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상 제정 선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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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한양대학교를 이룩하려 했다. 건물, 학생, 교수, 그리고 각종 교육 시설의 완전 확충 속에서 아카데믹한 지성의 도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나의 굳은 신념이었다.’ 1939년 한양의 역사를 시작한 故 백남 김연준 박사. 그는 ‘백남 사상 문집, 1년의 계획은 원단에 하라’에서 건립 정신을 위와 같이 밝혔다. 故 백남 김연준 박사 타계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양은 사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사학으로, 공학교육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이끈 견인차로, 사랑을 실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요람으로 성장했다. 지난 75년의 역사와 함께 한양학원 설립자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백남상이 제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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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연준 박사를 기리다
백남기념사업회는 지난해부터 백남 정신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활동을 시작해왔다. 그 본격적 행보 중 하나가 바로 ‘백남상 제정’. 백남상은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교육자, 음악가로서의 업적과 사랑의 실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올해부터 특별히 제정된 상이다. 이에 공학, 음악, 인권·봉사 세 부문에서 사회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를 격년으로 선정해 수여하게 된다.
백남상은 공학, 음악, 인권·봉사 부문별로 1인 1단체 시상을 원칙으로 한다. 공학부문에서는 공학 및 응용기술 분야에서 탁월한 연구 활동이나 창의적인 기술개발 등을 통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개인 또는 단체가 그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음악 부문에서는 활발한 창작, 발표, 연구활동을 한 개인 또는 단체, 인권·봉사 부문에서는 인권제도 개선 등에 기여했거나 활발한 봉사활동을 한 개인 또는 단체를 선정해 백남상을 수여하게 된다.
백남상 후보 추천권은 백남기념사업회의 임원이나 운영위원회가 추천위원으로 위촉한 개인 및 단체, 역대 백남 사랑의 실천상 수상자, 그리고 공공기관, 학술단체, 연구기관, 사회단체 또는 각급 학교의 장 등이 갖게 된다. 추천서와 피추천자의 이력서, 증빙자료 등을 제출해 후보등록을 할 수 있다. 이후 부문별 2인 이상 4인 이내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자격심사 및 업적내용을 평가해 수상자가 결정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 1회 백남상 시상은 오는 10월에 이루어질 예정이다.
백남 정신을 기릴 백남상 제정 선언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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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에 이어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약력 및 공적을 소개한 임덕호 총장은 “백남 정신을 기리기 위한 뜻깊은 자리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한다”며 “교육자, 예술가, 인권운동가, 언론인으로서 열정적인 생애를 보낸 김연준 박사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종량 이사장의 백남상 제정 선언문 낭독이 이어졌다. “故 백남 김연준 박사가 타계한지 5년이 되는 해지만, 여전히 그리움과 존경이 남아있다”는 말로 시작한 그는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정신의 세 가지 원동력인 사랑의 실천, 실용정신, 예술혼을 잇고자 한다”고 말했다.
백남상 제정 취지문은 각 분과 위원장이 낭독했다. 공학부문 이영무 교학부총장(공과대·에너지)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앞선 실용정신을 바탕으로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꿈의 씨앗이 자라 한양이 공과대학을 거쳐 마침내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며 “한양은 지금까지 근대화를 이룬 선두주자이자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 되어왔고, 이 모든것의 밑바탕에는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조국 선진화에 대한 꿈과 희망이 있었다”고 공학부문 백남상 제정 취지를 밝혔다. 음악부문에 대해서는 강해근 명예교수(음대·관현악)가 “우리나라 최초로 바리톤 독창회를 개최한 것이 바로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이었다”며 “다른 여러 사업을 하며 음악을 잠시 쉴 때도 있었지만, 끊이지 않았던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음악적 열정을 상기하기 위해 제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성철 명예교수(사회대·정외)는 “인권·봉사부문은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삶의 철학인 사랑의 실천이 가장 잘 반영된 분야”라며 “봉사에는 마침표와 쉼표가 없으며,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줄 것”이라며 인권·봉사부문 제정 취지를 알렸다.
공학, 음악, 인권·봉사에 힘쓴 고 백남 김연준 박사와 백남기념사업회
故 백남 김연준 박사는 우리대학의 건립과 인권옹호한국연맹 회장을 역임하며 사랑의 실천 정신을 구체화했다. 인권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고 갈등과 분쟁을 완화하며 사랑의 실천 덕목을 몸소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그의 실용정신은 과학기술교육을 통해 구국 비전을 세우고 확고히 실천하며 드러났다. 그는 실제로 과학기술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겠다는 실용정신으로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했으며, 이는 공학교육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 교육사에 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학교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장학금 지원 등을 통해 교육사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꾸준히 드러내기도 했다.
예술혼 역시 故 백남 김연준 박사에게 있어 삶의 힘이자 출발점이었다. 감동으로 전해지는 음악을 다수 작곡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청산에 살리라’, ‘비가’ 등의 가곡을 작곡한 그는 ‘음악은 기교가 아니라 혼’이라는 말을 남기며 내면에서 감동으로 전해지는 음악을 꾸준히 만들었다. 이 뿐 아니라 기독교 신문을 창간하고, 아시아 방송국 명예이사장을 역임하는 등 언론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기도 했다. 故 백남 김연준 박사의 이러한 다양한 사회 분야에 대한 공헌은 6개국 14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받는 일을 가능케 했다.
이혜진 학생기자 coolppee@hanyang.ac.kr
정규진 사진기자 flowkj@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