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한 포기도 다 저마다의 이름이 있으니"

 매년 5월 14일.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랑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리기 위해 가슴 뜨거운 청춘들은 꽃집으로 향한다. 사랑과 욕망, 열정, 기쁨 그리고 아름다움과 절정이라는 꽃말로 포장된 장미를 연인에게 안겨주기 위해서다. 장미꽃을 선물한다는 뜻에서 '로즈데이(rose day)'라고 붙여진 이 날에 애인이 없는 사람들은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내년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로즈데이가 왜 어떤 유래로 생긴 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와 더불어 사랑의 전도사로 대표되는 장미가 종묘 값과는 별도로 한 뿌리 당 1천원이 넘는 로열티를 주고 수입되는 현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장미는 현재 50여 종으로 전량 외국의 육종회사가 개발한 것들이다. 연간 판매고가 100억원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식물 종자는 더 이상 생명자원을 이유로 단순히 보존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하는 하나의 '상품'인 것이다.

 

 식물 유전자 사관학교, 한택식물원

 

   
 

 종자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 야생식물의 보금자리이자 세계적인 규모의 식물원을 맨손으로 일군 이택주(토목 64년졸) 동문. 좁다란 시골길을 따라 도착한 한택식물원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이 동문이 아닌 비봉산 자락에 안긴 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였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수억 년 동안의 지구 변천을 겪으며 고유한 유전자를 자지고 있습니다. 그 것을 이용해 무엇을 만들어 갈지 아무도 모를 만큼 유전자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확보를 위해 전 세계가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죠. 종자는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개체를 땅에 키우면서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가 우수한 종을 많이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자전쟁에서 뒤쳐지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미스킴 라일락'을 이야기한다. 국제 라일락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는 '미스킴 라일락'의 조상은 한국에만 서식하던 물푸레나무과 꽃나무였다. 1947년 한 미국인이 북한산 백운대 부근 정향나무에서 씨 12개를 받아가 이 중 한 개체에서 얻은 품종이 바로 미스킴 라일락. 전 세계 꽃 시장의 40퍼센트를 점유할 정도로 엄청난 매매 규모를 자랑하는 이 종을 우리는 그 기원도 모른 채 역수입했다는 것이 이 동문의 설명이다.

 

   
 

 한택식물원은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식물유전자 보존을 위한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생식물과 이 동문의 기이한 인연은 그의 나이 40대 초반 무렵에 시작됐다. 가수 남진 씨의 '저 푸른 초원 위에'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만치 전원생활에 대한 매력이 넓게 퍼졌던 70년 대 초, 이 동문은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유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낙향했다.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은 낙농사업. 그러나 제 1차 소파동으로 인해 손해만 잔뜩 보고 낙농의 꿈을 접어야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조경수를 심는 것. 기왕이면 좋은 나무를 심자는 생각에 유럽의 식물원을 둘러보던 그는 지구상에서 식물원이 없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환경보호는 식물보호에서 시작돼야

 

 "우리는 기초과학 중의 기초과학인 식물학을 접어두고 중화학 공업 등 돈 되는 것에만 골몰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도 기초과학을 중요시해서 식물원을 건립했지요. 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식물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식물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럼 내가 한 번 해보자'하고 시작한 것이 이 어려운 작업의 시초가 됐지요."

 

 이 동문이 힘주어 표현한 '어려운 작업'이라는 말에는 지난 20여 년 간의 고단한 역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동안 이 곳에 투자된 자금만도 1백 억이 훌쩍 넘었다고. 대대로 물려받은 선산이라 부지 비용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비용은 순수하게 자비로 충당된 것. 자금 사정이 어려워 고민하며 지샌 밤은 자생식물을 공부하면서 보낸 시간이기도 했다. 식물 관련 책을 끌어안고 공부할수록 식물원에 대한 애착은 더 커졌고 중도에 포기하면 아무도 이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명의식도 높아갔다. 그러나 정작 이 동문을 힘들게 했던 것은 재정적인 압박보다는 식물원에 대한 우리사회의 철저한 무관심과 무지였다.

 

   
 

 "1992년 리우 회담 결과로 생물다양성 협약이 체결돼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실천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요. 한국도 그 협약에 따라 환경부에서 자연보존법을 제정했습니다. 지난 2001년에는 '자생지와 희귀식물 보전지구'로 지정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정작 필요한 지원은 거의 없었어요. '무슨 쓸 데 없는 짓이냐'는 반응이었죠. 단순히 유리 온실을 지어서 그곳에 관목식물이나 들이는 것이 식물원의 전부로 생각되는 현실입니다. 불고기 집이 커다란 정원을 뜻하는 '가든'으로 둔갑하기도 하지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조경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환경이 성장의 논리를 극복해 가는 지금, 환경운동의 첫걸음도 식물로부터 시작돼야한다는 것이 이 동문의 소신이다. 잔디를 심으면 지렁이나 땅강아지가 생기고, 잔디를 갉아먹는 벌레가 생기고, 또 그것을 잡아먹는 새가 날아온다는 것이다. 쓰레기 폐기물 등 결과적인 것만 보지말고 환경을 살릴 수 있는 기본부터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는 것. 이와 함께 식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도 땅을 일궈 식물을 키워봐야 한다는 것이 이 동문의 생각이다.

 

 이렇듯 식물에 대한 이 동문의 애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세계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자연 계곡을 따라 조성된 이 공원은 자연생태 조건과 동일하게 꾸미느라 8년이라는 긴 세월을 공들인 곳이다. 깽깽이풀과 복수초, 노루귀, 하늘매발톱, 금낭화 등 봄꽃이 지고 나면 여름꽃이 피고, 다시 그 자리에 가을꽃이 피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따른 곳으로 겨울을 제외하면 1년 내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원은 '나의 것' 아닌 '모두의 것'

 

   
 

 전국의 섬과 산, 들판을 누비며 이름도 잘 모르는 자생식물을 일일이 책을 통해 확인하고, 채집하며 옮겨심기 시작한지 어언 24년. 이 동문은 한택식물원이 30만평 넓이에 토종 수목류와 자생화 2천 4백 여종을 비롯해 외국종 6천여 종이 자라고 있는 세계적인 식물원임을 자부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식물연구소와 생태학습원을 설립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이 동문이 식물원을 공익법인으로 등록한 것도 식물원은 결코 개인 소유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유물이라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제 나이가 되면 젊었을 때 화려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은퇴를 하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에 와서 꽃이 펴서 죽을 때까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동문을 뿌리 하나에 대를 4번 갈고 마지막 죽으면서 백 년에 한 번 처음 꽃을 피우는 대나무꽃에 빗댄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중간에 포기 안 한 게 천만 다행이다"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이 동문에게서 식물원 입구에 자리잡은 키 큰 낙락장송의 기상을 엿보았다.

 

 학력 및 약력

   
 
 이택주 동문은 1964년 토목과를 졸업하고 1970년부터 1978년까지 동국대에서 도시행정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68년 신한기술원에 입사한 이 동문은 사단법인 이수토지구획 정리조합 업무부장과 사업소장, 학림건설 상임고문을 역임하고 1979년 고향인 용인시에서 한택식물원을 건립했다. 현재 사단법인 자생식물단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 동문은 한국식물원협회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주요 상훈으로 1995년 환경보전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1998년 '야생화농의 소득증대를 위한 우리 꽃 박람회' 농림부 장관상, 1999년 '소득증대를 위한 우리 꽃 박람회' 환경부 장관상, 2001년 경기도지사가 수여하는 농어민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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