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연구소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Washington)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중세에서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자국의 평화를 위해 다른 국가와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전쟁에 대비하는 국가안보보다 개인의 자아실현에 초점을 맞춘 '인간안보'에 대한 연구가 행해지기 시작했다. 평화의 패러다임이 달라진 것. 평화연구소는 이런 시대의 흐름에 응답했다. 지난 4월 4일, 평화연구소 개소식과 함께 "평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국제협력과 문화공존"을 주제로 학술회의가 열렸다.

 

'인간안보'의 대두와 평화연구소


   
 

현실주의 정치학자들은 국가가 행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국제체제는 국가들을 통솔하는 특정한 정부가 없는 '무정부 상태'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혼란스러운 체제 안에서 안보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행위자라고 여겼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욕구나 이해관계는 뒤로 밀렸다. 냉전이 끝날 때까지 개인은 그저 국가에 속한 일부일 뿐이었다. 그러나 탈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개인의 자유가 점차 중요한 의제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국가 안보라는 거대한 생존과제에 억압돼 있던 '개인'들이 움트기 시작했다.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시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소극적 평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권리신장을 목표로 하는 인간안보가 대두됐다.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은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국가안보의 소극적 평화를 넘어 인간안보를 통한 적극적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했다. 평화연구소 소장 최진우 교수(사회대·정외)는 이 인간안보를 "인간의 가능성을 실현할 때 필요한 모든 장애요소가 제거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최 소장은 "빈곤, 차별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 실현을 저해하는 요소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운 상태가 진정한 평화"라며 "전쟁이 평화의 반대 개념인 시대는 지났다"고 덧붙였다. 이어 " 적극적 인간안보를 달성하는 평화를 연구하는 것이 연구소의 설립 취지"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인간안보


북한의 대남도발이 잦아지는 요즘, 과연 인간안보를 국가안보보다 우선할 수 있을까. 최 소장은 국가안보와 인간안보가 절대 제로섬(zero-sum)이 아님을 강조했다. "국가안보가 선결되지 않은 상태의 인간안보는 의미가 없습니다. 국가안보도 중요한 연구주제죠. 하지만 거기서 그칠 것이 아니라 한 차원 더 나아간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 소장은 기존의 국가안보가 개인의 평화 수호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은 국가 밖이 아니라 국가 안에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여성들이 길가다가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고 칩시다. 국가 안보는 튼튼할지 몰라도 여성 개인차원에서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 받지 못한 거죠. 개인의 안보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결국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인간안보가 실현되어야 하는 겁니다."


국제사회 갈등의 '평화적' 해결책을 찾아서


개소 기념 세미나에 앞서 '국제개발협력과 평화'를 주제로 제 1회의 사회를 맡은 연세대학교 고상두 교수는 "빈곤이 국제갈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꼽았다. 최 소장 역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국제개발협력으로 빈곤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개발협력도 결국 개도국 사람들이 보다 안정된, 풍요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한 국제사회 노력의 일환입니다. 그런 삶을 위해서는 평화가 전제돼야 해요. 갈등이 난무하고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에서 평화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죠. 따라서 국제 개발협력과 평화의 문제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최 교수는 최근 한국연구재단에서 발주한 대규모 프로젝트 '경계 짓기와 경계 넘기의 문화 거버넌스'에서 '문화적 요인으로 인한 국가간, 종족간, 집단간 갈등'을 연구하고 있다. 갈등의 양상, 유형, 전개과정, 그리고 해소방안 탐색이 프로젝트의 주요내용이다. 문화 갈등 해소가 현대의 평화 문제와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이 과정에서 문화를 통한 공공외교나 한류 연구 등 실증적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평화연구소의 오늘


최진우 교수가 소장으로 위촉돼 출범하는 평화연구소. 타 대학 교수들이 공동연구원을 맡고 있고, 우리대학에도 세 명의 평화연구소 소속 전담 연구교수가 있다. 이를 주축으로 교내 교수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했다. 학내 다른 연구소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인데다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협력은 필수다. 최 교수는 "정치학적 접근만으로는 평화연구의 여러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록 지금은 정치학 위주로 구성돼 있지만 사회학이나 여성학 학자도 필요하고, 빈곤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경제학을 전공한 학자의 참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휴전 상황도 얽혀 있어 평화 연구가 절실합니다. 이런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데 평화연구소가 힘을 보태야죠."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여한 동아대학교 홍성민 교수는 "정치학의 영역에서 문화를 다루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제 3 회의에서는 대중문화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오갔다. 문화제국주의는 인문학에서 오랫동안 다뤄왔지만 정치적 접근은 시도되지 않았다. 홍 교수는 "평화연구소를 통해 학문 통섭의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기존의 학문 영역을 철저히 구분하던 사조에서 탈피해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적극적인 참여만이 지적 성숙의 길이다

평화연구소는 학생들에게도 열려있다. 세미나와 학술회의, 그리고 콜로퀴움은 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콜로퀴움은 평화연구소 출범의 토대인 한양대 SSK 문화거버넌스 연구단에서 이미 23차례 진행된 학술 토론회로 이번에 평화연구소로 이관됐다. "오늘 같은 세미나를 마련하면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길 바랍니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듣는 내용은 교과서 중심의 설명입니다.. 반면 학술행사에서는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들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심층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해 지식을 얻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논문을 쓰는 방법이나 문제의식을 글로 전개하는 방법 등은 학자들의 발표를 보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지적 성숙의 기회를 앞으로 열릴 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얻어가길 바랍니다."

 

 

 

김선희 학생기자 pdg1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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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웅 부편집장 projw@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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