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코 푸리니, 베르나르도 세키 교수 방한 특강
지난 22일, 건축대학원 및 서울캠퍼스 건축학부는 세계적인 건축 석학으로 잘 알려진 프랑코 푸리니(발레 줄리아 건축대) 교수와 베르나르도 세키(베니스 건축대) 교수를 초청해 특별 강연을 가졌다. 오는 2004년 건축대학으로 독립 출범하는 건축학부는 이번 강좌를 통해 한양 건축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다. '이탈리아 건축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강연에 임한 두 명의 세계적인 석학이 한양의 건축학도들에게 남긴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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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석학이 말하는 도시와 서울
과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에 대해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 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 정의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과거를 통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진보적이고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 이를 건축에 적용시킨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의 건축에 대해서 생각하기 이전에 과거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푸리니 교수가 학생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바로 '과거에 대한 철저한 이해의 선행'이었다.
푸리니 교수는 '도시는 그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하며 "고대 로마시대의 문화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로마는 움직이지 않는 시간, 곧 정지한 시간을 상징한다. 반면 런던은 지속적인 변형을 뜻한다. 이렇게 하나의 도시마다 그 각각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도시의 이미지가 그 곳에 살고 있는 시민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리듬감 통한 도시의 이미지 발산
푸리니 교수는 "건축가에게 필연적으로 따라 다니는 고뇌는 현실과 환상의 충돌에서 온다"고 말했다. 이때 건축가는 물리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해야 하고, 한편으로는 현대 도시의 불확정성에 대한 고민을 건축가가 아니라 그 도시를 사는 한 사람의 시민의 마음으로 임해야한다는 것도 푸리니 교수의 건축 철학. 그렇다면 건축가가 고민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도시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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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리니 교수는 이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음악의 리듬을 지적했다. 중세 로마는 3.5미터의 단위 길이가 반복되는 리듬감으로 도시가 형성됐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도 8.5미터를 기준으로 집에는 하나의 문과 두 개의 창문이 들어가는 일정한 규칙을 통해 설계됐다. 도시는 이처럼 규칙을 가진 일정한 리듬감을 통해 고유한 이미지를 지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강연에서 푸리니 교수는 과거 자신이 수행했던 프로젝트의 사례들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푸리니 교수가 대학 시절에 완성했던 작품들을 목격하며 감탄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덕중(공대·건축2) 군은 "저런 고민을 대학 때부터 했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오늘 강연회에 참석하고 나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푸리니 교수는 자신이 수행했던 프로젝트들을 통해 과거 그가 설계한 도시에서 묻어나는 고대의 이미지들을 명확히 제시했다. 역사 속의 도시가 지니고 있었던 흔적을 새롭게 설계하는 도시에 다시 부활시키려 했던 것. '과거의 흔적'이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한다는 것은 강연회를 통해 그가 소개한 건축철학의 일면이었다.
도시 과밀화와 집중화는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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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계속된 베르나르도 세키 교수의 강연은 그가 4일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서울에서 받은 느낌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가 생각하는 도시는 '파편과 확산의 징후'들이다. 이는 세키 교수가 유럽의 많은 사례 연구를 통해 획득한 도시의 정의다. 여기서 '파편'이란 '큰 도시 안에 있는 작은 도시가 파괴되고, 그 자리에 다른 도시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기존의 도시가 지니고 있던 연속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경계하는 그의 시각을 여실히 입증하는 좋은 예이다. 아울러 세키 교수는 도시 안에 위치한 건물들이 연속적으로 배치된 연속성을 '확산' 개념을 통해 설명했다.
그는 "파편 현상은 도시의 크기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서울에도 이 같은 현상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고 "서울에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 주도로와 좁은 길의 만남·충돌은 참으로 흥미로운 현상이었다"라고 서울에 대한 인상을 묘사했다. 계속된 강연에서 세키 교수는 "도시는 연속성과 중심성을 가져야 한다"며 "이것을 해결하는 것이 건축가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역설했다.
세키 교수는 '지나치게 집중화, 과밀화가 진행된 결코 좋은 도시가 될 수 없다'는 자신의 견해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에 따르면 동양의 대표적인 도시들로 꼽히는 싱가포르와 홍콩은 결코 좋은 도시가 되지 못한다. 세키 교수는 "과밀화된 도시는 공간을 소유하는 개인에게는 편안함을 줄 수 있으나, 그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대중이나 시민들에게는 결코 안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서울이란 어떤 도시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강연을 마쳤다.
해외 석학과의 만남, 화두를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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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 참석했던 건축학부의 학생들 대부분은 해외 석학의 깊은 식견과 철학이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고 입을 모은다. 신승호(공대·건축4) 군은 "파편과 확산의 징후들이라는 독특한 시선과 깊이로 서울을 바라보는 세키 교수의 독특한 접근법은 졸업을 앞둔 나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져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5시간의 긴 강연이었지만 조금도 한눈을 팔지 못할 만큼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라고 소감을 피력했다.
건축대학원장 박용환(공대·건축) 교수는 이날 강연에 앞서 "건축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하여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강좌를 드디어 개최하게 됐다"라고 석학 초빙의 배경을 밝히고 "본교 건축학부가 내년부터 건축대학으로 새롭게 바뀌는 만큼 이 같은 강좌가 건축학부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특강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한편 지난 19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김종량 총장과 주한 이탈리아 대사, 박용환 건축대학원장 등을 비롯한 국내 주요 건축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실무자들을 위한 건축 강연회'가 별도로 진행됐다. 서울캠퍼스 건축학부는 향후 한 학기에 한 번씩 이 같은 초청 특강을 계속해서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학력 및 약력 | ||||||||||||
프랑코 푸리니 교수
1941년 이탈리아 리리섬에서 태어난 프랑코 푸리니 교수는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베니스 건축대학의 교수를 역임했다. 1983년 이탈리아 디자인협회 은상, 1984년 예술평론가협회상, 1988년 레오네 디 피에트라 인터내셔널상 그리고 1991년과 1992년 IN/Arch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다. 현재 로마 라 사피엔자 소속 발레 줄리아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베르나르도 세키 교수
1960년 지오바니 무찌오 교수 지도로 밀라노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1960년부터 1966년까지 밀라노 지역 꼬뮌간 협력계획 과학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66년부터 1984년까지 안꼬나대 경제학부 지역경제 교수, 베니스 건축대학교 지역경제 교수, 밀라노 대학 건축학부에서 도시학 교수 및 도시학과 학장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 베니스 건축대학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 ||||||||||||
자료제공 : 건축대학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