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인의 반려동물 이야기
자취하며 반려동물 키우는 한양인들, 생명과 함께하는 삶을 말하다
가족의 품을 떠나 자취를 선택한 이라면 공감하지 않을까. 홀로 살이에 가장 힘든 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라고. 외로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와 마음을 괴롭힌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어두운 현관으로 들어설 때, 적적한 기분이 싫어 보지도 않는 방송을 틀어 놓을 때가 그렇다. 이럴 때, 반려동물의 존재가 절실해진다. 방 안에 나를 반겨줄 존재가 있다는 생각만으로 외로움은 반절이 된다. 하지만 기껏해야 용돈이나 아르바이트 급여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학생들에게 반려동물 입양이 쉬울리 없다. 그들과 함께할 10년, 혹은 그 너머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어깨도 무거워야 한다. 평생의 가족을 들이기로 '결심'한 이들에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물었다.
우연이든 계획이든, 그 자체로 값진 만남
반려견 '원두'와 함께 사는 김종필(사회대·정치외교 4) 씨. 충남 대천의 본가에서 반려견을 길렀기 때문에, 반려견과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껴본 그였다. "강아지는 인간과의 유대 관계가 가장 깊은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서부터 기르던 반려견에게 정서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죠. 때문에 그들이 사람과 얼마나 가까울 수 있고, 일상을 얼마나 새롭게 만드는지 알아요." 김 씨는 입양 준비로만 일 년을 보내고, 원두와 함께 살 자취방을 찾아 이사했다. 원두가 들어온 뒤로는 매일이 새롭단다.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이 무기력해져요. 원두는 그런 저를 일으키는 존재죠. 챙겨야 할 일이 많기도 하지만, 전에 없던 에피소드가 생겨서예요. 원두가 시험에 필요한 자료를 찢기도 했는데, 오히려 일상이 적당히 소란하니 활력이 생기더라고요."
심소영(사범대·응용미술 4) 씨는 '당근이'와 동거 중이다. 그녀가 기르는 토끼의 이름이다. 심 씨는 지난해 8월 반려동물 입양을 결심하고, 같은해 10월에 당근이를 데려왔다. 두 달간 입양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사육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했다. 심 씨는 '자취생'이 키우기에 적합한 동물을 찾다가 토끼를 선택했다. 사육에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소음 때문에 이웃과 마찰을 일으킬 여지도 없다. "반려동물, 하면 흔히들 강아지나 고양이를 생각해요. 하지만 자취방에서 키우기엔 무리라고 판단했어요. 울음 소리 때문에 수술을 시키기도 싫었고, 초기 비용이 상당하다고 들었거든요. 토끼는 이런 문제들이 비교적 적은 편이라, 인터넷을 통해 토끼를 분양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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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만남을 겪은 사례도 있다. 김기태(사범대·영어교육 4) 씨는 죽어가던 고양이를 살려내 여지껏 기르고 있다. 지난해 7월, 밤 거리에 나갔다 쓰러진 고양이를 발견한 것. 고양이를 안쓰럽게 여긴 누군가의 도움인지, 고양이 앞에는 작은 물 그릇도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마저 마시지 못 할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구내염 때문에 입안이 잔뜩 헐었고, 각막염이 있어 눈도 제대로 못 떴죠. 기생충도 있었고요. 병원에서도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어요." 그러나 김 씨의 극진한 간호로 고양이는 몇 개월에 걸쳐 차츰 건강을 회복했다. 이제는 완치된 고양이에게 김 씨는 '춘희'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천명관 작가의 소설 <고래>의 주인공 이름을 본떴다. 작 중 춘희는 박복한 삶을 꿋꿋히 살아 내는 인물. "부모에게 버림 받은 데다, 힘들게 생명의 고비를 넘겼잖아요. 작품 속 춘희처럼, 생명력을 잃지 않고 건강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에요."
김현미(일반대학원 화학공학 석사과정) 씨와 그녀의 반려묘 '가을이'의 만남도 우연이라 할만하다. 김현미 씨는 지난 2008년 학교 후문가에 누워 자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지금은 없어진, 근처의 과일 가게에서 기르던 고양이다. 평소에 주인이 고양이를 돌보는 모습이 신통치 못했다. "고양이에게 밥과 김치를 주시던 모양이에요. 고양이가 잘 먹지를 않는데, '얘는 밥을 안 먹는구나' 하고 묶어만 두시더라고요. 후문을 오가며 간식을 챙겨줄 정도로 예뻐한 고양이여서, 데려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이던 김 씨는 덜컥 고양이의 주인이 됐다. 이렇게 시작한 인연이 햇수로 7년 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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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라는 장벽 앞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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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에겐 먹고, 자고, 입는 모든 일이 돈이다. 용돈 중 일부를 떼어 반려동물에게 투자하는 것이 벅찰 법도 하다. 입양 초기는 의료비 지출이 많아 더욱 부담스럽다. 예방접종과 중성화수술 때문. 심소영 씨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얼마 전 중성화수술을 마쳤다. "토끼의 경우 교배하지 않을 거라면 중성화수술이 필수예요. 임신을 겪지 않으면 자궁암과 같은 위험한 질병에 노출될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이라서요. 수술을 위해서 25만원 정도가 필요했는데, 아르바이트 급여로 수술비를 충당했죠." 김기태 씨의 경우도 비슷하다. "중성화수술에 3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해요. 용돈에서 부담하기는 어려운 금액이죠. 단기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뒤 수술하려고요."
김종필 씨는 언제가 될지 모를 의료비 지출을 위해 돈을 모아 둔다고 했다. "반려견을 기르면 비싼 수술을 해야할 때가 생겨요. 척추나 다리 부분에 무리가 가는 경우가 많아서요. 견주마다 고민이 다르고, 필요한 금액도 달라요. 원두의 경우 150만원 정도를 미리 모아 둬야 무탈하겠다고 생각해요." 학생 입장에서 쉬이 엄두가 나지 않는 금액인데, 아깝다고 말할 수는 없단다. "인간이 큰 수술을 받을 때에 비교하면 많은 편도 아니에요. 아깝다고 느끼는 건 치료 대상이 '동물'이기 때문이죠. 강아지 수명이 20년인데, 제 인생의 5분의 1을 사는 거예요. 엄연히 인간과 같은 수준에서 생각할 이유가 있어요."
한국소비자원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반려동물 사육비로 월 평균 13만 5632원이 지출된다(2014년 1월 19일 발표 기준). 인터넷한양이 만난 이들의 경우 고정 비용은 3만~5만원 선이다. 대개는 사료비인데, 간식과 물품을 더하면 때로 10만원 이상이 든다. 필수적인 지출을 제외하면, 사치를 부릴 수 없는 형편이다. 김현미 씨는 사료비를 아끼기 위해 소셜커머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고양이를 키우려면 매달 사료비와 배변용 모래비가 들어요. 반드시 좋은 걸 먹이려는 욕심을 버려야 하죠. 인터넷으로 대량 구매를 하면 3개월에 5만원 정도로 금액을 줄일 수 있어요." 장난감을 집에서 만들기도 한다. "입양 초기엔 장난감도 많이 샀어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갖고 놀지도 않고, 금세 싫증을 내더라고요. 요즘은 집에 있는 잡동사니를 이용해 장난감을 만들어요."
한편, 대다수 자취생은 '원룸'에서 생활한다. 반려동물을 키우기에 부족한 공간일 때가 많다. 김종필 씨는 반려견 입양을 위해 적당한 규모와 환경을 갖춘 방으로 이사했다. "강아지를 키우려면 원룸이라도 일정 정도 이상의 규모가 필요해요. 사람과 생활 공간을 분리해야 하고, 집 안에서도 뛰어놀 수 있는 게 좋죠." 정기적인 수입이 있어 비용 부담이 적었다는 김 씨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 반려동물을 기르는 대부분의 이들은 '미안함'을 말했다. 김현미 씨는 "좁은 공간에서 지내온 게 미안하다"며 "집에서 함께할 시간이 줄어서 외로울까 걱정된다"고 했다. 김기태 씨는 언젠가 춘희를 위해 '캣타워'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 캣타워는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의 로망 중 하나다. "입양 전에 비용 부분을 충분히 고려했다 생각했어요. 그런데도, 세심하게 챙겨주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심소영 씨의 말이다.
반려동물과의 삶,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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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면에서도 반려동물과의 동거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토끼와의 동거는 '전선'과의 전쟁이다. 심소영 씨는 전선을 갉아 먹는 토끼 때문에 한동안 애를 먹었다. "충전기 선도 엄청 당했고, 청소기 선도 당했어요. 노트북, 키보드, 마우스 등 발이 닿는 곳이라면 전선을 갉아 먹어요. 끊어진 선을 수리하느라 꽤 많은 비용이 들었죠." 현재는 토끼의 발이 닿지 않는 곳으로 전선을 치워둔 상태다. 그래도 점프력이 좋아 예상치 못한 습격을 받는다고. "절대로 닿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곳까지 뛰는 경우도 있어요. 전선을 갉아 먹는 것 때문에 파양이 되는 경우도 많아서 안타까워요." 전선 문제와 배변 문제는 토끼의 주요 파양 원인 중 하나. 심소영 씨는 우려를 표했다. "토끼는 생후 몇 개월 동안 괄약근이 약해 배변 훈련이 어렵거든요. 아무 데나 배변한다고 파양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금만 지나면 괄약근 조절이 가능하니 인내심을 갖고 키워야 해요."
김현미 씨는 비닐을 뜯어 놓는 가을이 때문에 쓰레기통을 없앴다. "가을이가 비닐 뜯기를 좋아해서 쓰레기 봉투를 숨기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방 안의 쓰레기통을 죄다 없애고, 화장실에만 하나가 있어요. 친구들이 집에 오면 불편해하죠." 가을이가 벽지를 뜯어 놓은 바람에 집 주인에게 변상한 경험도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털 빠짐 역시 중요한 골칫거리. 털이 붙기 쉬운 물건은 먼지가 닿지 않게 재빨리 넣어야 한단다. 털 빠짐에 대한 고민은 김기태 씨의 사정도 비슷하다. 검은색 옷은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는 것.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고양이 털이 정말로 많아요. 검은색 옷을 입으려 잠깐 걸어두면, 그 짧은 틈에도 털이 붙어 있죠." 먼지를 제거하기 위한 테이프는 고양이 가정의 필수품이다.
사고뭉치라도 좋아,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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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반려동물로 인해 제 삶이 변했다고 말한다. 김종필 씨는 자신의 반려견 원두를 '나를 무릎 꿇게 하는 존재'라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 코, 입을 보며 원두 건강 상태부터 확인해요. 청소도 해야 하고, 배편 패드도 갈아야 해요. 인간은 무릎 꿇기를 싫어한다는데, 원두를 위해서라면 쭈그려 앉을 수밖에 없어요." 김기태 씨는 춘희와의 동거가 남녀의 '연애' 같다고 했다. "춘희에게 종종 말을 걸어요. 같이 놀자고요. 그럴 때는 새침하게 굴면서, 제가 포기하고 컴퓨터를 시작하면 괜히 옆에 와요. 이런 게 '밀당'인 것 같아요." 이쯤되면 고양이를 기르는 이들을 괜히 '집사'라 부르는 게 아니다. 김현미 씨는 "고양이 '님'이 원하는 장소가 있으면 반드시 차지해야 한다"며 때문에 잡동사니를 올렸던 냉장고 위라도, 먼지가 가득한 창틀이라도, 옷이 쌓인 헹거 아래라도 치워드릴 수밖에 없다."고 농담했다.
이같은 고집을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은 반려동물이 주는 위로 때문일 것. 심소영 씨도 토끼에게서 위안을 받을 때가 많단다. 자취생의 외로움을 달래줄 때다. "자취를 하면 외롭고 쓸쓸할 때가 생겨요. 당근이가 없을 땐 밖으로 돌았어요. 사람들과 만나느라 집을 자주 비웠죠. 지금은 당근이와 집에 있는 일이 즐겁고, 마음이 안정된다는 걸 느껴요."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토끼도 주인을 알고 애정을 나눈다. "어제는 제 팔을 베고 잤어요. 때로는 당근이를 쓰다듬다가 손을 잠깐 멈추는데요. 손 아래로 얼굴을 밀어 넣는 게 정말 귀여워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귀여우니까 위로를 받고 귀여우니까 용서가 돼요." 김기태 씨는 춘희가 마음을 읽는 것 같은 때를 말했다. "춘희는 평소에 애교가 많은 편이 아니에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 좋거나 기가 죽은 날이면 어떻게 알고는 옆에 와 앉아요. 마음을 읽는 것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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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남다른 활력소다. 김종필 씨는 원두가 자기 주변으로 쳐놓은 울타리를 넘을 때 행복을 느낀다. "강아지가 넘어 오지 못하게 두르는 울타리를 넘을 때가 있어요. 수월하게 폴짝, 폴짝 뛰어 넘는 게 아니라, 암벽을 등반하듯 한발 한발 힘들게 움직여 겨우 넘는 거예요. 넘어오면 안 된다고 혼내면서도, 건강히 자라고 있다는 생각에 기뻐요." 김 씨는 '예쁜 것보다 건강한 게 최고'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반대로, 반려동물을 통해 몰랐던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다. 김기태 씨의 고백이다. "제가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남자란 걸 알게 됐어요. 귀여운 인형을 보면 춘희에게 사주고 싶거든요. 춘희를 기르며 남들이 모르는 자신을 발견키도 해요. 집에 들어오면 '오빠 왔다', '뭐 했어', '이리와' 하고 말을 걸고 있어요."
평생의 가족, 함께할 자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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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소영 씨는 지난 겨울 당근이와 병원에 다녀왔다. "겨울에 방이랑 바깥의 온도차가 심해서 곰팡이가 피었던 적이 있어요. 당근이가 그것 때문에 피부병을 앓았는데, 친구가 말해주기 전까지 발견하지 못했어요." 동물은 아픈 것을 내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보다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때문에 책임감이 필요하다. "당근이를 기르면서, 미래에 아이를 가지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하게 돼요. 사람을 기르는 것만큼의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현미 씨는 반려동물 입양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신중한 고민을 당부했다. "저의 경우 자취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양이를 데려왔어요. 7년 째 키우며 느낀 것은 경제적, 물리적으로 독립하기 전까지 입양하지 않는 게 좋다는 거예요." 성실히 가을이를 키워왔음에도, '책임감'의 무게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고양이 수명은 10~15년 정도예요. 마지막까지 같이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고양이 기르는 게 아이 키우는 거랑 같아요. 맡아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가고요. '고양이는 예쁘니까 언제라도 맡아줄 사람이 있겠지'라는 생각은 금물이에요."
앞으로의 10년, 그 이상을 함께 하겠다는 '결심' 없이는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없다. 김종필 씨는 반려동물과의 노년을 말했다. "사람이 외로움을 달래려고 반려동물을 입양하잖아요. 그것까지는 괜찮다고 봐요. 하지만 멋으로 동물을 기르지는 말아야 해요. 사람이 늙는 것처럼 강아지도 늙고 못 생겨져요. 그럴 때도 처음 같이 반려동물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해요."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들에게, '책임감'은 백 번 강조해도 모자랄 단어다. 김기태 씨는 가족을 맞을 준비가 됐는지 물었다. "반려동물과의 삶은 웹툰에 소개된 평화로운 모습과는 달라요. 한 마리에도 엄청난 정성이 필요하죠. 비용도 많이 들고, 배려도 필요하고요. '가족'을 맞이할 자신이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생명을 들이는 일이 말처럼 쉬울리 없다. 나의 일부를 희생하고, 수고를 감수하며, 여생을 함께할 자신이 있는가. 이 과정을 견뎌내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법이다.
곽민해 학생기자 cosmos3rd@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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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민 사진기자 marie91@hanyang.ac.kr
권요진 사진기자 loadingman@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