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대학교 박성찬 학생의 "글로벌 리더의 조건"
| 다음은 한양대학교 리더십센터가 주최한 2013 사랑의실천 전국 대학생 리더십 실천사례 공모전 대상을 수상한 한밭대학교 박성찬 학생의 '글로벌 리더의 조건'이라는 제목의 수상작 원문입니다. |
[진짜 글로벌 리더의 조건]
요즘 글로벌 리더는 ‘뜨거운 감자’입니다. 네이버에서 ‘글로벌 리더’란 단어로 검색해보면 무려 77,425건의 뉴스가 나옵니다. ‘글로벌 리더 인재양성 시동’, ‘차세대 글로벌 리더 양성 본격 나선다.’ 등 내용을 살펴보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글로벌 리더를 양성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엔 국가 정부, 기업, 연구소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렇게 온 나라 전체가 ‘글로벌 리더! 글로벌 리더!’하며 집중하고 있는데, 정작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을 말해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글로벌 리더의 조건 세 가지를 정리해봤습니다.
첫 번째, 많은 사람 앞에서 멋지게 연설할 수 있는 언변, 두 번째,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를 넘어 MIT, Standford, Harvard University의 학벌, 세 번째,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능통한 외국어입니다.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걸까요? 혹시 마음속으로 ‘맞아!’라고 하셨다면 아직 글로벌 리더에 대해 잘 모르고 계시는 겁니다.
글로벌 리더는 글로벌 환경에서 리더십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글로벌 리더는 자기 나라를 떠나 문화적 배경이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면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같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팀을 위해 일할 때 강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여 자발적으로 공헌할 수 있도록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짜 글로벌 리더의 조건 3가지를 준비했습니다.
글로벌 리더의 조건 : 도전정신
첫 번째, 도전정신입니다. 도전정신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故 정주영 회장입니다.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해봤어?’ 이렇듯 글로벌 리더는 알지 못하는 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설령 주변에서 모두 안 된다고 말할지라도 말이죠.
잠시 제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참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소심했는지 부끄러워서 선생님께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참다 참다 결국 바지에 오줌을 싸던 오줌싸개였습니다. 그것이 무려 초등학교 6학년까지 이어졌습니다. 글라이더 대회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싸움 잘하는 친구에게 맞아도 반항 한 번 못해봤습니다. 좋아했던 여자에게 고백 한 번 못해보았습니다. 가슴 속에서 품은 여러 가지 꿈들은 도전 한번 못해본 채 머릿속에서 잊혔습니다. 그 당시 도전이 두려웠던 이유는 바로 실패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특히 도전한 후 실패했을 때 저를 바라보며 ‘거봐, 안 될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하는 목소리와 시선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했고, 저는 의지적으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전 정신을 가지고 세계를 누볐고, 지금까지 도전했던 모험들을 세계지도에 표시하니 8개국(미국, 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네팔, 중국)이 보입니다. 장학생으로서, 컴퓨터 선생님으로서, 때론 달랑 배낭 하나 멘 여행자로서 32개월간 8개국을 경험했습니다. 출발하는 순간부터 도착하는 순간까지 매 순간순간이 저에게는 새로운 시도였고 도전이었습니다. 이렇게 자꾸 도전을 하다 보니 얻게 된 효과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전한 만큼 실패도 늘어나지만, 실패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며 성장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도전하는 것, 그 자체를 즐기게 됩니다.
글로벌 리더의 조건 : 끈기
두 번째, 끈기입니다. 끈기는 쉽게 단념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버티어 나가는 기운을 뜻하는 말입니다. 끈기를 생각할 때 저는 59살에 문과에 급제했던 백곡 김득신이 떠오릅니다. 둔재로 태어났지만 끝없는 노력으로 당대의 시인이자 문장가로 인정받은 김득신은 <사기>의 ‘백이전’을 무려 11만 3000번이나 읽었지만 지나가다 다른 사람이 낭독하던 ‘백이전’을 듣고서 어디서 많이 읽은 글귀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합니다. ‘재주가 다른 이에게 미치지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마라. 나처럼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지만 나는 결국에는 이루었다. 모든 것은 힘쓰고 노력하는 데 달려 있다.’ 정말 끈질긴 끈기로 이뤄낸 성공입니다.
저는 3년 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국제협력요원으로 파라과이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간단한 생존 스페인어밖에 하지 못한 채로 2년 동안 일할 학교에 도착했을 때, 컴퓨터 교육보다 더 급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담벼락’이었습니다. 담벼락이 허물어지고 있어 학교의 비싼 기자재들을 수시로 도난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써 초짜 봉사단원 박성찬은 ‘컴퓨터’와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건축’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하기 위해 잘하지 못했던 스페인어로 벽돌 한 장 한 장의 가격을 물어보며 다녔고, 50도가 웃도는 무더위 속에서도 건축전문가를 만나며 열심히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인 건축은 결국 큰 스트레스가 되었습니다. 모든 생활에서 두려움을 갖게 되었고, 낮은 자존감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다가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KOICA 사무소에 전화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무소에 전화하기 전, 아버지께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상황을 다 들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성찬아 네가 이 일을 잘 견디고 넘어가야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단다. 그리고 담벼락 쌓는 거 아무것도 아니다. 넌 할 수 있다.” 저를 향한 아버지의 믿음과 충고는 큰 힘이 되었고, 마음을 다잡은 저는 다시 건축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장장 1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011년 9월 30일, 파라과이의 부통령, 대한민국 대사, 주지사, MBC 코이카의 꿈 촬영팀 등 많은 사람의 축하 속에서 준공식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한 1년의 시간 동안은 건축물만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능숙한 스페인어와 현지어(Guarani), 리더십, 프로젝트 관리법 등 현지인들과 함께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필요한 능력을 갖춘 봉사단원이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현지에 살면서 제가 중요하다고 여겼던 가치들을 실현해 나갔습니다.
까바냐스 지역 장학회(Beca estudiantil de Cabanas)를 설립하여 꿈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일을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인재강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파라과이에서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파라과이의 지속적인 국가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낮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이유는 부정부패, 빈부격차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 독재정치기간 동안 추락한 공교육으로 ‘인재빈국’이 되었기 때문이란 이야기를 많은 곳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통해 10년 후, 한 나라의 미래는 현재 청소년을 보면 알 수 있는 말을 믿게 되었고, 미래의 주역이 바로 교육 받는 학생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만났을 때, 그 아이들이 저를 꿈꾸게 하였습니다.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제가 이뤄야 할 목표가 되었습니다. 교육적 복지 제도(장학금)가 많지 않은 파라과이에서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너희는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이 바로 장학금이었습니다. 대학 진학 시 지원할 수 있는 국가적 장학금인 ‘ITAIPU'(유일한 현지장학제도) 장학금 체제를 모방하여 현지 초/중등학교에서 1차 서류접수, 2차 시험(스페인어, 수학), 3차 면접으로 구성된 장학 제도를 만들어 학생들이 장학금 지원에 두려움을 없애고, 경험할 수 있도록 진행했습니다. 첫 해엔 장학 사업을 위해 봉사단원 동기들과 함께 진행한 김치판매의 수익금, 그리고 개인 후원금과 한국의 ‘KOVA’ 장학금 후원을 받았고, 지원한 13명 중 4명의 학생이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장학증서와 장학금($50; 2년 치 학비)을 받게 되었습니다.
장학금이 수여되는 날, 장학금 전달식이 끝나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저도 뿌듯한 마음으로 식장을 나가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정문 앞에서 계속해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계속 절 보더니 곧장 다가와 악수를 청했습니다. "Gracias(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전달식이 잘 끝나 감사하다는 줄로만 생각하고 저 또한 잘 끝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고 지나가려는데 꽉 잡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곤 자세히 그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두 눈에 맺힌 눈물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오늘 장학금 받은 클라우디아(Claudia)의 아버지입니다. 고맙습니다.” 그 순간 제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클라우디아의 어머니는 1년 전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리움이 컸던 탓인지 말도 잘 안 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했던 클라우디아였습니다. 처음 근무지에 부임했을 때도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웃음이 없고 반응도 없는 모습에 더욱 관심이 갔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버지와 언니, 오빠 4명이 함께 살았고, 일자리가 많지 않아 최저임금인 아버지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등굣길에서 클라우디아를 만났습니다. 같이 등교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변을 살펴보더니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비장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습니다. 아순시온국립대학교(한국의 서울대)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게 사실이냐는 것이었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똑똑한 클라우디아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하면 당연히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더니 클라우디아가 그게 사실이냐고 계속해서 되물었습니다. 전 역으로 왜 안 되냐고 물어보자 주변에 있던 그 누구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해준 사람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클라우디아 너는 할 수 있다. 지금부터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그리고 2개월 뒤 당당히 1등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장학금과 상장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클라우디아를 통해 이루고 싶은 비전과 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는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뒷받침해주는 장학시스템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큰 경험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다음 해에도 장학시스템을 진행하였고, 조금은 다른 방법의 장학금 조달을 모색했습니다.
저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부 받는 형식이 아닌 지역 사람들이 함께하여 이 장학회가 지역 문화로 자리매김하길 원했습니다. 그 다른 방법은 쓰지 않는 물건(옷, 신발, 모자 등)을 함께 모아서 장학바자회를 열고, 그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조달하는 것이었습니다. 까바냐스 전 지역 4개의 학교의 교장 선생님들과 지역 주민들, 그리고 학생들의 도움으로 바자회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장학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각 학교의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회장님을 초대해 장학회를 위한 모임을 만들었고, 각 학교에서 동시에 장학전형을 진행하여 학교당 1명씩 총 4명의 장학생이 선발되어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수여하였습니다. 매년 이렇게 바자회를 주최해 기금을 조성하여 장학회를 진행하는 것에 모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이 장학회가 하나의 지역 문화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역 컴퓨터를 수리하는 컴퓨터 수리 봉사단(Reparacion de Computacion, Republica de Corea)을 구성하여 활동하였습니다. 파라과이의 정보통신기술(ICT) 보급률은 2010년 기준으로 전국 6%였지만 제가 있었던 2011, 2012년은 컴퓨터 보급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였습니다. 컴퓨터가 처음 보급됐던 90년대 말 우리나라 또한 그랬듯 파라과이에서도 컴퓨터에 대한 기본지식이 없는 상황에서의 사용은 많은 고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더욱이 인터넷으로 퍼지는 바이러스와 불안한 전력은 컴퓨터를 망가뜨리는 주범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수도나 시내에서 구매한 컴퓨터에 고장이 생기면 다시 무거운 컴퓨터를 들고 먼 거리에서 수리를 받아야했습니다. 수리하는 업체들은 많았지만, 기다리는 많은 사람과 정해지지 않은 수리비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비싼 수리비와 지연되는 시간, 먼 거리로 인해 고장 난 컴퓨터가 방치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간단한 수리만 할 수 있어도 현재 발생하는 고장의 90%는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무료로 수리를 해주는 지역봉사단을 계획했습니다.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책과 인터넷을 통해 직접 공부하고 실습했고, 2011년 11월에 컴퓨터수리 봉사단원을 모집, 창단하여 컴퓨터의 기본 지식과 하드웨어적 고장, 소프트웨어적 고장 등 여러 가지 수리에 필요한 내용을 교육하였습니다. 2012년 5월부터는 실질적인 수리 봉사를 시작하여 가장 먼저 고장이 나서 창고에 방치되었던 학교 컴퓨터를 여러 대 수리하며 경험을 쌓았고, 그 후 지역주민의 컴퓨터 또한 수리를 진행하였습니다. 봉사단원들은 컴퓨터에 대해 자신감을 얻게 되어 수리하는 것을 넘어 IT전문가로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지역주민들과 학교관계자들은 소유한 컴퓨터에 고장이 발생할 때 무료로 수리를 받을 수 있게 되어 봉사단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현지에 사는 동안 필요하다고 느꼈던 일에 대해 도전정신을 발휘해 뛰어들었지만 결국 일을 완성 짓고 마무리하는 것은 ‘끈기’였습니다. 모든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끈기’를 가지고 임했기에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리더의 조건 : 비전
세 번째, 비전입니다. 비전은 지금까지 나온 조건들 중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도전정신과 끈기를 가질 수 있는 근원이 바로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비전은 마치 북극성과 같습니다.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밤하늘에 밝게 떠 있는 북극성을 볼 때면 제가 가야 할 북쪽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 2009년 22살의 박성찬이 사랑을 기반으로 세운 원대한 비전을 적은 작은 쪽지가 있습니다. 비전이 이 모든 여정의 시작이었습니다. 말은 힘이 있고, 쓰는 것은 더 큰 힘이 있다고 했던가요? 저는 그때부터 쪽지에 적었던 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정보격차를 줄이는 국제개발전문가’로 살아가게 됩니다. 제 비전을 이룰 수 있었던 파라과이에서 2년 3개월의 봉사활동을 마지막으로 ‘희망을 선물합니다.(Regalando Esperanza)’라는 주제의 강연회를 열었습니다. 전 문화·교육부 장관, NGO 대표,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제가 청소년 시절에 가졌던 꿈을 이야기하며 청소년들에게 꿈의 소중함을 알렸고, 200명의 학생이 참여하였습니다.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선착순 10명에게 무대 위로 올라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유명한 축구선수, 대학교수, 간호사 등 여러 가지 멋진 꿈들이 새싹을 피우고 있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 시선을 한동안 머무르게 했던 빅토르(Victor)가 서 있었습니다. 빅토르(Victor)는 친구들은 물론 지도교사였던 저까지 힘들게 했던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강연회 전날에도 혼을 냈던 기억이 있어서 이곳까지 올라와서 무슨 장난을 칠지 몰라 긴장된 상태로 물어봤습니다.
“Cual es tu sueno?(너의 꿈은 무엇이니?)”
“Voy a ser un voluntario extranjero de informatica que pueda dar vision y esperanza como vos(저는 성찬처럼 해외에 나가서 컴퓨터를 통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 순간 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붙잡았던 제 비전이 언어와 다른 문화 그리고 국가의 벽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흘러들어 가 그의 새로운 비전이 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슴 떨리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박성찬에게 글로벌 리더란?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에 답변 드리고 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박성찬에게 글로벌 리더란?’
첫 번째, 새빨간 열정의 빛.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
두 번째, 꾸준한 초록의 빛. 끈기를 가진 사람입니다.
세 번째, 청춘의 새파란 빛. 비전을 가진 사람입니다.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을 합치면 무슨 색이 될까요? 맞습니다. 흰색이 됩니다.
글로벌 리더란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그걸 가슴에 품어 내 흰색의 배경을 가진 사람입니다. 혼자서도 아름다움을 발휘할 수 있지만 다른 색의 바탕이 되어 또 다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색. 모든 색깔의 빛이 합쳐져 흰색을 이루듯이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빛과 같은 리더’입니다. 다른 문화와 환경, 그리고 인종 속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 진정한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가 여러분들에게 작은 울림이 되어 도전정신과 끈기, 비전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는 흰색의 글로벌 리더를 꿈꾸도록 만들었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