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아이 넷 가진 24세 아빠

 

   
▲ 김준혁 _ 법학과 08 

한양대의 건학이념은 그저 말로 끝나지 않고 교수, 학생, 직원, 동문 등 모든 한양인의 배움과 실천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사랑의 실천과 근명, 정직, 겸손, 봉사의 핵심가치를 만들어가는 생생한 한양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 보세요. 

 

* 본 글은 2010 제10회 사회봉사 체험수기 공모전 - 서울캠퍼스 최우수상 수상작 원문임


 

 

 


‘나누리’와의 만남


나는 비록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눈물겨운 하루가 있을 수 없다고.

어린 시절 나는 꿈과 패기가 넘치는 소년이었다. 부모님은 철부지 꼬마의 자신감을 존중해주었으며, 나 역시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마음깊이 존경하였다. 나는 영업부에 근무하셔서 해외에 계셨던 아버지가 멋있어 보여 어린 시절부터 외교관을 꿈꿔왔다. 당시에는 50평의 넓은 집과 강아지가 뛰놀 만큼의 정원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유복했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가 화목하게 지냈다. 그때의 나는 동화 속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주인공과 별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가 반전을 맞게 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아버지가 법을 잘 모르셔서 사기를 당했고, 우리 가족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쫓겨나 18평의 임대아파트로 이사를 해야만 했다. 원래 살던 집의 반도 안 되는 평수에 가구도 다 들어가지 않아 피아노나 고가구들은 모두 처분해야 했고, 몇 년 간 키워오던 강아지도 키울 형편이 되지 않으니 다른 집에 보내야만 했다.

한창 사춘기였던 때에, 나는 아버지의 무능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고, 약자를 보호해주지 않는 법을 증오하게 되었다. 왜 법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가? 정의란 법이 둘러쓰고 있는 가면에 불과한 것인가? 라는 질문에 회의를 가진 나는, 꿈을 외교관에서 법관으로 전향하게 되었다. 이때에 내가 법관이 되겠다는 동기는 법을 알아야겠다는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복수심과 비뚤어진 가치관에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던 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봉사동아리인 ‘나누리’ 활동을 통해서이다. 처음에는 대학에서 요구하는 필수 봉사시간을 이수하기 위해 시작한 봉사였다. 하지만 나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점차 바뀌어가는 스로에 대해 놀라게 되었다. ‘나누리’는 고아들이나 혹은 이혼이나 한쪽의 사망으로 한 부모 가정이 된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는 활동을 한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가진 것의 고마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비록 과거에 비해 지금은 어렵지만, 그래도 나는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내 팔다리가 모두 멀쩡하며, 더구나 집도 있지 않은가? 이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행복한가!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행복은 내 마음속의 파랑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종종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의 감옥 속으로 집어넣는다. 항상 위를 바라보고, 스스로 남보다 못하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평생토록 그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스로가 마음속에 이미 감옥을 만들어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딸아이 넷 가진 아빠


많은 아이들이 나를 통해 차츰 웃음을 되찾게 되었다. 양육원은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다. 더구나 주말 저녁에는 다른 친구들처럼 놀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다. 하지만 일요일 밤에 아이들의 농담을 떠올리며 기분 좋게 잠드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묘하게도 행복이란 마치 바이러스와 같아서 작은 기쁨이 큰 기쁨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흐뭇하게 한다. ‘나누리’의 활동이 3년차가 되어갈 즈음, 나는 내가 가진 능력과 재능을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사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나와 비슷하게 부모가 법을 잘 몰라서 사기를 당한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것이 아이들과 내가 접점이 많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들이 비슷하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기가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이때 사람들의 이러한 법률의 무지가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만약 법관이 된다면 일정한 영역에서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힘이 생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아이들을 만남으로 법관이 되겠다는 나의 결심의 동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이들과 나의 동병상련이 사회를 향해 날카롭게 갈아두었던 칼날을 무디게 만들었던 것이다. 5분만 늦어도 애타게 나를 찾는 아이들로 인하여 나는 어느 순간 키라에서 슈바이처가 되어있었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응봉지역아동센터 사회봉사팀장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3년째 계속하고 있다. 아마도 ‘나누리’에서의 습관이 관성이 붙은 것일 게다. 처음에는 나를 너무 어려워하여 수업할 때 눈도 못 마주치던 아이들이라 사실 수업을 하면서도 굉장히 서먹했다. 이러한 관계를 개선해보고자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러가고 공연도 보러가고 놀이공원에도 데려갔더니, 이제는 공공장소에서도 나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곤 한다.

아이들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신나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친구와 싸워 속상하다고 수업도중에 펑펑 울기도 하고, 누구 남자친구가 어떠니 저떠니하는 이야기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면 마치 내가 마냥 아빠가 된 기분이다.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했더니, 그 다음부터 사적인 자리에서는 아예 아이들이 나를 아빠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나이 스물넷에 딸아이 넷 가진 아빠가 되어 버렸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아이들에게 정성스런 편지를 받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유치한 포장지에는 아이들다운 귀여움이 물씬 담겨 있었는데, 내용은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아이들은 나를 아빠라고 부를 때 정말 아빠가 옆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자신들을 위해주는 것에 항상 감사하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특히 내가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고 자기가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선생님과의 인연을 평생 이어가고 싶다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왈칵 나올 뻔 했다. 늘 말썽 많고 장난기가 많은 녀석들이었지만 아이들의 편지로 인해 나는 가슴이 뭉클했다.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


‘나누리’에서의 고아들과 지역아동센터의 저소득층 아이들은 늘 사랑을 갈구한다. 부모가 없어서 아예 사랑을 받을 기회가 없었거나 혹은 한쪽이 있다고 하여도 밖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도덕이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아이들을 위해주려고 노력한다. 어떤 선생님은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하곤 하신다. 하지만 나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을 받은 아이들이 나중에 사랑을 베풀 줄도 알기 때문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하지마’라는 제재만 받은 아이들은 사회를 삐딱하게 바라보게 되고, 사회에 대한 공격성이 더욱 커지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며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 나이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늘 활기차고 패기가 있던 어린 소년을 떠올린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무엇을 하겠냐는 교장 선생님의 질문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당당히 소리치던 아이를. 전교생 앞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하던 똑똑한 우등생을. 절도사건으로 단체기합을 주겠다는 담임선생님께 이것은 부당하다고 소리쳤던 건방진 반장을. 나의 머릿속의 소년을 떠올릴 때면 나는 좌절된 현실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다. 그래, 그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왜 지금에 와서 불가능하겠는가?

 

봉사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


엄밀히 따지면 나는 ‘봉사’라는 의미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봉사’란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마치 자신을 희생하며 나누어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어에서는 봉사를 하는 사람(volunteer)은 있어도 봉사를 받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는 없다. 참된 의미에서 봉사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봉사라는 단어보다 나눔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사랑을 팔아, 아이들에게서 꿈과 추억 그리고 희망을 산다. 내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그리고 사랑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의미 있는 꿈을 되찾아 주었고, 그 꿈이 실현시킬 수 있도록 늘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시켜준다. 아이들은 나를 통해 아빠를 보고, 나는 아이들을 통해 내 존재의 가치를 느낀다. 우리들은 서로에게 희망이 되는 셈이다.

나는 비록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가 지금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지금처럼 행복하고 눈물겨운 하루가 있을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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