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역할이든 연극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아
두 가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가지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은 가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소아혈액 종약학의 권위자이면서 연극계의 원로로 인정받는 이 항 교수(의대 소아과)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순수함으로 가득한 미소를 안겨줬다. 연극 "물질적 남자"의 공연을 하루 앞두고 밤늦도록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 연극에 대한 인연이 오래 된 것으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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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국립 극장 등에서 많은 연극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극은 나에게 예술이기보다는 하나의 단순한 경험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경험이 반복될수록 나는 그것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에 입학했고, 연극반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엑스트라로 첫 무대에 오르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1년에 한 번 정도 공연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비중 있는 역할을 맞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에 천재적이었던 선배가 사고로 죽고, 그 가족들이 그를 기리는 상(건기상)을 만들면서 연기 부문의 금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 후부터는 주역을 많이 했다. 의대에 진학한 후, 본과 1학년 때 선배들과 연극반을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 나갔다.
-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언제부터인가?
1984년에 의극회(의사연극회)를 결성하고 첫 작품으로 'Old Boys'라는 작품을 공연한다. 나의 연극 인생은 40대였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1991년에 고등학교 연극반 선후배들과 함께 '화동연우회'를 결성하면서 좀 더 본격적인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이 모임에서는 주로 사회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시사성 있는 작품을 많이 공연했다. 이 중 제이슨 밀러의 작품인 챔피언의 시절'은 미국 사회의 부패를 그린 작품으로 나는 이 연극에서 총 제작을 맡기도 했다. 저변 확대를 위해 가족 연극을 하기도 했고, 어쨌든 주로 기획과 연출을 많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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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작품 '물질적 남자'와 배역에 대해 소개해 달라.
'물질적 남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시인 황지우 선생의 내용에 연출가인 윤정섭 교수의 스타일이 더해져 깊이가 있으면서도 환타지적인 요소가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내가 맞은 역할은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백화점 지하에 매몰된 남자를 하늘로 이끄는 '노인'이다. 처음에는 내 역할에 젊은 배우를 기용해서 공연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작가와 연출가가 나에게 꼭 맞는 역이 있다는 말을 했다. 전문배우가 아니라는 두려움에 망설이다가 연극의 성공을 비는 고사에 갔었는데, 그 제문에 내 이름이 이미 올라가 있더라. 그리고 연습을 시작했다.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는 전라도 사투리의 자유로운 구사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 이번 작품에 굳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이번 연극을 선택한 이유는 작가와 연출가의 칭찬 섞인 설득도 있었지만, 그 내용이 특히 끌렸다. 삼풍백화점 원혼들에 관한 이야기가 내가 지금껏 고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나보낸 어린이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의미하는 '붕괴'가 사회 전반, 의료 제도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공연은 나의 환자였던 아이들과 붕괴 사고로 죽은 원혼들과, 관객을 비롯한 살아있는 사람들 즉 모두를 위한 제사인 것이다. 나는 이번 역할을 의사와 동일시한다. 매몰된 남자를 깨닫게 하고 하늘로 이끄는 동양철학이 반영된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작품성 높은 작품에 참여해 정말 기쁘다.
- 의사이면서 동시에 연극인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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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연극은 취미이다. 나는 연극이 사랑을 받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반면 의사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의사로써의 나에게는 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연극인 것이다. 나는 연극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연극 때문에 내 직업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나는 전문 연극인은 아니다. 나는 매니아적인 면이 강한 프로 관객이다. 고대의 제사장이 제사와 치유와 행위를 동시에 수행했듯 나는 의술과 연극을 떨어져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인 내게는 연극이 꼭 필요하다. 내 환자들은 소아암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이다. 과거에는 진단을 받은 아이들 중, 절반 정도가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중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내 환자들을 많이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죽는 아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마치 내 앞에서 죽는 아이들의 혼이 모두 나를 지나가는 것 같다. 그것이 이번 연극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현재는 의사로서의 마무리에 집중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연극인으로서의 생활을 고민 중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문화 활동이 매우 중요하므로 좋은 연극이 많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떠한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현재 다양한 연극에서 자문 등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은퇴 후에 아동극에 관여하게 될 듯 하다. 기회만 된다면 연극 어느 분야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 연극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아.'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