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브랜드서포터즈 2기 김나영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 속에서 과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가장 근본적인 화두로 제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진들이 현대인들이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하는 여러 필수 조건을 하나씩 줄여나가며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출연진들의 생활 패턴 혹은 의식 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보여준다.

 

‘나트륨 없이 살기’, ‘책 읽으며 살기’ 등 매 방송에서 새로운 테마를 제시할 때마다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남긴다고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캠페인화(化)되고 패러디되기도 한다. 그 중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것으로 기억되는 테마는 ‘쓰레기 없이 살기’ 특집이었다. 당시 한 명의 시청자로써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인간은 정말 끊임없이 배출하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머물렀다.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소위 ‘쓰레기’라고 분류될 수 있는 것들의 종류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무분별하게 너무도 많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무조건적으로 버린다는 것이다.

 

출연진들이 해당 특집을 촬영해나가면서 제작진들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조건’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조건’에서 벗어나는 행위에 대해 가차 없이 제재를 가한다. 이것마저 쓰레기냐며 출연진들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고 그 장면은 웃음으로 승화된다. 하지만 그들이 내던지는 당황 섞인 질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그 질문이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문제의식에 이르게 된다.

 

현대인들에게 문명의 이기(利器)는 문자 그 자체로 ‘이롭게 쓰이기 위한 도구’다. 이기를 만들어낸 뒤에는 마모되고 부서지는 것들, 즉 쓸모없는 것들이 생겨나게 된다. 그들의 운명은 ‘버려지는 것’이다.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이른바 발달하는 단계가 계속해서 급진화하면서 문명의 이기의 종류도, 개체수도 굉장히 많아졌다. 그만큼 쓸모없는 것들의 존재들도 다양해졌다. 문명의 이기는 분명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지만 금세 버려져야 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우리는 정말 필요에 의해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중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가 만들어낸 모든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음’이라는 운명에 처해져야 하는 것인지, 또한 우리는 진짜로 그런 구분과 분별을 제대로 하면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지 등 다양한 생각들이 버스 정류장처럼 늘어서 있다. 즉 우리 현대사회에 있어 ‘쓰레기’가 갖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포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들의 일상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출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나,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에게나 이른 아침의 길거리는 깨끗함 혹은 그들 나름대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분을 좌우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몸이 피곤하더라도 공기가 맑고 길거리가 깨끗하면 괜스레 기분이 잠깐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 누가 밤새 치우고 지나갔을 것을 생각하기보다 내 기분이 좋아짐에 우선 만족한다. 행여 지나가다 전봇대나 미처 치우지 못하고 넘쳐버린 쓰레기통이나 토사물 등을 보게 되면 아침부터 불결한 것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인상을 쓰고는 한다. 마치 누군가는 내가 보지 않은 사이에 저것들을 치워야 했다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른 아침이라는 시간이 미처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조건이라면 공간적 측면만 두고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를 배경으로 해서 말이다. 아침부터 수업을 듣느라 지친 내 몸을 위해서 에너지 드링크를 한 잔 마신다. 잠시 쉬는 시간에 몇몇 학우들은 담배를 태우러 무리지어 나간다. 꼭 무리를 지어 나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나가보면 어느새 무리가 형성돼 있다. 점심을 사먹고 햇살이 좋아 노천카페에 앉아있으면 어김없이 커피는 테이크아웃 잔으로 주문한다. 그나마도 양이 너무 많으면 마시다 만 상태로 버린다. ‘분리수거’라고 적힌 쓰레기통에 일회용 컵들이 뒤섞여 어디가 플라스틱이고 일반쓰레기인지 구별도 되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그냥 귀퉁이에 슬쩍 올려둔다. 그리고는 하루 학교생활을 반복한다.

 

이처럼 바쁘게 다니는 와중에 마주치는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을 우리는 잘 보지 못한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내다버린 쓸모없는 것들을 치워주는 사람들이다. 아침에는 학생들 공부하기 좋으라고 거리를 깨끗하게 닦아 놓는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상태가 좋지도 않은 파란 옷을 입은 자기 몸보다 무겁고 많은 쓰레기들을 학생들의 눈에 되도록 띠지 않게 치워준다.

 

하루의 시작을 기분 좋게 시작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뿐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들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누구나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아주 이른 아침부터 우리는 기분 좋은 상태를 맞이하고 싶어 하면서 한 번이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을 바라봐준 적이 없다. 나의 기분 좋은 아침을 위해서 누군가는 그 기분 좋은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을 위해서 치워준다.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자 그 사회를 향해 큰 발걸음을 내디딜 사람들이 넘쳐나는 ‘대학교’에서 쓰레기를 두고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현상은 단순히 쓰레기의 양과 무분별한 투척(投擲)의 문제를 넘어서 사람에 대한 문제로까지 인식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깨끗한 환경을 원하고 그 안에서 살아가길 원한다. 우리가 쓸모없는 것들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버리는 행위는 쓸모없는 것들 속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들이 없는 곳이 쾌적한 공간이고,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있어야 나에게 해가 되지 않으며, 내가 손 뻗는 곳에는 쓸모 있는 것들, 즉 이기가 있어주었으면 한다. 그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 우리 한양대학교에만 수천 명이고 수만 명이다. 그들 중에 이와 같은 욕구가 과연 실현가능 한 것인지, 혹은 감히 방해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깨끗한 환경에 대한 욕구는 기본적인 욕구이자 본인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권리가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동시에 요청되는 공간으로써의 대학 내부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권리와 욕구는 충족시키고 싶어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는 깨끗한 곳에 살고 있지 않다. 너무도 많은 쓰레기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이른바 ‘쓰레기 문제’를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면 초등학교 시절부터 참 많이 그렸고 써봤던 문구를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를 줄입시다.”, “버리지 맙시다.” 등. 하지만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보자. 그와 같은 표지판이나 캠페인으로 얼마나 효과가 있었나? 딱딱한 글과 단순한 색상의 그림들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투기하는 사람들에게 벌금을 부과하거나 이웃들 간에 CCTV를 설치해가며 막겠다는 제도의 시행은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가?

 

물론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이 문제 해결에 단 1%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대학교 내에서도 쓰레기 문제는 단순히 그 양의 문제를 넘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문제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다른 대안들은 과연 없느냐는 것이다. 사회에서 우리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딱딱한 제도보다 조금 더 젊고 순수해보일 수 있는 대안들은 우리에게서 나올 수 없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이 문제는 이성적인 제도만을 강요하고 의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서 착안한 생각인데, ‘더러운 쓰레기통 안에 꽃이 피어있다면 어떨까?’ 한 송이에 1000원 정도 하는 장미를 사서 컵에 꽂은 채로 쓰레기통에 둔다면 아름다운 꽃을 지키는 화분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꽉 막혀있는 대학교 내의 모든 쓰레기통들을 속이 보이는 투명한 통으로 교체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쓰레기는 과연 보이지 않아야 하는가? 눈에 띠지 않는 곳에 있으면 그게 저절로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눈에 밟히면 사람들이 더 보기 싫어서라도 줄일 수 있다. 지금 이 생각은 갑자기 멀리 나간 감이 없잖아 있다. 하지만 당장에 그 양이 줄어들기를 바랄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있는 생각과는 다른 방법으로 대학 내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은 충분히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이미 시행 중이며 앞으로 확대되길 기대하는 방안으로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 대신에 텀블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이미 많은 학우들이 시도하고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학교 차원에서 학교 마크가 박힌 텀블러를 학생들에게 지원해주는 방안 등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대안들 외에도 어떤 제도적인 대안과 대책은 계속해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이 만들어 놓고 쌓아온 축적물들 속에서 편안함을 누리고 갈구하듯이 그만큼 많이 쏟아져 나오는 쓰레기들을 줄여보자는 캠페인과 운동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운동이자 나아가 나와 당신, 그리고 그동안 이른 아침부터 자기의 권리는 버리고 포기해가면서 우리의 권리를 더 생각해준 많은 분들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도 이어지는 광범위한 변화를 위한 캠페인이자 운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뉴스H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