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인들의 어학시험 분투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영어와의 승부
방학이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방학은 학기 중 시간이 없어 미뤄야 했던 것들을 이룰 수 있는 기회. 한정된 시간 동안 기회비용을 꼼꼼히 따져, 미래를 위한 가장 ‘값진’ 투자를 해야만 한다. 한양인들은 귀중한 방학의 시간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이 맘 때쯤 한산해진 캠퍼스와 대조적으로 대학생들로 북적이는 곳이 있다. 바로 어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강남, 종로 일대의 학원가다. 날씨만큼이나 뜨거운 학구열로 가득한 그 곳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영어와의 승부로 고군분투중인 이들을 만났다.
강남 혹은 종로, 대학생의 방학에 ‘가장 뜨거운 곳’
김준현(공과대·정보시스템 4) 씨는 7월 한 달을 강남에서 보냈다. 방학이지만 학기중과 다를 바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강남역 인근의 한 어학원으로 향한다.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의 수업, 조별 스터디에 자습까지 마치고 나면 하루가 훌쩍이다. 일주일에 5일, 하루에 6시간 이상씩 학원에서 보내는 생활이지만 마음은 알차다. 김 씨는 이번 방학 때 ‘토익’을 가장 우선순위로 정했다. 대학생활 내내 마음 속의 불안감으로 존재했던 영어를 이제야말로 ‘정복’하기 위해서다. 강남을 선택하게 된 것은 수원 자택에서 강남역까지 직행 버스가 있어 편리하기 때문. 유명강사도 큰 이유다. 그는 친구의 추천으로 십 수 년 째 토익계에서 명성을 떨치는 강사의 강좌를 수강 중이다.
학원의 가장 큰 장점은 토익에 대한 ‘전문성’. 강사가 오랫동안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 바탕으로, 최신 기출 경향을 반영한 문제들을 제공한다는 점은 큰 메리트다. 또 스스로 학습하려는 의지가 약한 이들에게 학원은 좋은 대안이다. 많은 양의 숙제를 내주기 때문에 착실히 따라가기만 한다면 점수가 오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 공대생인 김준현 씨는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학원에 다니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인 것 같다”며 “아무래도 문과생들에 비해 점수에 대한 부담감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토익 점수는 높을수록 좋은 것 같다”고 다가오는 정기 토익시험에서 최대한 높은 점수를 받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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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줄’도 알아야
취업자들의 스펙 인플레이션(Inflation) 현상이 심화된 지 오래. 토익은 기본 중의 기본, 이제는 ‘말하기’의 시대다. 입사 지원 시 영어 말하기 능력을 요구하는 기업들이 많아진 것은 물론, 요구하는 레벨 수준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단적인 예로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국내 대기업 지원 자격이 올해부터는 문과 기준 토익스피킹 레벨 6에서 레벨 7로 바뀌었다. 해외경험이 흔해진 시대지만, 여전히 ‘국내파’인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인 셈. 영어 말하기 시험의 종류는 토익 스피킹, 오픽(OPIC) 등이 존재하지만, 그 중 적용범위가 넓은 것은 토익스피킹, 일명 ‘토스’다. 말하기 능력까지 요구되는 취업시장의 온도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곳 역시 학원가다.
종로의 한 어학원에서 토익스피킹 수업의 스터디 조교로 일하는 조현우(경금대·경금 4) 씨. 시급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일을 하며 공부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일을 시작했다. 조현우 씨는 수업 후 수강생들끼리 진행하는 스터디의 진행을 돕는다. 수강생들이 모르는 부분을 강사를 대신해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조현우씨는 지난 겨울방학 때 이 수업을 수강했었고, 그 후 치른 시험에서 180점(레벨 7)이라는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 체류 경험이 전혀 없는 조 씨. “토익 스피킹은 발음, 문법, 논리 등이 종합적으로 요구되는 시험이지만 패턴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패턴을 철저히 익힌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며 고득점의 비결을 밝혔다. 또 “최고 레벨을 목표로 다시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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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넓은 세상으로 향하는 관문
수학과 08학번으로 올해 2월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응용통계학를 전공하는 조명근(대학원·응용통계 석사과정) 씨. 그는 미국으로의 박사과정 진학을 위해 강남의 한 어학원의 토플 정규반에 등록했다. 토플은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만큼 난이도가 상당한데다 유학에는 꼭 필요한 점수다. 조명근 씨는 “토플 같은 경우 다른 어학시험에 비해 학원이 꼭 필요하다”며 “스피킹(speaking)과 라이팅(writing)과목은 혼자서 하기에는 벅차서 공부 방향을 잡기 위해 학원의 도움을 받게 됐다”고 했다.
토플은 듣기, 쓰기, 읽기, 말하기 총 4과목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토익에 비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네 과목의 수업이 나눠져 있고, 강사도 과목마다 다르다. 세 시간 반 동안의 수업이 끝난 후에는 점심을 먹고 다시 스터디를 세 시간 동안 진행한다. 집에 가서는 과제도 해야 한다. 하루 종일 토플에 매달려 다른 것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9월에 대학원 학기가 시작되면 토플 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 예상해, 두 달 안에 목표점수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조 씨. 조 씨는 “토플 시험이 끝나면 GRE(미국 대학원 입학 자격)시험도 준비할 계획”이라며 “지금은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고 있지만, 장차 회화와 학술적인 영어공부를 할 것”이라고 했다.
‘해외경험파’조차 어학에 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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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에서 중국이 가진 비전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 금융권에의 취업을 희망하는 최준호(경금대·경금 4) 씨는 이런 흐름에 걸맞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중국경제통상을 융합전공하고 있다. 중국경제통상 융합전공에서는 HSK(한어수평고시) 5급 이상을 요구한다. 비단 이런 요건 때문이 아니더라도 꿈을 이루기 위해 제 2 외국어의 중요성을 강하게 느꼈다는 최 씨.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강남에 있는 중국어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제 2 외국어에 열중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덜하기 때문이다.
최준호씨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 직장 때문에 말레이시아의 국제학교를 다니며 영어실력을 쌓았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토플을 공부했기 때문에 토익은 상대적으로 수월한데다, 카투사 통역병으로 복무한 경험도 영어실력을 향상하는 기회가 됐다. 하지만 최준호씨는 ‘영어공부에는 끝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 라디오 애플리케이션을 휴대폰에 설치해두고 틈틈이 듣는 등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장래희망은 중국 투자 분야의 전문가. 영어와 중국어 모두 갖춘다면 큰 경쟁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 직장인이 되어서도 직무와 관련된 영어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다”며 “영어는 평생 해야 하는 것 같다”고 열정을 보였다.
영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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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준비 중인 오장성(경금대·경금 4) 씨는 지난 겨울방학에 이어 이번 여름방학에도 종로의 어학원을 찾았다. 방학마다 두 달씩 영어공부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지만, 그에게 ‘토익 졸업’은 멀게만 느껴진다. 사실 그는 외고, 그것도 ‘영어과’ 출신이다. 주변에서는 그가 외고 출신이기에 영어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살다 온 것은 아니기에 다른 취업 준비생들처럼 영어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 오 씨는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영어가 거리가 멀다고 느낄 때가 많다”며 “점수를 위한 영어공부에는 도통 흥미가 가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표현했다. 지난 겨울 수강한 유명 강사의 고득점 목표반 강의는 토익문제를 공식화 해 답을 골라내는, 이해보다는 암기가 필요한 방식의 강의였다. 현재 수강중인 강의는 유명 강사의 것은 아니지만, 좀 더 언어적인 이해 위주여서 자신에게 더 적합하다고 느낀다고. 물론 ‘암기’ 방식이 단기간에 목표점수를 달성하기 위한 데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오장성 씨는 “그런 방식의 영어 공부는 진짜 영어 실력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며 ‘시험을 위한 영어공부’에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토익은 정녕 취업과 필수불가분의 관계일까. 오장성 씨는 취업 전선에서 찾아보기 힘든 ‘무(無)토익’의 스펙으로 이번 하계 인턴 모집 때 총 8개 기업에 지원서를 썼고, 그 중 두 곳의 최종면접 단계까지 갔다. 토익 성적이 없이도 서류를 통과해 최종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난 셈. 사실 그는 영어를 제외하고 평균 이상의 학점, 직무 관련 자격증 다수, 공모전과 대회에서 많은 수상 경력을 갖고 있다. 토론 동아리의 회장을 역임하고, 토론 대회에서 6번이나 수상한 경력은 그의 스피치 능력을 짐작케한다. 하지만 면접 결과는 낙방이었다. “면접 때 담당자분께서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왜 토익성적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영어가 100% 원인이라고 볼 순 없지만, 스스로 생각할 때 가장 부족한 게 영어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영어에 흥미가 없지만, 취업을 위해서 영어공부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마지막 방학의 소중한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게 된 것도 그런 이유.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다.
“가끔은 시대가 바라는 인재상에 동떨어진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대학생활 동안 스펙을 쌓기 위해 무언가를 하진 않았거든요. 내가 하고 싶었던 토론 분야에서 경력을 쌓고 스피치 능력을 기른 것이, 영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가절하 되는 것 같아서 좀 아쉽죠.” 요즘은 입사지원서에 어학연수나, 교환학생 같은 ‘해외경험’을 적는 난이 따로 있는 경우도 빈번하다. 해외경험이 없는 지원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 될 터. “영어는 물론 중요하지만 취업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해외에서 보낼 시간 동안 국내에서 뜻 깊은 경험을 했기에 후회하지는 않아요.”
계절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여름은 생명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시기. 우리의 젊음도 절정에 이르렀다. 한번뿐인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영어가 ‘전부’는 아닐 것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몇 자리 숫자의 어학점수만으로 나타낼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 하지만 영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영어가 ‘너무나’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이상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꼭 한번 만나게 되는 영어와의 승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박지현 학생기자 saturn1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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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요진 사진기자 loadingman@hanyang.ac.kr




