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후 다섯 번째, 지역 주민 함께 하는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해
개관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캠퍼스 문화의 심장으로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박물관에서 가을을 맞아 문화유적답사회를 실시했다. 지난 2001년 봄에 시작해 올해 가을로 다섯 번째를 맞이하고 있는 이번 답사는 본교 학생, 교수, 직원뿐 아니라 성동구 주민까지 참여해 지역 문화 발전에 공헌하는 대학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다는 호평을 받아오고 있다. 위클리한양에서는 지난 2일 경기도 수원시 일대와 평택에서 전개된 문화 유적 답사를 동행 취재했다. - 편집자주
![]() | ||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도시의 가을을 뒤로 하고 답사단 버스에 몸을 실었다. 교과서와 달력에 인쇄된 사진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수원성, 정조의 효성이 흠뻑 배여있다는 화성행궁과 용주사 그리고 5천년의 역사가 간직된 청동기 유적 발굴 현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묘한 긴장감과 설렘에 일요일 아침 꿀맛 같은 늦잠의 유혹을 물리친 것이 스스로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답사단이 처음 찾은 곳은 우리나라 성곽문화의 꽃이라고 불리는 수원성. 한국식 성곽의 정수이자 걸작이라는 칭송에 걸맞게 매끈하게 뻗은 성벽 사이사이에 세워진 각종 성문과 포대가 푸른 가을 하늘과 멋지게 어우러져 있었다. 수원성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은 정조와 사도세자이다. 다산 정약용이 거중기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유명한 이 성은 정조가 극심한 당파싸움에 시달리다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굶어 죽었다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근처 화산(火山)으로 옮겨가며 만든 성이다. 성 구축과 동시에 민가를 집단 이동시켜 신도시 건설을 추진한 것이 오늘의 수원을 있게 한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최초의 벽돌양식 성곽, 근대적 계획도시, 거중기를 이용한 과학적 건축이라는 인솔자의 말에 참가자들은 잇따른 감탄사를 연발했다. 수원성이 정조가 약한 왕권을 추스르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있으나 '오늘 여행의 테마는 효행(孝行)이다'라고 귀띔하는 배기동(국제문화대·문화인류) 박물관장의 설명에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를 기리는 정조의 지극한 효성을 되새기며 화성행궁(華城行宮)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 ||
정조의 효심을 가장 집약적으로 음미해 볼 수 있는 화성행궁은 본교 박물관과 수원대 박물관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펼친 곳이다. 사도세자의 능을 현재의 융릉으로 이장한 이후 정조대왕은 수원을 자주 찾게 되었는데, 그때 머물렀던 곳이 바로 화성행궁이다. 임금의 행차이므로 수행원이 1만 2천여명에 달했다하니 그때의 상황을 머릿 속에 그려보며 찾은 행궁은 정겨운 국악소리와 울긋불긋한 단풍이 흠뻑 배어 있었다. 이 곳에는 한많은 궁중살이를 회고록으로 남긴 한중록을 집필했던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그대로 재현해 놓기도 했다. 유치원생 딸 아이의 고사리손을 잡고 답사에 참여한 한 아버지의 애정어린 설명을 엿들으며 잠시 혜경궁 홍씨의 파란만장한 삶을 되새겨 보았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사도세자의 능인 융릉과 용주사. 왕릉이야 기존에도 보아왔던 터라 융릉에 대해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용주사의 독특한 배치는 일행을 놀라게 했다. 은행나무가 곱게 물든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절마다 으레히 있어야 할 사천왕문 자리에 궁궐의 대문처럼 삼문각이라는 문이 높이 솟아 있고 그 안에는 관아나 궁궐처럼 생긴 천보루라는 누각이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다. 억불정책을 썼던 왕조와 국왕이 직접 관여한 사찰이라는 생각에 묘한 조화를 느끼며 정조가 직접 간행했다는 부모은경중경비를 둘러보고 마지막 목적지인 평택 현곡리 청동기 유적지로 향했다.
![]() | ||
3천 5백년 전, 한반도에는 정말 사람이 살았을까? 그렇다면 어떤 집을 짓고 무엇으로 먹거리를 구하고 시신은 어떻게 떠나 보냈을까? 이러한 궁금증에 이끌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넓게 형성된 구릉지에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특히 관심이 끌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됐다는 청동기 시대 화장인골. 흔히 한반도의 화장문화는 불교가 유입된 후에 생긴 것으로 생각해 왔으나 이번 발굴을 통해 청동기시대의 장례 문화에 대한 새로운 근거를 확보했다는 것이 발굴 담당자의 설명이었다. 청동기 유물뿐 아니라 분청사기와 청동거울, 주먹도끼 등 청동기시대부터 철기, 조선시대에 이르는 각종 유물들을 현장에서 바로 볼 수 있어 고리타분하고 거짓말 같던 고대의 역사 이야기가 눈앞에 실감나게 벌어지는 듯 했다.
가을 단풍과 함께 어우러져 조상의 지극한 효심과 고대 인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본 이번 답사를 통해 느낀 것이 있다면 역사의 숨결은 발로 뛰고 눈으로 보며 느껴야한다는 것이다. 70여 명의 답사단이 참여해 다소 빡빡한 일정으로 진행된 여정이었지만 바쁜 생활 중에서도 맛있게 곱씹을 추억 하나를 남겼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