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동문이 뛴다 33

 "한양대와 국문과는 영화 위한 아이디어의 원천"

 충무로 불문율 속 감독의 고뇌 어린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 전만배 감독(국문 92년졸)

 

 대통령은 현대 국가 권력을 대변하는 최고의 상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남다를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의 정치사를 오래도록 경험한 탓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인식도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대통령을 소재로 한 각종 유머가 일상에 지친 시민의 삶을 위로하기도 하고, 대통령선거는 이제 하나의 '국민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대중적 인기'에 내재한 감독의 고뇌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다뤄 화제가 된 '피아노 치는 대통령'. 지난 12월 8일 개봉된 이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영화는 영화 자체의 흥미도 흥미이지만, 대통령을 유머스럽고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모 방송사가 조사한 '비서실장에 가장 잘 어울릴 연예인'을 묻는 코믹한 설문에 이 영화의 주연배우가 꼽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개봉된 이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만배 감독(국문과 92년졸)을 인터뷰하는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30분이나 늦은 시간에 숨을 헐떡이며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감독, 그것도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감독으로서는 아주 행복하죠. 하지만 제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정말 제 영화가 좋아서 사랑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란 특별한 소재를 그저 잘 꾸며서 사랑을 받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영화가 나온 이후로 부끄러워서 잠을 편하게 잔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전 감독은 영화가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신인 감독이 지난 한계와 이에 따른 경험 부족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논쟁도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그는 정치권에서 벌어진 논쟁에 대한 질문에 간단히 답했다.

 

 "누구 말처럼 정말로 정치권의 개입이 있었으면 재정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았을까요?(웃음) 당연히 영화의 완성도도 지금보다 한층 나았을 것이고, 영화 보급이나 홍보의 측면에서도 훨씬 수월하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반론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가 못해 힘들었던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영화를 자세히 보셨으면 알겠지만, 값싸게 찍은 장면도 굉장히 많고요."

 

 진지하고 체온이 깃든 영화 만들고파

 

   
 

 전 감독은 '재미있다'는 영화평이 나올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가 원래 생각했던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대통령은 단순히 로맨틱하고 코믹한 대통령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대중적인 평가와는 달리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란 영화 자체가 사실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가 처음에 그렸던 '한민욱 대통령(안성기 분)'은 매우 진지한 대통령이다. 딸의 담임인 최은수(최지우 분)와의 로맨스도 영화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전 감독이 처음에 써 내려간 영화의 시나리오 역시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고민과 좌절, 기쁨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아주 진지한 작품이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의 인간적인 면을 여성정책,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해서 매우 조심스럽고도 진지하게 표현하려던 게 당초 의도였다는 전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신인 감독은 첫 영화에서 확실히 흥행을 해야만 미래가 보장된다는 충무로의 '불문율'에서 전 감독은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보다 흥행이 수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기존의 계획을 수정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문화 활동이며, 충무로는 아주 냉정한 동네입니다. 제가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영화를 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였다고 하고 싶네요.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영화요? '피아노 치는 대통령'하고는 많이 달라요. 진지하고 인간적인 향이 그윽한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언제 할꺼냐구요? (웃음) 글쎄요? 언젠가는 해야죠! 또 일단 이번 영화가 괜찮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조금씩이나마 저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감독이 정말 제작하고 싶은 따뜻한 영화는 '춘향이'를 주인공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성장 영화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춘향이'와는 완전히 다른 '춘향이'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천한 신분에 대해서 월매에게 불평하고, 이몽룡이 단 한번의 잠자리 후 기약도 없이 과거를 보러 떠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춘향이가 전 감독이 상상하는 춘향이다. 한마디로 전 감독은 예쁘게 포장된 대중적 상상력을 극복하고 그 속에 내재한 인간의 진지한 내면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원천, '한양대 국문과'

 

 전 감독은 어느 누구보다도 본교와 자신의 출신 학과인 국문과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데 캠퍼스 생활과 국문학적 소양이 특히 많이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여자 주인공인 최은수가 국어 교사이고, 한민욱과 최은수의 인연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 매개가 '황조가' 숙제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춘향이'를 주제로 한 성장 영화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재학 시절 들었던 '춘향전 원전 강독'이란 전공 과목 덕분이다. 특히 영화의 '황조가' 장면에서는 정확한 한자 자문을 얻기 위해, 과 동기인 이승수(국문과 강사)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단다.

 

   
 

 "국문학적 소양이라... 평상시에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특별히 국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영화를 만들다 보면 국문학적 소양이 저도 모르게 꽤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있어서도 나름대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웃음) 전공 얘기를 하니까 이제는 박노준 교수님 (인문대·국문과 교수)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학교와 학창 시절에 대한 회고를 통해 그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품은 한양대와 한양인에 대한 애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 감독은 본교 출신들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개인적으로는 학교와 학과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면서도 '뭉치는' 데는 조금 약한 것 같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전 감독은 학교와 동문에 대한 애정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화창한 햇살이 빛나던 진사로, 여름 노을이 아름답던 노천극장, 따뜻했던 인문대 그리고 밝고, 진지한 모습으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한양인들의 모습 속에서 저의 정서를 살찌울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클 수밖에 없었죠. 더군다나 장학금도 줬고요.(웃음)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교에 대한 애정과 감사함을 가질 것이며, 최대한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것입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한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세요!"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사진 :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전만배 감독은 누구?

 

   
 

 전만배 감독은 1983년에 본교 인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인문대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일부 국문과 학생들마저도 그를 보며 연극영화과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영화 속에 빠져 살았노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래서 졸업도 1992년으로 조금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지난 12월 8일 개봉한 입봉작 ,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통해 데뷔했다. 전 감독은 학교에서 후배들과 함께 영화와 살아가는 얘기를 하고 싶다며, 누군가가 자신을 초청(?)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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