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의 야누스, 방사선 방호 전문가

 1911년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1934년 알프스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연구 도중 피폭된 방사선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그녀가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는 비화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대 과학의 개가라 할 수 있는 원자력은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그 위험성으로 인해 야누스의 얼굴에 쉽게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자력과 관련한 연구가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것은 방사능의 효용과 안전 문제에 앞서 범사회적으로 만연한 원자력에 대한 '몰이해'의 위험성이다. '방사선 안전'을 연구하는 서울캠퍼스 시스템응용공학부 이재기 교수는 원자력에 대한 논의가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쉽게 선정적으로 변질되는 현실을 누구보다 우려하는 학자다.


 방사선 문제는 '기술'만으로 해결될 수 없어

 

   
 

 "원자력이나 방사선은 문명의 이기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저의 주된 학문적 관심은 바로 이러한 방사선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원자력 관련 시설의 안전도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수준에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된 사회적 논의들은 원자력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논의가 비단 기술적인 측면에서 모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 교수는 지난 1993년 본교에 부임하기 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는 대학에 오기 이전부터 방사선 피폭시 생물학적 영향은 물론 원자력 시설에 대한 사회적 수용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술과 비기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구의 관심을 표출해 왔다. 과학기술부 개발사업 과제의 하나로 그가 현재 진행 중인 '방사선 방호를 위한 표준 한국인 모델 설정' 연구 역시 그의 오랜 관심이 축적된 사업이다.

 

 "과기부 원자력 중장기 연구 개발사업 과제 중의 하나인데 전체 사업은 1년에 총 1400억 정도가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죠. 제가 진행하고 있는 것은 '방사선 방호를 위한 표준 한국인 모델 설정'이라는 과제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는 정도는 신체, 생물학적 조건에 따라 다른데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지표들이 서양인을 모델로 설정된 기준들이었죠. 제가 진행하는 과제는 한국인을 모델로 우리 국민의 표준형을 찾는 연구입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현재 '우리 국민의 방사선 피폭 실태조사' 사업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방사선 피폭이란 원자력과 관련된 직업에서 복무하면서 노출되는 직업상 피폭, 자연방사선 피폭, 병원 등 방사선 서비스 이용시 노출되는 피폭 등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특히 자연 방사선의 주요 요소인 '라돈'은 공기 중에 포함된 것으로 지역에 따라 그 차이가 매우 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방사선인 '라돈' 피폭이 직업상의 피폭보다 심각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교수의 계획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방사선 피폭 백서'를 발간하는데 있다. 아쉬운 것은 방사선 안전 분야에 있어 국내의 인력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

 

 "우리나라의 방사선 안전도는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련 인력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방사선 안전을 위한 인력적, 제도적 인프라가 시급한 실정이지요. 특히 인력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것은 매우 당면한 과제입니다. 현재는 이런 분야를 다루는 교육기관도 많지 않아요. 수요가 많으면 직업으로서 보장되고, 결과적으로 인력의 전문성도 높아지겠지만 지금까지는 다소 소외된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사회적 갈등 해소 위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방사선 안전에 대한 기술적 연구와 더불어 이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바로 원자력 시설 수용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의 문제다. 흔히 '님비(Nimby)'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방사능 시설 유치 문제는 비단 기술적인 해법만이 사태의 해결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선정적으로 치닫는 논의들을 다시금 차분하게 바라보는 것. 이 교수는 원자력 시설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의 핵심은 '지식'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다.

 

   
 

 "우리 한양대 병원에서만 연간 약 40만명의 환자들이 X-ray를 촬영합니다. 이 방사선량을 다 합치면 우리나라 직무상 피폭량의 3배에 달하지요. 유엔의 통계를 보아도 자연방사선 피폭이 85%, 나머지 14%는 의료 방사선에 해당하고 직무상 피폭은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근의 방사능 시설로 인해 주민이 피폭되는 양은 자연방사선에 노출되는 수준보다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방사선 시설의 위험에 관한 논의들은 턱없이 과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인식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매우 시급한 과제입니다."

 

 현재 정부는 핵폐기물 처리장을 위한 부지 선정 문제를 놓고 해당 지역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 후보지로 상정된 울진과 고창 주민들의 반발은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 기술적 안전을 보장한 정부의 입장이나,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주민들의 입장, 어디에도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원자력에 대한 주민들의 몰이해만큼이나, 엔지니어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심리적 요인'들.

 

 "냉정하게 말해서 '안전' 문제로 인한 지역 주민의 피해가능성은 사실 없습니다. 그래도 대중적인 인식은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특정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면 그 지역이 기술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원자력 시설이 없는 다른 지역도 많은데 누가 그곳에서 살고자 하겠습니까? 또한 이를테면 고창은 수박이 유명한데 누가 폐기물 처리장이 있는 지역의 농산물을 소비하려 하겠습니까? 원자력 시설의 님비 현상을 들여다보면 '안전'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 이렇게 심리적인 피해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난제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나, 시설의 사업 주체 그리고 주민들 모두 자기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이해 당사자들간에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도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전문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되는 대안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원 다원화는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

 

   
 

 원자력과 관련해 일반인들에게 잘못 알려진 또 하나의 사실은 '원자력은 저렴하다'는 오래된 통념이다. 실제 원자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우수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 확대와 더불어 안전계통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고 현재는 석탄과 거의 유사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막대한 심리적 '리스크'를 지닌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는 현재 에너지 자원의 98%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안보차원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에너지를 특정 자원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원자력을 제외한 다른 에너지원들은 비축량이 겨우 4,50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조건 수입해서 비축해 놓는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자력은 발전소에 한번 들어가면 3-4년을 탑니다. 원자력의 중요성은 국가의 안보차원에서 접근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국가안보와 관련한 에너지원의 사회적 수용 문제를 연구하는 이 교수지만 정작 그가 방사선 안전 쪽으로 학문의 길을 선택한 데에는 결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대학 시절, 삼선개헌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했던 '시위경력'이 그의 활동을 제약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낳은 것. 원자력연구소에 취직한 후에도 이 교수는 이른바 '시큐리티(security)'가 요구되는 분야의 일은 맡지 못하고 결국 '방사전 안전' 분야를 선택해야만 했다고. "지금 들으면 모두가 웃을 얘기지만 당시에는 그랬어요.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생각합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을 기억을 더듬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다. 지하에 자리한 그의 작은 연구실을 나서며 정작 사회에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학력 및 약력

   
 
 이재기 교수는 1972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7년 동대학원 핵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5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및 방사선관리실장을 두루 역임했다. 주 연구분야는 방사선 방호, 보건물리, 방사선계측 및 방사선 차폐 부문으로 1997년 방사선방어학회장 우수논문상을 비롯해, 1999년에는 방사선 방호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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