싶어요. 어색한 상황에서도 유머 한 번으로 분위기를 풀어내면 굉장히 편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처럼 힘든 삶에서 유머는 조금 더 그 이음을 매끄럽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박규태 감독의 인터뷰 모습.
▲ 박규태 감독의 인터뷰 모습.

7.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범죄도시2’, ‘마녀2’, ‘공조2’, ‘한산:용의 출현’ 등입니다. 그리고 박규태 감독님의 ‘육사오’ 역시나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겼는데요. 대단한 점은 이 영화들 중 제작비가 100억이 넘지 않는 영화는 ‘육사오’가 유일합니다. 스케일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요즘 영화계에서 과감한 시도로 볼 수 있을까요?

​영화판에서 과감한 시도라고 볼 수 있죠. 최근 메이저 영화들은 스타배우나 감독이 주가 되는 영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잖아요. 하지만 저희 영화 '육사오' 같은 경우에는 확실히 요즘 메이저 영화들과는 다르죠. 하지만 극장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선택할 때, 예산이나 스케일만 보고 영화를 고르는 게 아니잖아요. 재밌고 의미있는 영화를 보니까요. 그래서 더 재밌고, 이야기의 힘에 집중한 영화를 만들고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8. 1995년 영화 〈천재선언〉의 제작부를 시작으로 시나리오 작가, 각본가, 감독 등을 맡으시면서만 27년째 영화계에 몸담고 계십니다. 영화인으로서 지금의 ‘박규태’를 만들어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 영화, 인물 , 에피소드 등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선배 영화감독님이 "감독을 결심하게 만든 영화가 뭐냐?" 하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영화를 한창 만들고 좋아하던 20대 초반의 제가 봤던 영화들이 생각이 났죠. 리얼리티한 대만영화들을 많이 보고 그랬는데요. 당시 봤던 영화들이 아직도 생각이 나요. 그렇게 좋아하고 쫓아다니고 하던 그때의 열정과 마음,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영화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9. 박규태 감독님처럼 감독, 각본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요. 한양대 동문으로서, 감독님과 같은 미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해주실 말이 있을까요?

​사실 영화 감독, 각본가는 자격증을 따는 것도 아니라 뚜렷한 길이 없어요. 명확한 건 그 모든 게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걸 필름으로 옮기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이야기에 집중해야해요. 책을 많이 읽어보고, 또 이야기를 만들어도 보고, 경험도 많이 해보면서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공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 박규태 감독의 모습.
▲ 박규태 감독의 모습.

10. 마지막으로, 한양대 동문으로서 저희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게요.

대학시절 교수님이 마지막 강의에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사회를 나가면 되는 것보다는 안되는게 더 많다. 그건 너희의 잘못이 아니다. 단지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고 생각해라.

이 말이 참 와닿았어요. 세상을 살다보면 되는 것보단 안되는 일이 더 많잖아요. 여러분도 그럴 거에요. 그래도 실망하지 마시라는거죠. 실망하지 마시고, 이번엔 운이 안 따라줬구나 생각하면서 넘어가는 마음가짐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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