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전공학부 선발 등 교육 환경의 변화
실용 학풍 선호도 증가에 "비인기학과"가 된 인문학
R&D 예산 증대 및 산학연 연계 확대로 경쟁력 갖춰야

인문과학대학 소속 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 씨. 1학년 전체 성적 산출 후, 그에게 지인들의 질문들이 쇄도했다. 만점에 가까운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다중전공이나 전과를 신청하지 않자 주변인들은 의아해하며 질문을 던졌다.

성적 아깝다. 왜 전과 안 했어?, 전과가 부담스러우면 경영학이나 상경 계열 다중전공이라도 하지.

김 씨는 "인문학을 좋아하고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질문을 받았을 때 속상했다"며 "인문대 소속 학생들이 성적을 잘 받는 이유가 전공 탈출을 위한 의미로 변질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전공에 대해 주변인들과 사회의 시선이 좋지 않아 회의감이 느껴질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변화하는 교육 환경

이런 걱정은 전공생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평생 인문학을 전공하고 연구해 온 교수들의 걱정은 더욱 깊다. 교육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재정지원 조건에 '무전공 입학 확대'를 추진한다. 한양대 역시 2025년부터 자유전공학부인 '한양인터칼리지'를 신설해 250명의 무전공 학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는 지난 1월 교육부의 무전공 모집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며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게티이미지
▲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는 지난 1월 교육부의 무전공 모집에 대한 입장문을 발표하며 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 게티이미지

전국의 인문대학장단이 교육부의 무전공 입학 확대 정책에 비판의 의견을 표했다. 전국국공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와 전국사립대학교 인문대학장 협의회는 지난 1월 '교육부가 추진하는 무전공 모집에 대한 전국 인문대학장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교육부의 느닷없는 무전공 모집 요구로 대학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무전공과 자유전공 선발이 활성화되지 않은 현시점에도 소수 인기 학과에 대한 쏠림 현상은 심각하다. 체계적인 대비책과 방안 없이 무전공 모집 제도가 도입될 경우 현재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쏠림 현상이 야기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공 간 선호도 차이 현상

인문학을 포함한 순수학문보다 실용학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배경에는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우선 경제적 가치 창출의 규모가 성공의 여부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이에 실용적인 기술 및 공학 분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직업을 중요시하는 풍조가 생겼다. 또한 현대 사회의 빠른 기술 발전과 혁신에 맞춰 실용적인 기술과 전문 지식을 익히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교육 체계와 프로그램 또한 실용 학문에 대한 선호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대학을 비롯한 여러 교육 기관은 취업 준비를 강조하며 실무 중심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실용성 높은 학문과 기술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 더욱이 경제적 안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 문화적 배경은 실용 학풍에 대한 선호도 증가와 기초학문의 비인기 현상을 낳았다.

 

▲ 전공 간 선호도 차이 현상은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에게만 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R&D 예산 등 연구 투자 비용 간의 극명한 차이 또한 전공의 선호도 차이 현상을 극대화시켰다. ⓒ 게티이미지
▲ 전공 간 선호도 차이 현상은 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에게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R&D 예산 등 연구 투자 비용 간의 극명한 차이는 전공의 선호도 차이 현상을 극대화시켰다. ⓒ 게티이미지

이는 R&D(Research&Development) 예산 및 지원 양상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난다. 최근 5년간의 국가 R&D 예산 중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의 예산 비중은 그 편차가 상당하다.

2017년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은 19조 1551억 원, 2018년 19조 3701억원, 2019년 20조 1988억 원, 2020년 23조 8789억원, 2021년 27조 779억원으로 R&D 분야 예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반면 인문사회 분야의 R&D 예산은 같은 기간 3064억 원, 2980억 원, 3340억 원, 3203억 원으로 감소했다.

과학기술 분야 투자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 부처의 투자 규모도 차이를 보인다. '2020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ㆍ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35개 부ㆍ처ㆍ청ㆍ위원회가 집행한 1022개의 세부사업에 수반되는 7만 3501개 세부과제 수행을 위해 총 23조 8803억 원이 소요됐다.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교육부를 중심으로 학술연구 지원이 이뤄진다. 교육부에서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에 지원한 연구비 규모는 2021년 기준 약 2390억 원으로, 총 5888건의 연구과제를 지원했다. 과학기술 분야와 비교해 예산 규모나 연구과제 수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감소하는 연구 지원과 예산으로 인해 연구의 질이 낮아지고 결국 학과 기피 현상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다.

 

교육 환경의 변화를 이상적으로 이끌기 위해

무전공이나 자유전공학부 등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신입생 모집 방식은 인기 학과에 대한 인원 몰림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인문학을 포함한 비실용학문 학과의 전공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면 학과의 존치 여부를 위협할 수 있다.

대학은 학과 간 협력을 강화해 다양한 전공 및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전공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학과가 협력해 교육과정을 개발하며 교수진 간의 연구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비인기학과의 학과 특성, 연구 환경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취업 및 경제적 가치 창출에 취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강화하고 적절한 교육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이는 산학협력 제도 및 산업 인턴십 제공 제도를 통해 보완할 수 있다.

학생들이 전공을 신중히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의 강화도 필요하다. 사회의 흐름으로 인한 실용학문 선호가 아닌 학생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 교육 환경의 변화를 이상적으로 이끌기 위해선 환경의 변화에 맞는 유연하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학과 간 협력 강화 및 산학연 협력 증대 그리고 인문사회계열에 대한 연구 지원 및 투자 등의 대책이 있다. ⓒ 게티이미지
▲ 교육 환경의 변화를 이상적으로 이끌기 위해 환경의 변화에 맞는 유연하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학과 간 협력 강화 및 산학연 협력 증대 그리고 인문사회계열에 대한 연구 지원 및 투자 등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 게티이미지

정부는 R&D 투자 및 예산 편성 시 인문사회 계열에 장기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미국은 인문학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법 제정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1965년에 제정된 '국가 예술 및 인문학 재단 설립법'은 '국가의 문명화와 사회의 진보, 민주주의 수준 제고를 위해 과학기술 발전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학문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에 대한 연구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기준 전미 고등교육기관 연구개발비에서 인문사회 분야 비중이 10.3퍼센트, 독일은 공적 R&D에서 인문사회과학비중이 8.4퍼센트, 영국은 연구/이노베이션기구 전체 R&D 예산에서 인문사회 분야 예산 비중이 5.1퍼센트를 차지한다.

ICT나 AI 등 미래 신기술의 중흥과 발전도 중요하지만, 더 큰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는 근본과 자원이 되는 인문학에 대한 투자와 지원도 필요하다. 인문학 연구는 다른 학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사회 문제에 대한 창의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기반이 된다.

현재 학생들 사이서 널리 퍼진 실용학풍 선호 및 비인기학과 발생 현상이 하루 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인문학에 대한 투자 증가, 산학연 협력 증대 등 교육환경의 변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학문을 갈고 닦음에 있어 그 절대 가치가 취업 및 경제적 가치 창출로만 굳어져서는 안 된다.

 

Mind and Hand

이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를 대표하는 모토다. 최고의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정신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학풍을 드러낸다. 실용학문을 위해서는 정신 구현을 이루는 인문학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학문 간의 '귀천'은 없다. 학문 간 연계 학습과 인문사회 계열 전공의 연구 강화를 통해 모든 전공이 협력하고 상생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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