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한양의 스타플레이어 배출한 진정한 '한양인'

 야구공은 코르크나 고무로 만든 작은 심에 실을 감고, 흰색 말가죽이나 쇠가죽 두 쪽을 굵은 실로 꿰매어 제작한다. 이렇게 제작된 야구공의 겉에는 실을 꿰맨 자국이 생기는데 이를 솔기 또는 실밥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실밥이 모두 1백 8개라는 사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의 높이는 13인치의 마운드'라는 스포츠계에 회자되는 말처럼 덕아웃에 앉아 게임을 지켜보는 감독은 하루에도 수십번 '백팔번뇌'를 되뇌이게 마련이다. 지난 1985년 본교 야구부 코치로 부임해 최근 신임 감독으로 선임된 진정한 '한양맨' 이기호 감독을 만나 덕아웃의 백팔번뇌를 물어 보았다.

 

 - 야구부 신임 감독이 된 것을 축하한다. 소감은?

 

   
 

 본교 야구부는 전통과 역사를 갖춘 대한민국 대학야구의 최고 명문팀이다. 현재 미국, 일본, 한국 프로야구를 주름잡는 박찬호, 구대성, 정민태 선수를 보라. 모두 본교에서 배출한 선수들이다. 이런 선수들을 배출한 팀의 감독을 맞게 돼 정말 기쁘다. 85년 김보연 전 감독님이 사령탑으로 부임할 때 함께 코치를 맡은 뒤 19년간 한양의 유니폼을 입었다. 김 전 감독님께서 워낙 팀을 잘 이끄셨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부담이 된다. 그러나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앞으로 본교 야구부를 '이기는 팀'으로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

 

 - 선수 시절 때는 어떤 모습이었나?

 

 내 스스로가 나에 대한 말을 하려니 참 쑥스럽다.(웃음) 아마추어 야구에서는 선수들이 투수와 타격을 동시에 한다. 나는 선수시절 주로 타격을 했다. 대부분 1번이나 2번 타순에 기용이 됐다. 힘이나 파워를 겸비한 선수는 아니었지만 빠른 발과 재치를 가진 선수였다. 그리고 승부근성도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말을 들었다. 비교를 하자면 내가 가르쳤던 LG의 유지현 선수와 비슷했다.(웃음)

 

 - 지도자로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학교 합숙생활에 적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라도 1, 2학년 때 학교 생활에 적응을 못하면 그들은 야구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 1, 2학년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처음에는 가족과 떨어져서 지내서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탄다. 그럴 때 마다 선수들을 위해 아버지와 형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혼자서 1인 3역을 해야하니 가끔은 힘들다고 느낀다. 그러나 선수들의 부모님들께서 나를 믿고 자식을 학교에 맞긴 만큼 항상 책임감을 느끼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 아쉽게도 최종 엔트리에서는 탈락했지만 심수창 선수가 아마추어로서는 유일하게 드림팀 멤버였다. 심 선수를 가르친 스승으로서 뿌듯할 것 같다.

 

 옛날 생각이 난다. 심 선수는 고등학교 때 그렇게 주목을 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깨 하나는 타고났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잘 다듬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가능성만큼은 그 어느 선수보다 높다고 판단했다. 한때 본인의 투구 폼을 잃어버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극복하고 드림팀에도 뽑혔다. 충분히 그럴만한 실력이 있는 선수다. 비록 현재는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선수들이 가진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도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능력이 아닌가 싶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야구 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감독의 목표는 하나다. 우승이다. 승부의 세계에서 2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1등만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다. 가끔은 주변에서 너무 결과만을 중요시하는게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스포츠의 세계에서 1위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우승이라는 말에는 결과 뿐 아니라 과정도 당연히 포함돼 있는 것이다. 앞으로 지켜봐 달라.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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