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연구의 1세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곽계달 교수
70년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은 중화학 공업이었다. 무겁고 거대한 '규모의 미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당시 '반도체'란 그 용어마저도 낯선 미지의 산업이자 학문이었다. 서울캠퍼스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의 곽계달 교수는 모두가 '커다란' 것을 동경하던 시절에 '작은 세상'을 찾기 위해 긴 여정을 시작한 유별난 학자다. 한국인 최초의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서 곽 교수가 머나먼 이국의 땅에서 '반도체 공학'을 전공하고 돌아왔을 때 한국은 여전히 '도체'와 '비도체'만을 구분할 줄 아는 단순한 세상이었다. 이후 국내 반도체 연구의 1세대 주자로서, 20여년 동안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묵묵히 연구실을 지켜온 그다. 하지만 곽 교수는 이 모든 것을 운으로 돌린다.
한국 반도체 연구의 산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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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전통은 매 학기 초에 모든 연구소에서 여러 가지의 과제를 줍니다. 그리고 과제 선택권은 개인에게 주어집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하는 욕심에 다양한 과제를 선택했습니다. 그 중 한 과제가 '반도체 특성 연구'였습니다. 70년대에는 반도체라는 용어마저 생소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반도체 연구 쪽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것은 당연했죠. 그러다 보니 운이 좋게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던 겁니다."
국내에서도 삼성에 의해 최초로 IC칩이 계발되자 반도체 산업은 점차 첨단산업으로서 그 가능성을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학자들이 앞다투어 반도체 연구를 시작했고, 많은 연구소들이 새롭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1990년, 곽 교수 역시 본교에 첨단반도체센터를 건립했다. 비로소 사람들은 '작은 세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작은 국토 위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반도체와 같이 작지만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이 전략적으로 유효하다는 사실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우리민족의 유별난 고집과 창의성이 이러한 산업의 성장에 더없이 훌륭한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다.
"어느 날 작고하신 삼성 이병철 회장이 일본 유수의 반도체업체 사장을 만났답니다. 그리고 우리도 반도체 산업을 하면 어떨지를 물었더니 그 일본 사장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을 듣고 이 회장은 오기로 반도체 산업을 시작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민족이 탁월하게 우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창조적이고 신념에 따르는 열정을 지녔다는 것. 그리고 또 일본과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국가와 함께 동행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현재 반도체 산업의 바탕이 됐습니다."
중국의 급부상 '위기는 곧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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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정부의 전략적 지원과 학계의 뒷받침 속에 기적적으로 성장해 왔다. 이제 반도체 산업은 자동차 산업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략산업으로 평가받는다. 세계시장에서 D램 가격 하나가 오르내리는 것에 국내 경기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과속 성장 탓일까. 매년 승승장구를 달려오던 반도체 수출 규모가 점차 하락하고, 급부상한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새로운 경쟁자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놀라운 반도체 산업 성장속도는 충분히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반도체 산업에 있어서 기초 연구보다는 말초적인 연구, 소위 돈이 되는 방향으로만 연구가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력낭비가 생기고,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도 중복 투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핵심기술 개발에 있어서 집중 투자를 하지 못하는 문제점도 발생했습니다.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기 위해 빠른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단은 반도체에 있어서 이미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에 과거보다는 훨씬 쉽게 어려움을 대처하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의 빠른 성장에 국내 모든 산업들은 바짝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넓은 시장과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저가의 중국 반도체들이 해외시장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지만 곽 교수는 그런 우려들을 오히려 기회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중국의 성장에 대해 소극적으로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이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는 능동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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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잘 봐야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중국 반도체 산업이라는 것은 외국인의 투자에 의해 설립된 반도체 공장입니다. 그것은 중국 고유의 기술이라기보다는 국제 자본과 국제 기술이 혼합된 것입니다. 그 안에는 우리나라의 기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앞서 있지만, 중국이 앞서가는 것을 두려워해서 어떤 이들은 기술을 선택적으로 줘야한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런 논의 이전에 좀더 적극적으로 우리가 중국 안에 들어가서 우리 반도체 제품을 생산해야 합니다. 그들의 성장을 오히려 우리가 주도하면서, 그 부가가치 역시 우리가 점유하자는 것이죠."
새로운 기회를 강조하는 곽 교수는 그 구체적인 대안의 땅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꼽는다. 곽 교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중국의 성장을 예상하고 중국 유수의 대학들과 폭넓은 학술 교류를 진행해 왔다. 그 결과 지난 해 9월에는 중국 상해의 푸단대학과 합작으로 '푸단-한양반도체연구소'가 설립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러시아문화원의 자문위원으로서 러시아의 과학과 기술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면서 두 나라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최근 부인과 함께 러시아 울리야노프스 국립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기도 했다.
공부보다 '성찰적 삶'이 중요해
세월을 한참이나 거슬러 곽 교수에게 대학 시절을 물었다. 모범생이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커다란 웃음으로 답하는 그는 이른바 '불량 학생'이었단다. 곽 교수는 대학에 들어와서 2학년 때까지 학교 공부대신 '인생 공부'를 했다고. '어떻게 하면 이 험악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를 시작으로 그는 일상을 사로잡는 삶의 의문들에 대해서 한참이나 진지한 고민을 해야 했다고 고백한다. 그러하다 보니 학교 성적도 좋지 않았단다. 3학년이 돼서야 다시 공부를 시작해 결국에는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 그는 고백한다. 난데없이 그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그 이후에는 공부 잘 하셨겠죠,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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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 잘한다는 말을 참 싫어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부족한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요. 어떤 면에서 좀더 인간적인 면으로 성숙할 수 있는 대학생활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내 목표였고, 따라서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나는 그만큼 정신적으로 부자이고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곽 교수는 비록 경제적 성취가 없어도 부자가 될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로 여유를 가지는 것. 그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인생에 대한 많은 사색을 할 것을 권고한다. 많은 이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며, 스스로를 분주한 일상 속에 구속하고 새가슴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기에 곽 교수는 너무 슬프다. 인간의 존엄성을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는 그의 눈에는 참 귀한 많은 인생들이 제 가치를 다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완전한 사람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우리 삶을 즐기면 또 다른 우리 인생을 볼 수 있는 관점이 생기지 않을까요? 보이는 것에 집착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잃게 됩니다. 늘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대신, 모든 것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갖아야 합니다. 그런 삶의 여유를 가질 때 우리는 더욱 행복해질 것입니다. 세상은 내 뜻이 통하기도 하고, 때로는 통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바로 반도체처럼 말입니다."
학력 및 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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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