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교단에 던지는 푸른 메시지

 세계에서 '가방끈'이 가장 긴 나라.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87.5퍼센트. 국민 10사람 중 9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높은 '학구열'이다. 이와 함께 국내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적게는 30조원에서 많게는 5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한 일간지의 최근 보도도 주목을 끈다.

 

 이처럼 높은 교육열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높은 사교육비, 실종된 전인교육과 청년 실업의 문제는 물론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있어서 '교육'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이 같은 교육문제에 대한 특단의 돌파구는 없을까? 높은 교육열을 국가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암기식', '주입식' 교육은 이제 그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지요. 앞으로 5년 이내에 대부분의 산업이 중국을 비롯한 후발 산업국가에 의해 추월 당할 것이라는 현직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각해집니다. 늦기 전에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캠퍼스 사범대학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교육정책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다. 교육부가 입안하고 시행하는 교육정책에 대한 연구와 자문은 그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지난 문민정부 시절, 정 교수는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또한 각종 언론을 통해 정부의 교육정책과 진행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는 이른바 '활동파' 교육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런 정 교수가 갑자기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전자,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위주의 2차 생산산업에 주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밀려오는 후발 국가들을 상대로 2차 산업 위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바탕으로 지식, 서비스 산업 위주로 우리의 체질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교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숨어 있습니다."


 정 교수는 '교육'이 돌파구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다양한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로 무장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정책이야말로 국가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자 무기라는 것. 정 교수는 획일화된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정부에서 입안하고, 의지를 가지고 이를 추진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 효과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읽고 쓰는 것, 성실하다는 것만으로는 치열한 국가 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육은 인재를 기르는 일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참신한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인재들을 길러내는 교육정책이 절실한 때입니다."


 신지식인 육성의 가능성 '자립형 사립고'

 

 정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현재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즉 수출을 통한 국가 발전은 한계에 달했으며 이제는 국가 경쟁력 제고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 그 방법의 하나로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인재 양성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푸는 것보다 사물을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인재 양성 풀을 만들어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단순한 컵 하나를 만들어 내는데도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와 다양한 사고 과정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어서 똑같은 생각과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 교수는 '자립형 사립고' 설립으로 인한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우려하는 일부의 목소리에 대해 '현재의 교육정책 하에서도 같은 문제는 늘 지속되어 왔다'고 반론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만 해도 이른바 명문대학 진학률에 있어서 강남과 강북이 네 배 이상 차이가 나는 현실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으로서 생기는 불균형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는 주장이다.

 

 "물론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이 교육의 불균형 문제, 계층 간의 위화감 조성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도의 일면만 보는 것입니다. 영국의 이튼스쿨처럼 자립형 사립고의 입학 인원 중 약 30퍼센트의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도록 한다면 가난한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입학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 방법이 지금과 같이 누가 얼마나 많이 외우고 문제를 빠르게 푸느냐에 집중하는 시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전형 방법을 도입해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폐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게' 하라

 

 인터뷰 도중 정 교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얼마전 모 대기업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간부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류 기업들은 핵심 분야의 최고 자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안 쓴다는 것. 이유는 국내 대학 졸업자들이 실력과 '직업 윤리'라는 면에 있어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이라는 곳은 입학한 사람의 약 40퍼센트가 중도에 탈락할 정도로 치열합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밀려납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대학은 들어가기까지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들어가면 졸업은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사람들과 경쟁이 되질 않습니다. 이제 모든 기업은 세계를 향해 뛰고 있고 이에 맞는 세계적 마인드와 준비를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이하게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지요."

 

 정 교수는 우리 대학생들이 보다 치열하게 학업에 전념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지금처럼 쉽게 학점을 따고 졸업할 수 있는 풍토를 과감히 떨쳐내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리더, 지식·정보 기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오늘을 이끌어갈 인재 배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모두가 승리하는 교육을 위하여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무어라 해도 바로 학생들이다. 정 교수 역시,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상처를 받아온 학생들은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고백한다.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까닭 역시 잘못된 교육 구조에 있다는 것. 이처럼 잘못된 교육 구조 하에서 성장한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이 땅의 교육자들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라 역설하는 그다.

 

 "많은 학생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과 비교했을 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은 우수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검증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간의 잘못된 교육 구조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패배자라는 의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상처입고 자책감에 젖어있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당당한 승리자로서의 역할을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땅의 '교육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력 및 약력

   
 
 정진곤 교수는 1976년 서울대에서 문학사를, 1978년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1986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정책과 교육철학을 주 연구 분야로 두고 있는 정 교수는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에서 각각 전문위원과 상임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학생생활상담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교육학회, 교육철학연구회, 미국교육철학회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국내 46편, 국외 1편이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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