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청소년 찾아나선 한양 과학의 전령사

 한때 이 땅의 모든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을 우울하게 했던 '이공계 위기론'의 실체와 원인을 규명하는 문제를 놓고 '어른'들이 도출한 결론이란 매우 상식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학생들이 힘든 공부를 싫어한다는 것. 그리고 힘들게 공부해봤댔자 사회적 보상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언론들은 다투어 이공계 인력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고, '어른 엔지니어'들은 이에 호응하여 자신들의 월급 봉투를 공개하며 격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자연과학대 화학과 최정훈 교수의 해석은 조금 남다르다. 그는 정작 이공학을 기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아이'들의 대답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공학 공부가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라고 토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강의실은 전국구,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청소년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최정훈 교수의 강의실은 전국의 초중고교.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이다. 최 교수는 작년에 출범한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이하 청소년과학센터)의 센터장을 맡으면서 홀연히 연구실을 떠나 자신의 낡은 지프차에 몸을 실었다.

 

 청소년과학센터는 한국과학문화재단이 본교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그리고 과학기술대 등 이공학 연구에 있어 명실공히 국내 최고임을 자부하는 6개 대학을 선정, 지원함으로써 시작된 사업이다. 청소년과학센터의 특명은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의 꿈'을 부활시키라는 것. 본교는 지난해 10월, 청소년과학센터 출범에 즈음하여 이동과학교실 트레일러 발대식을 갖고 특명을 완수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약 2억원의 비용을 들여 국내 최초로 제작된 이동과학교실 트레일러는 각종 실험장비와 폐기물 처리시스템을 보유했으며 최첨단 영상장치를 갖춘 '모바일 실험실'.

 

 "청소년과학센터의 주력 사업인 이동 트레일러 교실은 작년 10월 발대식을 갖고 불과 두 달 동안에만도 10여개교를 방문했습니다. 전국에서 60여개교가 신청을 해 올만큼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올해도 3월부터 접수를 받기 시작했는데 2주만에 80여개교가 신청하는 기록적인 반응을 거뒀습니다. 이동 트레일러 교실은 국내 최초의 시도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차원에서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는 노력은 많았지만 열의와 컨텐츠의 문제로 대부분 실패한 바 있어요. 그래서 지금 우리의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정부기관과 산하단체에서 성공 비결을 묻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지요."

 

   
 

 청소년 과학 교육에 관한 본교의 관심은 수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수는 1997년부터 시작된 '청소년 과학교실'과 '신나는 과학놀이 마당'을 청소년과학센터의 효시로 꼽는다. 이 외에도 '대한민국 청소년 발명아이디어·디자인 경진대회', '전국 과학동아리 경진대회' 등 청소년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한 본교의 노력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에 기인한 것일까? 지원사업에 대한 과학문화재단의 평가에 있어서도 최 교수는 본교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노라고 자신한다. 똑같은 지원을 해도 한양대는 몇 배의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사업 성공의 비결은 뭘까?

 

 "비결은 우리 연구원들의 가히 희생적인 열정에 있습니다. 아침 6시, 7시에 출발해서 지방 시연을 마치고 귀경하면 밤 11가 훌쩍 넘기도 합니다. 엄청난 노동 강도지요. 또한 일찍부터 전국의 중고 과학교사들로 구성된 '신나는 과학교실' 활동을 후원하면서 그간 이 곳의 선생님들이 개발해 놓은 무수한 컨텐츠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인재 육성을 위한 본교의 우수한 조직력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그 어떤 과학시연 행사도 우리만큼의 조직력과 전문성, 완성도를 갖지 못합니다. 타 기관이 몇 개월 걸려 준비할 것들을 우리는 하루만에 척척 준비해 내고 있거든요."

 

 '이문세의 사이언스파크' 배후에는 한양이 있다

 

   
 

 사실 이동 과학교실에 대한 아이디어는 독일의 사례를 제시하며 추진을 독려했던 김종량 총장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현재 이웃의 일본에만도 1백여개가 넘는 과학 트레일러팀이 있지만 국내에서는 번번히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따라서 본교의 이동 과학교실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호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동 과학교실은 입시 홍보에 있어서도 탁월한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게 모든 관계자들의 일관된 평이다.

 

 "이동 트레일러가 지방에 가면 현지는 거의 잔치 분위기에 가깝습니다. 지역의 유지들이 현수막을 들고 나온다고 말하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한번은 행사장에 50여명에 달하는 인근 학교의 과학교사들이 모두 모인 적도 있어요. 과거에 입시 홍보를 가면 '바쁘다', '번거롭다' 등을 이유로 현지 교사들이 손사래를 치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국면입니다. 트레일러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사뭇 치열합니다."

 

 이동 과학교실 외에도 청소년과학센터는 최근 특명 완수를 위한 또 하나의 기획을 진행 중이다. 서울방송의 과학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이문세의 사이언스 파크'의 제작 자문을 맡은 것. 현재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남형석 프로듀서는 과거 '호기심 천국'을 연출했던 경력이 있다. 최 교수는 최초의 공중파 과학 교양프로그램이었던 '호기심 천국'의 수준을 한 단계 격상시키려는 방송사측의 욕구와 청소년과학센터가 가지고 있는 양질의 컨텐츠들이 최고의 조합을 이루어냈다고 평가한다. 실제 최 교수는 몇 회마다 정기적으로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일요일 저녁, 프라임타임에 방송되는 이 프로그램의 말미에 기술자문으로 한양대학교라는 이름이 항상 나가고 있습니다. 공중파 방송의 대표적인 과학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수많은 청소년들이 '아, 이 프로그램의 자문을 맡는 곳이 한양대구나'하고 생각한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들의 머릿속에는 과학=한양이라는 등호가 쉽게 각인될 겁니다. 엄청난 홍보 효과가 아닙니까? 산업인재를 양성하던 공학의 메카가 청소년들의 뇌리에서 이제 첨단과학의 메카로 다시 부상하고 있다는 겁니다."

 

 '열심히'보다는 '재미있는' 공부가 효과적

 

 전국을 누비며 청소년들에게 '재미있는 과학', '체험하는 과학'을 선보이고 있는 최 교수의 원래 전공은 유기합성 분야다. 청소년과학센터장을 맡은 뒤로 개인적인 연구에 다소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고 고백하는 그이지만 미래의 과학 인재를 육성하는 일도 개인적인 연구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그다. 특히 형이상학적 공간을 떠도는 설명보다 과학은 직접 체험하고, 흥미를 느끼게 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최 교수는 연구의 질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가르치느냐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교수학습개발센터의 자문위원도 맡고 있는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연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강의입니다. SCI 논문 게재율은 갈수록 높아지는데 왜 기업들은 학생들의 수준이 자꾸만 떨어진다고 비판하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문제는 교수법에 있습니다. 외국의 한 사례를 들자면 물리학 교수가 힘의 분산을 설명하기 위해 못이 촘촘히 박힌 나무판 위에 직접 드러눕는 시연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나친 열정이 아니냐 반문할지 모르지만 '어떻게 가르치는가'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반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일반화학' 그리고 '생활화학 및 첨단과학 세계' 등 2개의 강의를 맡고 있는 최 교수는 실제로 자신의 모든 강의를 시연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다. 수강 인원은 물론 '만석'이다. 그는 이제 칠판과 분필로 지식을 전수하던 시대는 지났노라고 단언한다. 학생들이 실제 강의 내용에 빠져들게 하려면 전달하고자 하는 지식과 이론을 눈 앞에서 검증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재미있게' 공부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는 것은 그가 지닌 강의철학의 제 1명제다.

 

 학력 및 약력

   
 
 최정훈 교수는 1980년 본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서강대에서 유기화학으로 석사학위를, 1986년에는 KAIST에서 광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 KIST 연구원을 거쳐 1990년부터 본교 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화학회 편집위원, 총무실무이사, 환경과학회 기획이사를 역임했고 현재 KIST 겸임책임연구원, 청소년과학기술진흥센터장을 맡고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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