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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_권송택한양대학교 작곡과 교수음악연구소 소장한양대학교 음악대학을 거쳐 프랑스 파리 제4대학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음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문분야는 19세기 음악이다. 저서로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K. 423>과 공저로 <시창과 청음> I, II권, <옴니아르스> I권, <새들배음악사> I, II권, <음악 속 삶 읽기> 등이 있으며 26편의 학술논문이 있다. | ||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들렌 향은 하나의 후각을 통해 희미했던 주인공의 어린 시절 기억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오게 하는 계기가 된다. 후각을 통해 아무 욕망이나 목적 없이 자연스럽게 솔솔 일어나는 무의지적 기억 속에서 저자는 자신의 삶을 섬세하게 되짚어보면서 이 소설을 탄생시킨 것이다. 음악도 이러한 무의지적 기억이다. 우리는 음악을 그저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 욕망, 사랑, 기억, 우연의 문제와 모두 얽혀 있는 어떤 것을 그 속에서 ‘읽어’ 내기 때문이다.
듣는 음악에서 추억과 함께 ‘읽는’ 음악으로
교양과목 ‘고전음악의 이해’를 가르치며 누구나 클래식 음악에 쉽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음악은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아침에 눈을 뜨며 듣는 자명종 소리부터 시작하여 핸드폰 벨소리, 광고 음악, 버스나 지하철 정거장마다 흘러나오는 음악, 로고송 등등.
그 중 가장 으뜸으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애절한 가사와 함께 절절하게 노래되는 유행가일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종교적인 목적을 위한 찬송가나 불경 소리도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릴 것이다. 그렇지만 클래식 음악은 우리에게 여전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 이유는 유행가와 비교한다면 감상 시간이 길고 그 구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감상 시간이 길어지면 우리가 오랫동안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하므로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없다. 구조가 다양하고 복잡한 것은 긴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 시간예술에서 다양성을 주면서 조직적으로 작품을 끌고 나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길게 진행되는 시간예술을 탄탄한 형식 안에서 구현하지 않는다면 짧은 구절의 반복으로 단조롭고 지루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대신 장시간의 주의력과 함께 얻어진 감동은 그 깊이나 정도가 즉각적이고 금방 잊어버리는 감동과는 다르다. 넓은 경간을 가지고 이어지는 구조를 이해하면서 얻어지는 음악적 감동은 우리가 일생에 한두 번 겪을까 말까 한 감동적인 순간을 여러 번 제공할 수 있으며, 이 감동은 다른 데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나 감동과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 우리는 음악을 그저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들어있는 여러 가지 감정이나 경험을 자신에 비추어 다양하게 ‘읽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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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삶의 본질에 한 걸음 더 다가서다
누구나 클래식 음악에 가깝게 접근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작은 책을 하나 펴냈다. 한 번 쯤은 고민해보았을 문제인 자연, 종교, 사랑, 죽음, 철학, 사회, 민족, 지성 등을 음악 작품을 통해 살펴보는 방식으로. 한 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자연 경관을 화가가 그림으로, 시인이 시로 써내려 간다면, 작곡가는 이 광경을 어떻게 음으로 표현할까?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사례를 자연이라는 카테고리에 담았다면, 로마 가톨릭 음악에서 서양음악사가 시작된 것을 비롯하여 신교음악이 탄생하는 과정, 또 그 이후의 기독교 음악 발달사를 종교라는 큰 주제 아래 풀어보았다. 모든 예술의 가장 으뜸가는 소재인 사랑에 대해서도, 그 여러 감정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된 정서론, 장조와 단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정서 표현의 차이점 등을 사랑을 테마로 하는 음악을 통해 살펴보았다.
음악은 우리 인류의 사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세기 후반 서구 유럽의 예를 들어보자면, 부를 축적하는 중산층의 대두로 오페라 극장과 공공연주회장이 속속 건립되면서 대규모 청중을 위한 많은 작품들이 사회적 변화에 의해 생산되었다.
오페라는 더 이상 궁정과 귀족계급이 독점하는 오락물이 아니었으며, 기악음악에서는 대규모 청중을 위한 교향곡과 협주곡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런가하면 음악은 19세기 서구 유럽에서 퍼져 나갔던 여러 나라의 독립운동, 민족주의 운동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격동의 시대,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음악에 담아낸 시대정신과 정서를 음악을 통해 느껴볼 수 있도록 짚어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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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음악
예술가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수학적이고 건축적인 창작기법으로 호소하기도 한다. 이는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소수의 지성인들끼리만 소통하기 위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지성적인 창작기법까지는 아니더라도 음악은 문학작품이나 미술작품과 달리 감상하기에 어느 정도의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은 소수의 ‘아는 이’만을 위한 배타적인 엘리트적 뉘앙스를 풍기지만, 음악을 위하여 자그마한 내공을 쌓아 우리 자신이 ‘아는 이’의 주체가 된다면'나 자신의 삶의 경험뿐만 아니라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것까지 읽어낼 수 있는 기쁨과 함께 그 감동 또한 남다를 것이다. 적어도 한양대학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활했던, 또는 생활하는 우리는 음악이 주는 심오한 감동과 기쁨을 맛보는 ‘아는 이’의 특권을 누려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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