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어문화사전' 영문판 출간한 서정수 명예교수

 서정수(인문대·국어국문) 명예교수가 자신의 퇴직금을 털어 '한국언어문화사전' 영문판을 출간해 화제다. 이 사전은 일반 한영사전 기능 외에 역사·지리·종교·사상 등 36개 분야에 걸쳐 한국 문화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존 한영사전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내용이 빈약했을 뿐 아니라, 영어 표현에 맞지 않는 용례가 많아 영어식 표현을 쓰기 위해 영한 사전을 다시 들춰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위클리 한양은 한국 최초의 영문판 언어문화사전을 편찬한 서 교수를 만나 출간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평소에 보던 사전보다 굉장히 두껍다. 한국언어문화사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단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

 

   
 

 우선 일반 한영사전과 달리 8백여 장의 사진과 함께 김치, 떡, 전통 놀이, 사계절 풍습 등 전통적 생활 문화어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다. 사진을 직접 찍지는 못했지만,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대학교 박물관 등을 돌았다. 사진을 통해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쉽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이 사전을 통해 최신의 영어용례를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쉬운 영어로 우리 언어와 문화를 풀이하는 서적이 없었다.

 

 - 이번 사전은 우리말과 영어의 미묘한 문법적 차이도 풀이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제대로 구분 못하듯 외국인들은 '-는', '-이', '-가'같은 조사를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나 고기는 안 먹어'라는 문장에는 '고기는 안 먹지만 다른 건 먹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는'이라는 조사 한 글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국 사람은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모른다. 이런 조사와 어미의 의미와 쓰임을 상세하게 풀이한 것도 다른 사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 퇴직금을 털어 이번 사전을 출판했다고 들었다. 사전 출간의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친 경험이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풀이가 되어 있는 서적이 거의 없어서 한국 전통 음식이나, 놀이 문화를 설명하는 데 힘이 들었다. 그 때 우리 문화를 외국어로 소개하는 서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번에 편찬된 사전을 통해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잘 모르는 교포 2·3세도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을 계획중인 학생이나 해외에서 근무할 외교관에게도 이 사전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로도 번역을 해서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 한글을 영어로 표현하다보니 더 힘이 들었을 것 같다. 편찬과정에서의 에피소드는 없는가?

 

 '물가에서 놀지 마라'를 영어로 옮기면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 문장을 'Don't play at the water side'로 번역했다. 그런데 영어 교정을 봐줬던 원어민은 내 번역은 콩글리시라며 'Don't play by the water'라고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at'에는 물 속에서 논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면서. 그런데 '물가에서 놀지 마라'에는 '물 속에서 놀지 말라'는 속뜻이 있다. 결국 사전에는 'Don't play at the water side'를 실었다. (웃음) 이처럼 영어로 알맞은 표현으로 고쳐오면 한국어 본래의 의미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점이 가장 힘들었다.

 

   
 

 - 사전 편찬 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분량이 많아서 들고 다니기가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나중에 좀 더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쉽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

 

 - 6년 동안 사전 편찬에 매달렸는데, 한글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향후 계획이 있다면?

 

 한글로 키보드 상에서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영어를 한국어식 발음으로 적어서 정확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five'는 '파이브'도 '바이브'도 아니다. 현 한글을 바탕으로 국제음성기호(IPA)와 같은 한글 음성기호를 만들고자 한다. 영어 단어를 놓고 기능키 하나만 누르면 그 단어의 발음 기호가 표시되는 CD-ROM이 만들어지면 'f'나 'v'와 같이 한글에 없는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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