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구 교수가 센터장을 맡은 '암 맞춤 의료센터'

직장인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으로 향한 입사 4년 차의 H 씨. 재작년 건강검진 때는 각종 검사와 소요시간이 부담되어 못했던 암 검사도 추가로 신청했다. 혈액만 조금 더 채취하면 유전자검사로 암 발병 여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H 씨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간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견됐단다. 다행히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서 해당 유전자의 돌연변이 활동을 억제하는 맞춤 약만 처방받았다. 이 사례는 수년 후 펼쳐질 의료 시스템의 가상시나리오다. 이러한 꿈의 치료를 현실의 첨단의료시스템으로 구현하기 위해 우리 대학 병원 ‘암 맞춤 의료센터’가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 암 맞춤 의료센터 탄생

‘1온스의 예방이 1파운드의 치료보다 낫다.’ 외국의 한 경구이다. 참 당연한 말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병원에 갈 짬을 내지 못해 본의 아니게 병을 키우는 경우가 적지 않고, 각종 검사 비용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특히 암 검사는 위내시경, 대장내시경, 갑상선 초음파 등 종류별로 검사 방식이 달라 모든 암을 예방 또는 초기에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담과 불안을 종식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암 예방, 치료법이 우리 대학 병원 연구진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공구 교수(의대 병리학)가 센터장을 맡은 ‘맞춤 의료 암 유전체 통합전략센터(이하 암 맞춤 의료센터)’가 그 주인공. 국내에서 유전자정보를 바탕으로 암을 예방, 치료하는 시설은 ‘암 맞춤 의료센터’가 최초다.
우리 대학 병원은 오래전부터 암 환자 유전정보를 이용한 개인별 맞춤 의료센터 건립을 준비해 왔으며 지난해 11월, 첫 삽을 떴다. 차세대 암 치료 연구의 전진기지가 구축된다는 소식에 국내 의료계뿐 아니라 바다 건너 미국 하버드 의대, 국립암센터(NCI)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내왔다. 정부에서도 이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인정해 해마다 30억씩 4년간 120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연건평 200평 규모에 유전자정보 분석연구소와 치료실 등이 들어선 ‘암 맞춤 의료센터’에는 4대의 고속 유전체 분석기기와 전산 서버 시스템 등 연구를 위한 첨단 설비도 갖춰졌다.
학계의 관심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암 맞춤 의료센터’는 한국인의 5대 암(위암, 대장암, 간암, 폐암, 유방암) 유전자 돌연변이를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것이다. 암 종류별로
250가지의 유전자정보를 분석해 어떤 유전체에서 돌연변이가 생기면 암이 발생하는지를 연구하는데 이미 폐암과 간암환자의 유전체 분석을 마쳤다. 해당 돌연변이 유전자만을 선택해 수리하거나 파괴하는 표적 항암제 연구도 병행할 예정이다.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표적 치료제가 완성되면 드디어 개인 암 맞춤 치료 시대가 열리게 된다.

예방과 치료, 시간과 비용절감까지 모두 가능한 첨단 솔루션

‘암 맞춤 의료센터’와 우리 대학 병원 암센터는 표준 암 유전자 검사법도 개발, 보급할 계획이다. 이 검사법이 보급되면 마구잡이식 암 조기검사 대신 발병 위험이 있는 암만을 선별해 검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암 발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위·대장 내시경, 별도의 혈액검사 등을 할 필요가 없는 것.
또한 지금은 암에 걸리면 이약 저약 써보며 잘 듣는 약을 찾은 후 그제야 치료를 시작하지만,
유전자정보를 통해 맞춤 치료약을 찾아내면 시간과 비용이 절감된다. 그리고 이 검사법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암을 조기에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검사 결과 장차 암 발병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오면 미리 약과 건강기능식품, 운동법 등을 처방받아 암을 예방하거나 발생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다. 또 암에 걸려도 조기에 제거해 사망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생명공학·의학 분야 최고 규모의 글로벌 공동 연구에 참여

‘암 맞춤 의료센터’는 자체적인 연구뿐 아니라 글로벌 공동연구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3월 세계적인 암 유전체 국제 컨소시엄인 ICGC(International Cancer Genome Consortium)에 14번째 국가로 참여하여 ‘ICGC 유방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바로 이 프로젝트를 ‘암 맞춤 의료센터’가 주관한다. ICGC는 ‘휴먼게놈프로젝트’ 이후 생명공학·의학 분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의욕적인 연구 프로젝트다. 임상적·사회적 중요성이 있는 50여 종의 암에 대하여 유전체, 전사체, 후성유전체 등의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현재 미국, 영국, 일본 등 13개국 연구팀이 45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암 맞춤 의료센터’가 맡은 프로젝트에는 앞으로 5년간 매년 10억 원의 연구비가 지원될 예정이다. 연구진은 한국인과 서양인의 유방암 유전체 정보를 비교·분석하고, 유방암의 조기진단 기술과 개인별 맞춤형 치료기술을 개발할 것이다. 향후 ‘암 맞춤 의료 센터’는 유방암 이외에도 한국인의 5대 암인 폐암, 간암, 대장암, 위암 등으로 대상 질환을 확대하여 국제 공동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ICGC 참여는 우리나라 유전체의학 연구 수준과 기술력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적인 인정을 끌어낸 것은 바로
공구 교수를 필두로 한 ‘암 맞춤 의료센터’의 저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저력을 바탕으로 한국인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암을 극복해 나갈 ‘암 맞춤 의료센터’의 행보가 기대된다.


HyperText 1.
왜, 암 치료에 유전자 연구가 필요한가?

대부분의 암은 10~15개의 유전자 변이에 의해 발현되기 때문이다. 개인별 유전자 변이 정도를 파악하면, 암 발생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암이라도 개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유전자 변이를 보이며 사람마다 잘 듣는 약물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폐암 치료제 이레사는 동양인, 여성, 비흡연자에게만 잘 듣는다. 유전자에 따라 특정 약물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유전자정보를 미리 파악하면 환자에게 효과적인 맞춤 약물을 찾아 보다 신속한 치료가 가능하다.



HyperText 2.
유전자 분석 치료, 어디까지 왔나?

유전체의 비밀을 풀지 못한 10여 년 전만 해도 유전자 분석 맞춤 치료는 꿈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2001년 미국·영국 등 6개국 공동 연구팀인 HGP(Human Genome Project)와 생명공학회사인 셀레라 지노믹스가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비밀을 밝힌 인간게놈지도를 발표하며 맞춤 치료의 가능성이 열렸다. 이제는 어떤 질병이 어떤 염기서열에서 잘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것이 관건. 현재는 환자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단계가 진행되고 있다.




INTERVIEW
공구 교수

"앞으로 4년 내, 5대 암에 대한 유전자정보가 모두 밝혀질 것입니다"


 

   
▲ 공구 교수
의대 병리학
1988년 우리 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의료원에서 병리학 전공의 과정을 거친 후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워싱턴 대학병원 병리과에서 전임의를 수료했다. 이어 1994년에는 버지니아 대학병원 병리과 전임의 과정도 거쳤으며, 2000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SCI 국제학술지 독성화학학술지(JAT)의 아시아 편집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암 맞춤 의료센터장을 맡고 있다.

 

 

‘암 맞춤 의료센터’ 건립 뒤에는 공구 교수의 지대한 노력이 있었다. 공구 교수는 지난 20여 년간 암 발생의 유전적 요인을 집중 연구하며 SCI급 연구 논문을 100여 편이나 발표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유전체 연구 전문가이다. ‘암 맞춤 의료센터’의 수장으로 첨단 의학을 이끌어 가고 있는 공구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분자 종양학을 연구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어느 단계까지 연구가 진행되었나요?

병리학을 배우면서 암을 보다 근본적으로 파헤쳐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199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중 분자생물학의 응용분야인 분자 병리학을 접하면서 암 발생의 유전적 요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초고속 염기서열 분석기 등 첨단 기술이 등장하고 인간유전자 완전 해독시대가 열리면서 제 연구 또한 급물살을 타게 되었지요. 작년 11월 국가 지원으로 우리 대학 내에 맞춤의학연구소를 갖추고 암 발생의 유전적 요인을 연구, 분석하고 있으며 이 연구를 토대로 우리 대학 병원의 ‘암 맞춤 의료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Q2 대학원 과정의 맞춤의료학과 신설도 준비 중이신데요, 이 학과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맞춤의료학은 M(medical), B(biology), I(IT), T(technology)가 융합되어야 합니다. 맞춤의료학과는 이런 융합학문을 교육하고, 함께 연구하는 학과로 내년 3월 개강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현재 M.B.I.T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교수진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Q3 올해 상반기에 ICGC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셨는데요, 투자와 기대가 남다른 글로벌 프로젝트인 만큼 ICGC에 참여하고자 하는 기관이 많았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암 맞춤 의료센터’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저력은 무엇인가요?

장기간 같은 분야의 연구를 진행해 오면서 암 맞춤치료의 원천 기술을 확보하였으며 하버드의대 케임브리지 생거 연구소 등 해외 유수의 기관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고 국가에서 연구비도 지원받게 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ICGC에서 우리나라는 유방암, 일본은 간암, 중국은 위암 연구를 맡고 있는데요, 일본과 중국 연구진에 아시아 암 유전체 공동 연구를 제안하였으며 오는 11월 첫 회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Q4 암 맞춤치료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진전되었는데요, 이를 실용화하는 데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유전자 정보 분석과 사용에 대한 법규의 제정이 필요합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맞춤 의료시스템 구축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만큼, 맞춤치료는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솔루션입니다. 그런데 유전자 정보가 남용된다면 그 부작용은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임신 출산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을 할 수 있고, 기업 인사 채용 시 우울증 요인을 지닌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다거나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어요. 생명윤리와 직결된 문제로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사업단 내에서도 이에 관한 논란이 적지 않아요. 때문에 유전자 정보의 오·남용을 막는 관련 법규 제정이 급선무이며 이를 둘러싼 범국민적인 이해도 필요합니다.
둘째로 건강보험 시스템과의 연계입니다. 우리나라는 국가에서 국민건강보험을 운영하고 의료를 통제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국민 유전자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맞춤치료를 시행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 있으나 의료법이나 사보험 등에 가로막혀 주춤하고 있어요. 이를 개선한다면 유전체 연구 선도 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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